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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B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2주기를 맞아 3일부터 10일까지 총 6회에 걸친 추모 연재 '이재학, 2주기'를 진행합니다.[편집자말]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조합원들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조합원들
ⓒ 한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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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리랜서 피디가 임금 인상을 말하자 잘렸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기사를 처음으로 이재학 PD를 알게 되었다. 사실 어느 방송국에서도 이런 일이 놀랍지는 않다.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나의 동료와 선·후배들도 여러 차례 임금 인상을 말해왔고, 대체로 실패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조금만 일찍 이재학 PD를 만났더라면

다온분회는 대구MBC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노동조합이다. 우리 조합원들도 회사 안에서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이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는 교섭도 진행하고 있고, 이젠 부당한 일을 가만히 감내하지 않는다. 부당한 것엔 기꺼이 투쟁으로 맞선다. 거대한 방송사와 늘 고군분투하며 버텨내고 있다. 

이재학 PD도 프리랜서 신분으로 소송을 시작했다기에, 기사를 접하자마자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사는 것이 바빠 그 만남은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났고, 몇 달이 지나고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비통했다. 빨리 만나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우리는 분노했다. 그 분노를 다온분회의 성명서에 꾹꾹 눌러 담았다.

"우리는 고(故) 이재학 PD 이전에 이미 고(故) 이한빛 PD를 잃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청춘이 스스로 안타까운 죽음을 택하는 것을 목도해야 하는가. 이제는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그동안 거대한 방송 산업 이면에 가리기에만 급급했던 비정규직 사용 문제를 수면 위에 떠올려야 할 때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제공하며, 노동자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야 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 비정규직 다온분회, 2020년 2월 10일)

故 이재학 PD, 故 이한빛 PD... 사고로 목숨을 잃는 방송 스태프들까지. 노동조합의 분회장이 되고 나서, 고인들을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가 많았다. 나는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 또한 방송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감정에 조금만 이입해도 갑자기 눈물이 울컥울컥 터졌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감정을 담지 않고 쪽지에 적힌 내용만을 읽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故이재학 PD는 떠나고 나서야 노동자성을 인정받았고, 이런 기이한 방송계의 노동 상황이 조금이나마 수면 위로 드러났다. 

'억울해 미치겠다 (...)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왜 그런데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

그의 유서 문구들이 마음을 후벼파냈다. 몇십 년 일을 사랑하며 청춘 다 바쳐서 일했더니 돌아온 대가가 이거라니. 너무 억울하니까 고통스러운 선택을 한다는 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도 모르겠다.

사람을 잃고 나서 부조리함을 고치겠다는 것. 그것만큼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없다. 그러나 방송계에서 오랜 시간 몸소 일하고 느낀바, 이곳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매번 연속으로 벌어지는 곳이다. 

수 년 동안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한순간에 해고하고,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바깥의 노동문제는 말하면서 정작 안에 있는 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들은 말하지 않는다. 방송계의 노동 상황은 실태 조사도 어렵다.

비정규직 현황과 규모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만큼, 방송국에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와 방송사가 직접 해결할 의지가 없으면 방송계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뜻과 같다.

상황은 어려워도 가만히 그 자리에 머물 수만은 없다. 더 많이 말해야 한다. 후배들을 위해 판례를 남기고 싶었다는 그를 가만히 생각한다. 그가 남긴 뜻을 이어받아 후배인 우리는 더 많은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찾으며 일할 수 있도록 연대할 것이다. 그곳에서 이재학 PD가 이곳에 남은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함께하고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그가 떠난 지 2주기가 되었다. 오늘은 후배가 되어 그에게 한 번도 건네보지 못한 인사를 전한다. 이재학 선배님, 그곳에서는 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한혜원은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의 분회장입니다.


태그:#이재학PD, #다온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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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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