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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 투표할 거지?"

며칠 전,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어느 진보정당에서 오래 활동해온 학교 선배였다. 30대까지만 해도 1년에 1~2번은 꼭 술자리를 가졌더랬다. 으레 그렇듯 40대에 접어들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나 안부를 확인하게 된 그 선배는 딱 두 가지 부탁을 했다. 

첫째, 자신이 몸담은 진보정당 대선 후보에게 투표해 줄 것. 둘째, 그 진보정당에 소정이라도 괜찮으니 후원금을 내줄 것. 두 번째야 흔쾌히 답했지만, 첫 번째 부탁은 선뜻 답을 건네지 못했다.

막판까지 혼전에 혼전을 더하는 20대 대선이야말로 유권자 개개인의 선택과 각 정당 후보들의 개별 득표율이 향후 대한민국의 실제 미래를 좌우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건 거대 양당 유력후보들이나 군소정당 후보들 역시 마찬가지일 듯하다. 

'all or nothing'이란 승자독식 구조도 그렇거니와, 초방빅 판세를 유지 중인 1위와 2위의 득표율 차이가 향후 당선자의 국정 운영에 영향을 미치리란 사실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군소정당들 또한 대선후보 득표율이 자신들의 존재증명과 매한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서울 마포구 망원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서울 마포구 망원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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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전투표 전날인 3일 세 아이의 아빠인 또 다른 선배와의 통화. 바로 그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는 학교 선배와 동기인 그는 요즘 유행하는 소신 투표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소신투표, 좋다.

지난 대선까지 그 소신투표에 매진해왔고, 그래서 '내가 뽑은 대통령'은 고작 1명에 불과한 터라 그 선배의 고민이 납득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뭔가 미진한 마음이 들었다. 그건 어제의 소신투표와 오늘의 소신투표가 같을 수 있는지, 그 행위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해낼 수 있을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꽤 장시간 통화를 하며 나눈 이야기가 바로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란 의제였다. 그 근거는 이랬다.

소신투표와 퇴행 사이

우선, 역사적 퇴행과의 단절. 지난 촛불대선 당시 가장 큰 의제이자 시대정신은 바로 '박정희 체제와의 단절'이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외신들까지 '독재자의 딸'이라 불렀던 그 박근혜씨가 국정농단 사건으로 임기도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지난 대선에서 촛불 시민들이 인정한 '박정희 체제와의 단절'은 적폐청산으로 이어졌고, 유권자들도 이를 시급한 과제로 받아들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청산은 그 의미가 빠르게 퇴색됐다. 부동산 정책을 비롯해 일정정도 현 정부의 실책과 '내로남불'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박근혜 탄핵' 이전과 비교해 공고함을 잃지 않은 기득권 카르텔의 높고 너른 벽을 국민들이 체감케 한 5년이기도 했다.

이번 대선은 한국사회의 갈림길을 분명히 하는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그 기득권 카르텔을 인정할 것이냐 마느냐의 분기점. 검찰개혁을 비롯해 온 국민이 필요성을 느끼게 됐으나 문재인 정부도, 집권여당도 칼을 대다 만 그 기득권 카르텔에 더 균열을 내느냐 마느냐가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둘째, 혐오정치와의 결별. 특정 세대를, 특정 성, 또 특정 인종을 혐오하는 정치가 횡행하는 시대다. 저 멀리 미국 내 기득권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방치한 '트럼프 현상'은 '혐오정치가 장사가 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도 이를 피해갈 순 없었다. 대놓고 특정 성을 조롱하고 갈라치기에 나서는 정치인이 지지자들을 자극했고, 그들을 정치와 대선의 복판으로 끌어들였다. 그런 특정 지지자들이 환호하는 공약이, 언동이 수시로 펼쳐졌다. 그 반대편엔 그런 혐오 정치와 선동에 일상을 위협받지나 않을지 우려하는 유권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볼까. 바이든 당선 직후, '트럼프 현상'을 이끌던 미국 내 혐오 세력은 미 국회 의사당을 점거하는 폭력사태를 일으켰다. 당시 폭력사태로 인해 최소 5명이 사망했다. 혐오정치가 미국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우리라고 여성과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세력에 의한 폭력이 일상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누군가는 지금도 학교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가족 간에서도 그런 폭력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대선이야말로 미국을 반면교사 삼아 그런 혐오정치를 패퇴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점심시간에 서울 명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직장인 등이 투표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점심시간에 서울 명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직장인 등이 투표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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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래세대와의 소통. 지난 대선 토론에서 'RE100'이 화제가 됐다. 누구는 토론 태도를 지적했고, 또 누구는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기회로 만들었다. 재생에너지와 연결된 기후위기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니게 됐다.

기후 위기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대전환이 됐던 탈탄소 정책이 됐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을 이끌 차세대 지도자는 이런 미래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또 그 미래산업을 이끌 미래세대와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 미래세대가 크게 염려하고 공포를 느끼는 기후위기 등 위기대처에도 능동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유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때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란 구호에 전 국민이 공감하던 때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누구를 뽑으시겠습니까'란 당시 구호는 8년이 지난 지금 더 유효해졌다. 아니 더 절실해졌다. 차별과 양극화, 혐오정치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심해졌다.

개별 유권자들 모두 자신의 계급과 욕망에 충실한 후보에게 투표할 권리를 가진다. 소신투표를 외치는 진보정당 지지자도,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보수야당 지지자도, 유능한 경제대통령이란 과거 보수의 슬로건을 가져온 여당 후보 지지자도 모두 1표씩을 행사하며 자신들만의 축제를 벌이는 중이다. 부디, 이들 모두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란 구호 하나 만큼은 잊지 말아 주시길.

태그:#20대 대선, #대통령선거, #투표, #사전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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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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