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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죽음을 기억할 사람들을 위해 항상 나의 죽음에 대해 신경을 썼다.
 나는 나의 죽음을 기억할 사람들을 위해 항상 나의 죽음에 대해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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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느 날 친구를 데리고 왔어, 딸이 1주일째 울지도 않고 숨소리가 없더래. 그래서 땅에 묻으려고 데리고 온 거였어. 근데 그때 윗목에 있던 딸이 꿈틀거리며 숨을 쉬더래. 그게 너야."
   
육십을 바라보는 언니가 최근 내게 해 준 말이다. 아프면 병원을 가야 하는데 죽기를 기다리던 시대에 태어난 나는 가족 중에 유독 약해서 하루를 견뎌내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몸져눕기 일상이고, 연약함은 스무 살 성인이 돼서도 그랬다. 약해서 얻은 병으로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고 몇 년을 더 집에서 요양했다.  

요양이 끝나도 건강검진을 요하던 회사에는 취직을 할 수 없었다. 건강검진을 하면 앓았던 병이 나올까 걱정했고,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항상 불안했다. 조금만 증세가 보여도 혹시 하는 불안감이 먼저 생겼다.

그런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리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아프면 긴 병으로 이어지는 두려움 때문에 늘 건강을 생각하며 살았다. 몸에 좋다는 것만 먹었고 몸에 나쁘다는 이유로 커피조차 마시지 않았으니 나름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관절, 변비, 시력, 곳곳에서 신호가 왔다. 남들은 노화 현상이라고 했지만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모든 걸 쉽게 생각했다. 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자만도 크게 한몫했다. 금방 나을 거라는 안일한 대처는 결국 증세를 악화시키기도 했다.      

노화의 자연적 현상은 특별한 약도 없이 불청객처럼 찾아와 심한 고통을 주는 나쁜 증상이었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 불편한 노화는 여전히 적응이 잘 안 된다. 날씨처럼 변덕을 부리며 나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생각의 질병까지 덤으로 얻었다. 생각을 움직이는 마음의 병이 균형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내 생각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휘둘리고 있었다.    

"넌 죽으려고 살고 있니?"

아무도 모르게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죽음'을 앞질러 말하던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넌 죽으려고 살고 있니? 너무 멀리 간다." 별거 아닌 병에 심각할 필요 없다는 위안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아프면 죽음을 생각했다. 죽을뻔한 적이 있어서 그런 걸까. 간단한 감기 몸살에도 죽음을 떠올린다. 0.1% 확률이 내게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죽음은 삶처럼 늘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늘 삶의 끝에 있는 죽음을 먼저 생각하는 내가 나이에 맞지 않고 득이 없음을 알고 있다. 또한,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 자기 체면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죽음에 대한 예행연습은 상상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살아있는 내가 죽음을 정의할 수는 없다. 죽음의 길이도 모르고 죽음의 끝도 모른다. 단지 정해져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     

며칠 전, 시끄러운 소리에 나가보니 복도 끝 호에 혼자 살던 어르신이 돌아가신 듯했다. 모든 짐을 정리하며 쓰레기로 만들고 있었다. 귀가 안 들려 그 옆집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도 잘 알지 못하던 어르신이었다. 가끔 긴 복도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곤 했었다.

여러 질문이 맴돌았지만, 짐을 정리하는 사람들에게 짐작했던 답을 들을까 무서워 차마 말도 건네지 못했다. 누구의 죽음이고 어떤 죽음이든 모든 죽음은 사람을 숙연하게 만든다. 죽음 앞에서 행복하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버지는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 다음날 운명하셨고, 외할아버지는 '이것들은 때가 돼야 찾아온다'며 호통치다 죽음 속으로 떠났다. 내가 기억하는 한 행복한 죽음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의 죽음을 기억할 사람들을 위해 항상 나의 죽음에 대해 신경을 썼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몸이 아프면 유언장을 작성하듯 기록을 남겼고 정리를 했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건전해야 하는데 죽음은 강박증처럼 나를 괴롭혔다. 그게 문제였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불안증은 그런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마이뉴스>에 실린 박도 기자님의 '언제 불러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기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강하게 압박했던 죽음에 대한 짓눌림은 그 문장 하나로 완전히 사라졌다. 안도할 수 있는 마음의 위안까지 얻었다. 마른나무에 꽃을 피운 향기로운 죽음이었다.

죽음의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이보다 더 희망적인 말은 아직 찾지 못했다. 물론, 박도 기자님의 나이를 생각하면 초월할 감성이지만, 철학적인 죽음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살아있는 동안 현실에 충실하고 남아있는 시간까지 삶을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찾아올 '죽음'을 애써 서두를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전제인가. '언제 불러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태그:#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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