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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 지방 세베로도네츠크의 버스에서 한 여성과 아이가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선언하며 전면전을 개시했다.
▲ 불안한 표정으로 차창 밖 내다보는 우크라 동부 주민들 2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 지방 세베로도네츠크의 버스에서 한 여성과 아이가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선언하며 전면전을 개시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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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영국 유학시절 친구처럼 지냈던 교수님께 새해를 맞아 한과세트를 보내 드렸더니 이런 멋있는 과자 박스는 생전 처음 받아봤다며 좋아하셨다. 그리고 코로나보다도 우크라이나가 걱정이라며, 마치 내일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라고 전해 주셨다.

당시 나는 푸틴이 권력욕이 상당하고(power-seeking) 전쟁광인(belligerent) 것은 사실이지만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가 푸틴을 자극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늦은 감은 있지만 아무쪼록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길 바랄 뿐이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온 외신을 뒤덮었다.

'레드라인' 넘지 않았던 러시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외신과 전문가들은 전쟁에 대비를 해야 한다면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섣부르게 군사 행동을 감행할 수는 없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기에는 그 이후 러시아가 감당하게 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손실이 막대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2008년 조지아(그루지야)를 침공할 당시 러시아는 남오세티야 지역을 며칠 만에 점령한 후 조지아 중심부에 위치한 고리에서 자발적으로 멈추고 유럽의 중재를 받아들였다. 조지아를 두 토막 내고 아르제바이잔에서 터키로 이어지는 송유관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러시아는 이를 단행하지 않았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때에도 푸틴 정부는 군사적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우크라이나를 통째로 삼켜버리지 않았다. 크림반도를 합병해 러시아의 주요 군사시설인 흑해 함대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했다. 심지어 군사개입을 은폐하기 위해 휘장이 없는 러시아군을 파견했던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러시아가 서방 국가들과의 극단적 대립을 자초할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비용 효율적인 군사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례들이다.

러시아의 일관적인 메시지... '언제고 군사공격 가능'
 
푸틴 러시아 대통령(자료사진). 사진은 2021년 8월 23일 모스크바 외곽 패리어트 공원에서 열린 국제군사포럼 'Army-2021' 개막식 연설 중인 모습.
 푸틴 러시아 대통령(자료사진). 사진은 2021년 8월 23일 모스크바 외곽 패리어트 공원에서 열린 국제군사포럼 "Army-2021" 개막식 연설 중인 모습.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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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번 푸틴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예외적인 행보였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과거 행적을 추적해 보면 러시아는 군사행동을 개시하기 전 언제나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에게, 한편으로는 '유럽 안보에 대해 담판을 짓자', 또 한편으로는 '우린 언제든 군사공격을 개시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조지아-러시아 전쟁이 발발했던 2008년, 러시아 정부는 조지아 침공 수개월 전부터 조지아 국경 부근에 수천 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미국 싱크탱크 Stratfor의 설립자인 조지 프리드먼은 당시 조지아에는 130명이 넘는 미국 군사 전문가들이 상주해 있었는데 미국 부시 정부가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주장한다 [1].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나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 때도 러시아는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작년 겨울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일대에 러시아군이 전진 배치됐는데, 러시아의 이와 같은 군사행동은 푸틴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가 아닌 서방 국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고 러시아 전문가 하룬 일마즈 박사는 설명한다 [2]. 

그리고 지난 2월 바이든 정부가 이례적으로 공개한 구체적인 러시아 침공설은 서방 국가들이 그간 러시아의 군사전략을 꿰뚫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약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가 협상에 성공했다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나토와 러시아 간의 긴장관계

현재 푸틴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단과 유럽의 긴장완화를 표방하며 러시아의 안보 보장을 위한 다양한 요구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의 향후 나토 가입 금지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도 미국 바이든 정부에 이와 같은 요구사항을 전달했는데 'non-starter(고민해 볼 가치도 없는 사안)'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입장에선 이번에야 말로 '담판을 지어야 하는' 사안이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연방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선두로 12개의 서방 국가들이 결성한 군사동맹인 나토는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에는 러시아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독립한 동구권 국가들이 대거 나토에 유입되면서부터 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긴장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1997년 '나토-러시아 관계 정립 조례'는 이러한 긴장을 의식한 쌍방의 안보 불안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조례에서 러시아와 나토는 군비 통제 체제(arms control regimes)와 신뢰 양성 조치(confidence-building measures)를 통해 평화적인 협력에 바탕을 둔 안보 관계를 형성하기로 다짐한다.

하지만 나토의 'Open-door Policy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있는 정책)'에서 러시아는 언제나 예외였다. 그리고 이러한 나토의 입장은 그 어떤 약속이나 말로도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상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 

안보 딜레마의 악순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2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군용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2022.2.24
▲ 러시아 침공 개시 후 남부 마리우폴서 이동하는 우크라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2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군용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2022.2.24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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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러시아와 나토는 다시 한번 소련과 나토가 겪었던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2004년, 나토는 안보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반대에도 에스토니아를 비롯해 7개의 과거 소련의 위성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승인한다. 그러자 러시아는 나토의 확장에 대해 필요한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선포하게 된다 [4].

미 부시 정부가 이란의 핵위협으로부터 유럽을 지키겠다는 부실한 명목으로 폴란드와 체코에 전략적 핵무기 도입을 추진하자,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러시아의 영토 칼리닌그라드에 미사일 배치를 계획하고 실행해 옮긴다 [5].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에도 칼리닌그라드에 점진적으로 군비를 증강하자 나토는 4천 명의 병력과 지원군 4만 명을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푸틴은 이에 대해 핵전쟁을 가정한 훈련과 핵무기급 플루토니움 폐기(Plutonium Cleanup) 프로그램에서 탈퇴함으로써 반격한다 [6]. 

이후로도 푸틴은 지속적으로 '미국은 분리주의자들을 무장시켜 러시아 앞마당까지 보내고 있다'며 '러시아는 이 상황을 절대로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로 엄포했다. 푸틴 정부에게 우크라이나는 나토 확장을 억제할 마지막 보루인 셈이었다.

2014년 '러시아 군사독트린'을 보면 나토 확장은 러시아 지도층에게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언급된다. 왜냐하면 나토의 동진(東進)은 결과적으로 러시아 국경 근처에 나토의 군사기지가 들어선다는 의미이고 이는 러시아에게 정치적, 군사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권과 영토 보존이 본인들의 기득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러시아 권력층에게 나토의 영향력 확대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7]. 푸틴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에 대해 민감하게, 우리 시각에선 비이성적으로, 대응해 왔던 이유인 동시에 러시아 정부가 나토의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어떤 군사적 행동까지 불사할지 예측해 볼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한반도에 주는 교훈

러시아의 행보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이웃나라인 북한이 떠오르지는 않았는가. 몇몇 독자들에게는 북한을 이웃나라라고 부르는 것조차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분단체제 속에서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북한과 대한민국 사이에 작동됐던 안보 딜레마를 직시하고 결사적으로 빠져나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린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대응을 두고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그동안 나토가 러시아의 도발과 위협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해 왔다는 지적과 함께 유럽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군비 증강과 군사적 대응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나토 확장에 대한 집착이 현재 유럽이 떠안게 된 안보 위기의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승인될 확률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8] 러시아의 안보 보장 요구에 대해 그토록 단호하게 거부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며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만약 나토가 전자를 선택한다면 다른 것은 차치하고 더 많은 전쟁 피해자, 희생자들을 낳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반도는 우크라이나 못지않게 강대국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이다. 상위층에는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안보 딜레마가 형성되어있고 하위층에는 남과 북의 안보 딜레마가 해소되지 못한 채 가중되고 있다. 평화 공존을 외치던 문재인 정부도 북한을 타깃으로 하는 '사상 최대 군비 증강'에 나서며 결과적으로는 안보 딜레마를 증폭시키게 됐다 [9]. 

부디 새로운 대한민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교훈 삼아 안보 딜레마가 초래할 전쟁의 먹구름이 대한민국을 뒤덮지 않도록 한반도의 군비 경쟁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세워나가길 희망해 본다.
 
3월 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성 볼로디미르 대성당에서 한 여성이 예배 도중 울고 있다.
 3월 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성 볼로디미르 대성당에서 한 여성이 예배 도중 울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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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각주별 참고자료
[1] https://worldview.stratfor.com/article/russo-georgian-war-and-balance-power
[2] https://www.aljazeera.com/opinions/2022/2/9/no-russia-will-not-invade-ukraine
[3] https://www.dw.com/en/nato-why-russia-has-a-problem-with-its-eastward-expansion/a-60891681
[4] 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politics/2004/03/30/7-former-communist-countries-join-nato/476d93dc-e4bd-4f05-9a15-5b66d322d0e6/
[5] https://www.cairn.info/revue-politique-etrangere-2009-5-page-107.htm 
[6] https://www.dw.com/en/putin-promises-countermeasures-in-response-to-nato-expansion/a-36465534
[7] https://www.ponarseurasia.org/russia-s-strategic-calculus-threat-perceptions-and-military-doctrine/
[8] https://www.nytimes.com/2022/01/13/us/politics/nato-ukraine.html
[9]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5343.html


태그:#우크라이나, #러시아, #나토, #안보 딜레마 ,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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