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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의 '인권회복 기도회' 소식을 전하는 1975년 1월 28일자 <동아일보>. 정의구현사제단은 당시 지학순 주교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꾸준히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인권회복 기도회" 소식을 전하는 1975년 1월 28일자 <동아일보>. 정의구현사제단은 당시 지학순 주교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꾸준히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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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선언에서 채택한 '네 가지의 결의'는 사실상 사제단의 활동목표이다. 유신체제 반대는 인권유린에 대한 비판의 다른 이름이고 이는 곧 민중의 창의와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사회의 실현을 의미한다. 요약하면 정의로운 민주사회의 건설에 목표를 두었다. 

사제단의 시국선언 이후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에 나선 것은 가톨릭대학이었다.

10월 11일 가톨릭대학 신학부 학생성당에서 구속자를 위한 철야 기도회를 열고 〈결의문〉을 통해 "하느님의 가장 고귀한 선물인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이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와 유신체제라는 미명 아래 무참히 짓밟히고 있음에 의분을 참치 못한다"고 토로했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 원주 원동성당에 모여 정부규탄과 지 주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주여, 이땅에 정의를!", "부정부패 뿌리뽑아 사회정의 이룩하자"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 원주 원동성당에 모여 정부규탄과 지 주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주여, 이땅에 정의를!", "부정부패 뿌리뽑아 사회정의 이룩하자"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 지학순정의평화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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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 소속 11명의 신부가 주최한 '정의와 평화, 조국을 위해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고 있는 이를 위한 기도회'가 10월 26일 연희동성당에서 열렸다. 함세웅 신부는 〈강론〉에서 "인권옹호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사명이며 가난한 이를 외면하고 부정과 불의를 묵인한다면 죽은 교회"라고 강조하면서 7가지를 역설하였다. 

1. 고위층은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재산을 공개하라.
2. 언론은 사실 보도에 충실할 것은 물론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선언, 각 기도회의 강론, 비상군법회의의 기록을 빠짐없이 국민 대중에게 알리라.
3. 정부는 언론을 비롯한 노조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4. 당국은 학원과  종교의 사찰을 중지하고 자유를 보장하라.
5. 민주경찰을 1인 장기집권의 도구로 삼지 말라.
6. 노동자의 쟁의권을 부활시키라.
7.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의 사인을 규명하라. (주석 3)    

같은 날 가톨릭대학 신학부학생 2백여 명이 교정에서 구국기도회를 열고 4개항의 요구 조건을 제시하면서 혜화동 로터리에서 시위했다.

① 국민의 생존권과 기본권 존중 및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할 것.
② 유신헌법 철폐 및 민주헌정을 회복할 것.
③ 교회와 학원의 신성성(神聖性)을 보장할 것.
④ 지학순 주교 등 성직자, 교수, 학생들을 즉각 석방할 것.
1974년 '지학순 주교 석방'을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원주 시민들
 1974년 "지학순 주교 석방"을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원주 시민들
ⓒ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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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은 10월 29일 '사회의 정의구현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121명의 신부, 수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주 가톨릭센터에서였다. 3일간 진행된 세미나에서 '해방신학의 영성' 등 5개 주제의 강연이 끝난 후 '촉구한다'는 제목 아래 언론의 자유 수호와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선언문〉을 채택했다. 강연주제는 다음과 같다.

① 지 주교 사건의 법률적 사회적 고찰
② 국내외 정세
③ 교회의 현실참여에 대한 신학적 고찰
④ 국내외 경제 고찰 
⑤ 해방신학의 영성
  
11월 6일 명동성당에서는 사제단 최초로 성직자, 수도자 및 평신도 1,300여 명이 모여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기동경찰이 집회 4시간 전부터 인근 도로를 차단하는 등 통행이 극히 어려웠는데도 일반 시민들도 다수 참여한 집회였다. 정하권 신부는 강론에서 종교는 현세의 인간생활을 좌우하는 정치에 무관심할 수 없으며 교회의 사회참여는 정권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유물론의 극복이 그 목표라고 강조, 공산주의적 유물론이나 자본주의적 유물론을 다같이 비판하였다. 

정의구현사제단 출범 이후 정부와 수구세력에서 사제단의 활동을 정치개입으로 몰아가고 있는 데서 나온 비판이었다. 

1974년 하반기부터 천주교의 각종 미사나 집회 때이면 원주교구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벽의 <천주공경가>를 본떠 지은 '담시' 〈눈물의 노래〉가 읊어지고 있었다. 49행에 이른 장문의 담시 중 전반부와 종결부문을 소개한다.

 원주교구 지주교님 억울하게 갇히셨네 우리국민 기본권과 우리사회
 자유위해 사회정의 수호하고 생존권익 옹호했네 원주교구 지주교님
 억울하게 갇히셨네 민주헌정 확립해야 국가안정 가능하고 기본자유
 보호해야 경제발전 틀림없네 원주교구 지주교님 억울하게 갇히셨네
 (중략)
 억울하게 갇히셨네 지주교님 신념행동 평화로운 정의주장 내란선동
 기소사실 근거없는 조작내용 지주교님 신념행동 정치활동 관계없다
 양심선언 구절구절 정치강령 전혀없다 지주교님 신념행동 인간자유
 수호하고 지주교님 신념행동 사회정의 옹호하네 지주교님 옥중에서
 천주님의 성총풍후 전국정의 구현사제 외부에서 성총충만 현대사회
 정치현실 인간생활 직배영향 정치문제 눈감는자 궤변가야 물러가라
 인간양심 침해하는 정치권력 있을때면 천주교회 관심비판 안가질수
 있겠는가 정의구현 평신도야 잠을깨고 정신차려 교회신자 겉이름만
 탐을내는 무리쫓고 아쉬운때 교회만을 이용하는 무리쫓고 적당하게
 체면보는 위선마음 반성하자 우리모두 어려운때 교회위해 희생하자 
 우리각자 괴로울 때 천주님께 기구하자. (주석 4)  


주석
3> <암흑속의 횃불 - 7,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증언 제1권>, 141쪽,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1996.
4> 앞의 책,  147~14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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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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