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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워 바디>(2018). 달리기를 하는 동안, 자영과 현주는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이 어떠한 행위를 하고 싶은지 감각하고 공적 공간에서 거부당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거절당한 여성의 욕망들을 공적 공간에 내던지면서 용기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몸이기도 하다.
 영화 <아워 바디>(2018). 달리기를 하는 동안, 자영과 현주는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이 어떠한 행위를 하고 싶은지 감각하고 공적 공간에서 거부당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거절당한 여성의 욕망들을 공적 공간에 내던지면서 용기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몸이기도 하다.
ⓒ 한국영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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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초급반 4개월 차로, 겨우 자유형과 배영을 배웠지만 재밌다. 처음 수영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꾸준히 수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물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컸고,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수영을 경험해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제안으로 바다 수영을 하면서, 물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처럼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행위나 세계가 불시에 타인에 의해 내 삶에 찾아와 균열을 내는 때가 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아워 바디(2018)>처럼 말이다. 

<아워 바디>는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서른한 살 자영이 수험생활을 중단하고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겪는 변화를 다룬 영화이다. 자영은 명문대 졸업생이지만, 학력 외에 별다른 이력이 없는 상태로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희망하는 예비 노동자였다.

공무원은 애인과 가족이 바라는 삶이자,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오랜 수험생활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시험을 보더라도 공무원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날로 무력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영이 더는 공무원 시험에 뜻이 없음을 내보이자 애인이 떠났고, 엄마도 냉랭해졌다. 두 사람에게는 자영의 선택이 무책임하고, "사람답지" 않은 행동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시험 준비만 하느라 마땅히 고민을 나눌 친구도 없고, 유일한 위로라고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마시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자영은 맥주 봉지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것마저 숨차고 버거울 만큼 지쳐있었다. 계단 아래로 맥주 캔 하나가 굴러 떨어져도 한숨만 내쉬던 때, 눈앞에서 그것을 잽싸게 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현주를 우연히 만난다. 이후에도 종종 골목, 공원에서 혼자 달리는 현주를 목격한다. 자영은 자신감 있는 태도로 달리기를 하는 현주에게 호기심이 생겼고, 낡은 운동화를 꺼내어 무작정 현주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자신과 다른 낯선 몸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자영은 현주를 뒤따라 달려보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기에 너무 버겁고 힘겨워 그만 자리에 앉아 눈물을 터트린다. 이런 모습을 본 현주는 자영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달리기 동호회도 소개해준다. 시험 준비만 하고, 애인과 가족 외에는 별다른 관계망이 없었던 자영에게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생기게 된 것이다. 현주는 자영에게 달리다가 힘들면 자기 뒤에 바짝 붙어서 뛰라는 친구이자, 운동화 끈을 묶는 방법부터 함께 달린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잘했다고 응원해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달리기'는 자영에게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와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주변의 기대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으로 삶을 성찰하고 회복하는 행위이다. 동시에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확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달리기는 자영의 삶에 찾아온 낯설고 새로운 몸의 감각이자 시공간의 이동과 확장을 드러내는 주요한 행위이다. 

다른 삶을 욕망하는 여성의 몸

자영은 수험생활을 접고 어머니에게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았지만 "만 29세"라는 조건에 포기한다. 마침 중학교 동창이 자영에게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제안하고, 일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영의 몸은 수험생으로 있던 집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있던 회사로 이동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자영이라는 한 인물의 변화를 드러내는 방식이 단일하지 않고, 몸의 변화, 공간의 이동, 시간의 경과, 옷의 변화 등으로 교차하며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자영의 몸은 공무원을 희망하던 때와 다른 몸/삶을 만나고, 욕망하면서 변화한다. 

만일 이 영화가 단순히 변화하는 자영의 몸(육체성)만을 다루었다면, 영화 제목은 '아워 바디Our Body'(우리의 몸)가 아니라 '마이 바디My Body'(나의 몸)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자영이 달리기를 통해 단지 자신의 몸을 변화시키는 것에 초점이 있지 않다. 어떤 몸을 만나고 바라보고, 그 몸들을 욕망하는지 다룬다.

현주의 몸, 동생의 몸, 친구의 몸을 응시하고, 동시에 자신의 몸을 보고 관찰하는 시간이 늘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영 스스로 여성의 몸을 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면서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는 현주의 말에서도, 달리기가 왜 운동으로만 축소될 수 없는지 드러낸다.

그동안 여성의 몸은 직장에서 특정한 행동, 규율, 복장을 요구받아 왔다. 또한 공원, 골목, 도심, 밤이라는 시공간은 여성에게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하는 공간이 되고, 여성의 몸은 특정한 장소나 시간에서 드러나지 않을 것을 강요당한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는 동안, 자영과 현주는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이 어떠한 행위를 하고 싶은지 감각하고 공적 공간에서 거부당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이때 여성의 몸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교차로이자,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나의 욕망과 뒤섞여 재구성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거절당한 여성의 욕망들을 공적 공간에 내던지면서 용기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몸이기도 하다. 

자영의 달리기 속도와 자세가 안정되는 동안 사회적 위치도 바뀐다. 취업준비생에서 사무보조로, 그리고 인턴이 된다. 만일 이 영화가 자영의 성공담을 다룬 영화였다면, 영화의 결말은 인턴 이후에 정규직이 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불시에 찾아오는 낯선 몸/삶이 있듯이, 예고하지 않게 떠나는 몸들도 있다. 현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처럼, 새로운 몸/삶의 마주침이 나의 몸/삶에 변화를 이루었듯, 주변 몸들의 부재는 또 다른 삶의 변화를 만든다. 

자영이 공무원 시험을 중단했을 때처럼, 모두가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없고, 그러한 삶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자영에게는 안정적인 직장보다 어머니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동생이 좋아하는 화장품을 사주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몸/삶을 살아보는 것이 더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늘 취업에 비해 하찮은 것, 부차적인 것처럼 취급되어 왔다. 늘 공적 영역, 안정적인 직장이 사회생활의 전부이자 "사람다운" 삶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자영이 꿈꾸는 다른 삶은 계속 거부당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만일 이 영화를 노동의 관점에서 읽는다면, 일 중심사회가 좋은 삶이라고 설정해놓은 가치와 기준에서 조금 비켜서서 그 주변을 오가는 여러 몸/삶들(취업준비생, 계약직 노동자, 노동하는 여성 등)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직업군, 직함, 계약형태에 관한 논의를 넘어 노동하는 몸/삶에 관한 논의로 확장시킬 수 있는 상상력을 얻을지도 모른다.

함께 하는 몸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른 몸들을 마주하고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새로운 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이신 천주희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2월·1월호(합본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영화_아워바디, #다른몸_다른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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