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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젊은 여성과 걸어가는 노인이 대비된다.
 서울시립미술관. 젊은 여성과 걸어가는 노인이 대비된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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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배재고등학교가 강동구 명일동에 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서소문, 현재 배재정동빌딩 자리에 있었다. 입학식에서 선생님들이 "여러분들이 서울 시내에서 제일 비싼 땅에서 공부한다"고 해서 모두 웃었지만, 사실이었다.

고등학생들은 신축 건물에서 공부했지만 중학생들은 지금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공부 했다. 중학교 교사의 삐걱대던 계단과 푹 패인 발판이 아직도 생각난다.

매주 한 시간씩 채플 시간이 있었는데 전교생이 줄줄이 뒷문을 통해 정동제일교회에 가서 예배를 봤다. 채플 시간에 다들 졸았지만 선생님들이 이 시간 만큼은 엄격하지 않으셨다.

채플시간에는 조금 통제가 느슨해져서 이화여고 앞 분식점 정동하우스에 가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시국사건이 나면 덕수궁 쪽으로 가는 길을 통제해서 시청역 쪽으로 돌아서 가야 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대법원이 있었으니까. 

1895년에 조선 최초의 재판소인 평리원(平理院)이 대법원 자리에 건립되었다. 1928년에 조선총독부가 그 자리에 경성재판소를 세웠다. 해방 후에는 그 건물을 대법원 건물로 사용했다. 대법원은 1995년 서초동으로 이전한다.

지도를 보면서 서울시내 주요 건물에서 찾기 힘든 정북향 건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덕수궁과 경복궁을 마주보고 있다. 부지가 4600여 평에 달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건물을 다른 향으로 앉힐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조선총독부가 조선 왕실과 맞서라고 북향으로 지은 것 같다. 

평리원과 경성재판소가 그 자리에서 50년을 있었고, 대법원도 45년부터 95년까지 50년을 그곳을 지켰다. 이러저러한 법원이 100년을 있었던 자리에 미술관이 들어섰다. 옛 건물의 파사드(Facade)는 그대로 두고 뒤쪽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현대식 건물을 신축하여 2002년 서울시립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지금 미술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옆 문은 예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하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본관 건물은 보지 못했다. 높은 담장을 치고 경비가 서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 건물을 제대로 본 것을 미술관이 생긴 후다. 파사드를 남겨서 역사성을 남긴 것은 다행이다. 지금보면 당연한 듯하지만 그 당시 만해도 뭐든 전면 철거, 전면 재전축을 당연시 했던 시절이다. 그래도 20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문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역사성을 남기는 건축이 가능해진 듯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개관 후에 정말 주옥같은 전시를 이어갔다. 과천 현대미술관은 너무 멀었고, 민간 미술관도 많지 않았다. 규모도 보잘 것 없었다. 이때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는 독보적이었다. 전시를 보러 가서 실망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모두 내 추억의 책꽂이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신축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무리 멋있던들 지나간 추억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서울시립미술관은 항상 그려보고 싶었다. 먼저 주황색 볼펜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석조로 만들어진 파사드를 중심으로 그렸다. 나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오른쪽이 약간 올라간다. 그래서 그림이 살짝 찌그러지는데 그것은 무방하다. 아니 오히려 자연스럽다.

하지만 원근감을 나타내는 투시도법은 잘 지켜서 그려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럽다. 투시도법까지 무시하고 그리면 그림이 어색해 진다. 핸드폰 검색을 하는 여성 2명과 벼이삭처럼 고개를 숙인 노인을 같이 그렸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현재 진행중인 전시 포스터가 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현재 진행중인 전시 포스터가 보인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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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은 현재도 좋은 전시를 하고 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UN/LEARNING AUSTRALIA)>는 호주 현대 미술 전시다. 규모도 크고 수준도 높다. 단 나에게 아직 호주 미술은 멀게만 느껴진다. 

<[허]스토리 뷰>는 1980년대 여성주의 미술에 대한 전시다. 가나 아트 컬렉션과 협업하여 다양한 여성 작가의 시선을 담았다. 미디어 아티스트 송상희의 개인전 <자연스런 인간>은 인간 존재에 대한 작가의 질문이다. 재미나다. 그리고 상설 전시로는 <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를 하고 있다.

모든 전시가 흥미롭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미술관에서는 관람객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작품을 비추는 조명이 좋아서 그림 보기가 편하고, 그림을 가까이서도 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이번 천경자 전시는 작품과 캡션에 각각 조명을 비추고 있는데 마치 요술을 부린 것처럼 작품이 잘 보인다. 작품도 감동이지만 전시도 감동이다. 다른 미술관도 이렇게 전시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래도 조만간 한번 더 가서 하루 종일 그림을 보면서 놀아야겠다.

태그:#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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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스케쳐 <오늘도 그리러 갑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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