메뉴 건너뛰기

close

검은 머리 풀어 수를 놓다
 검은 머리 풀어 수를 놓다
ⓒ 김태용

관련사진보기

 
"할머니는 늘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셨습니다. 잉어를 받아든 꿈을 꾸고 첫아들을 가졌을 때도, 엄마의 뉴똥 치마 끝자락을 함부로 자르다 꾸지람을 들은 손녀를 감쌀 때도, 도회지로 떠나 자주 오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가 야속할 때도 할머니는 말없이 버선을 깁고, 베갯모에 꽃수를 놓고, 흰 옥양목에 십자수를 새기며 자식들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대구에서 자수(刺繡)박물관 '수(繡)' 박물관을 운영 중인 이경숙 관장이 전통 자수의 아름다움과 자수에 담긴 우리민족의 정서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수필집 <검은 머리 풀어 수를 놓다>를 펴내 시선을 끈다.

'실과 바늘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총 6장 39편으로 구성 됐는데, 저자가 그동안 <영남일보>에 연재한 칼럼에서 정수만 별도 추려낸 것으로, 우리 민족의 미적 특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대학시절 미술을 전공하며 전통색채에 관심을 가져왔던 저자는 우연히 베갯모에 새겨진 자수에서 우리 고유의 색을 찾았다. 이후부터는 그 자수를 넘어선 옛 여인들의 마음에 천착해오면서, 어린 시절 할머니의 바느질에서 시작된 자신의 경험과 함께 버무린 자신만의 '자수의 세계관'을 구축했다. 바로 사랑이다.

자수는 인류가 동물의 모피나 식물의 껍질과 잎 등을 원시적 재봉용구로 꿰매고 엮어 옷을 지어 입었던 선사시대부터 기원한다. 우리나라 또한 시대의 변천에 따라 길쌈, 바느질 등과 함께 한땀한땀의 정성을 통해 일상의 곳곳에서 섬세한 솜씨로 자수의 아름다움을 가꾸어왔으며, 민족의 정서를 꽃 피웠다.

한 올 한 올 비단실로 베갯모에 꽃과 새를 새기거나 수(壽), 복(福), 부귀(富貴) 등을 새긴 행위,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 하거'나 '길쌈을 삼던'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노동, 곧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저자에겐 자수(刺繡)인 셈이다.
 
이경숙 관장
 이경숙 관장
ⓒ 김태용

관련사진보기

 
"미욱한 책을 통해 바느질로도 천 개의 꽃을 피워낸 어머니들의 사랑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이 여전히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더없이 기쁘겠다"며 자수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 저자의 말에서 이 책을 펴낸 취지가 읽힌다.

저자인 이경숙 관장은 경북대 미술학과를 거쳐, 동대학원 미술교육학 석사 및 경주대 문화재학과 석사, 대구대 미술디자인학과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그동안 모은 자수를 가지고 박물관을 설립, 자수와 전통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사)대구시박물관협의회장을 역임했으며, (사)한국사립박물관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베갯모 꽃수>, <바늘그림>, <한국 근대 십자수> 등이 있다.

검은 머리 풀어 수를 놓다 - 이경숙 관장의 실과 바늘 이야기

이경숙 (지은이), 다할미디어(2022)


태그:#자수, #수박물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모든 독자분들과 기자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