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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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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코로나19 이후 혼술족이 되었다. 그리고 맥주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취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맛이 주는 즐거움에 탐닉했다. 새로운 맥주를 사기 위해 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이동하기도 하고, 맛과 감각을 글로 기록하기도 한다.

다양한 맥주 스타일의 기원을 공부해보는 것은 물론이다. 강원도에 가면 강원도의 맥주 양조장을, 부산에 가면 부산의 맥주 양조장을 찾는다. 시에라 네바다, 토플링 골리앗, 파운더스 등 미국이나 유럽의 양조장들을 경험해보는 것 역시 나의 버킷 리스트에 적혀 있다.

더 오래된 마니아들에게 비할 수준은 아니지만 '나의 취미는 맥주다'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생경한 풍경일 것이다. 와인을 즐기는 것은 고급 문화에 가깝게 느껴지지만, 맥주를 마시는 행위는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맥주를 판별하는 기준은 '시원한 목 넘김'이었다. 카스와 테라 등 대기업형 라거는 목 넘김의 신화를 완성한다. 한국의 전투적인 술자리 문화도 한몫했다. 맥주가 '소맥'을 만들기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기준으로 삼는 소비자도 많다. 오랫동안 맥주는 '본 게임'인 소주로 넘어가기 위한 입가심 음료, 혹은 치맥을 완성하는 수단 정도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맥주에 대한 인식은 수년 전과 비교했을 때 분명히 달라졌다. 자신의 취향을 전시하고, 그 취향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하는 세대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필요했다. 수제 맥주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를 그대로 번역한 용어다. 수제 맥주의 핵심은 다양성과 창의성이다. 대기업형 라거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새로운 맛이 매력이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표현은 '하우스 맥주'였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는 양조장 업장 내에서만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주세법이 개정된 이후, 소규모 양조장 맥주의 외부 유통이 허용된 것은 대표적인 전환점이었다. 그 이후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4캔 만 원'으로 다양한 해외 맥주와 수제 맥주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수제 맥주의 전성기가 맞을까?

2021년, 한국 수제 맥주는 유례없는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듯 보인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2020년 한국 수제 맥주 업계 매출은 1180억 원으로, 2015년(218억 원) 대비 다섯 배가량 상승했다. CU에서 판매 중인 곰표 밀맥주는 카스를 제치고 맥주 전체 매출 1위에 올랐다. 

지난 5월 CU는 "지난달(4월) 29일 국내 1호 위탁생산 수제 맥주로 곰표 밀맥주의 물량을 대량 공급하기 시작한 뒤 이틀 만에 카스와 테라, 하이네켄 등 제치고 국산, 수입 맥주를 통틀어 매출 1위에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맥주는 껌, 라면, 속옷, 골뱅이 등 타 업종과 협업을 한 '펀슈머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을 만난다.

핸드앤몰트 양조장은 'AB인베브(오비맥주)'에 인수되었고, 오비맥주는 산하 수제 맥주 협업 브랜드 KBC(KOREA BREWERS COLLECTIVE)를 만들었다. 신세계는 플레이그라운드, 카브루 등의 양조장과 손을 잡고 프로야구 콘셉트의 맥주를 내놓았다.

롯데칠성음료는 중소형 수제 맥주 브루어리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수제 맥주 오디션 '수제 맥주 캔이 되다'를 열었다. 지난 5월 제주맥주가 코스닥에 이름을 올렸다. 편의점 판매 1위에 빛나는 '곰표 밀맥주'의 세븐브로이 역시 내년 하반기 유가증권 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수제 맥주 전성기가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언뜻 주저하게 된다. '수제 맥주를 위해 만들어진 수제 맥주'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의문점도 커진다. 대기업이 수제 맥주를 위탁 제조(OEM)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 양조장의 창의성은 얼마나 발휘될 수 있는가. 수제 맥주의 힙한 이미지만을 차용하는 것은 아닐까.

'인싸' 마케팅에 영합하는 맥주가 편의점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맛에서도 차별성이 발휘된다고 볼 수 있을까. 모든 수제 맥주가 곧 '4캔 만 원', '독특한 상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맥주를 구매하는 곳은 '4캔 만 원'의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다. 그러나 이러한 통로에 납품할 수 있는 여건과 시설을 갖춘 양조장은 한정적이다. 그 외의 양조장들은 자체적으로 맥주를 판매하거나, 주류 전문 매장인 바틀숍과 펍 등에 맥주를 공급한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유행 이후 많은 바틀숍이 도산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긴 했지만 펍의 영업 역시 오랫동안 위축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작 다양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양조장의 맥주들은 조명받을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배송, 수제 맥주 활성화의 첫걸음
 
'더부스 브루잉'이 출시했던 맥주 'LGBTQ'
 "더부스 브루잉"이 출시했던 맥주 "LGBTQ"
ⓒ 더부스 브루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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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맥주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맥주는 '뉴잉글랜드 IPA'다. 맥주의 주된 재료인 홉(Hop)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 맥주는 마치 열대 과일 주스를 먹는 듯한 풍미를 과시한다. 친구들과 모일 일이 있을 때, 나는 꼭 이런 스타일의 맥주를 한 캔 씩 준비하곤 한다. '맥주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냐'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그러나 이런 스타일의 맥주는 4캔 만 원의 단가에 맞출 수 없다. 많은 홉을 사용하기 때문에 재료의 단가 역시 올라간다. 편의점에 들어갈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주류 전자상거래가 전세계 상당수의 시장에서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OECD 37개국 중 한국과 폴란드만이 주류 온라인 판매 및 배송을 제한하고 있다.

미국에는 '주류 아마존'이라고 불리는 드리즐리(Drizly)가 있다. 이와 같은 플랫폼을 보유한 경우 팬데믹으로 인한 수제맥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지역 기반의 수제 맥주를 주문해서 마실 수 없다. 국내 업계는 일제히 '주류의 통신판매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주류의 온라인 판매가 제한된 것은 아니다. 국내 주세법상 유일하게 온라인 결제와 배송이 가능한 것은 막걸리 등의 전통주뿐이다. 정부는 2017년 전통주 산업 육성을 명목으로 전통주의 통신판매를 허가했다. 다양한 지역의 수제 맥주 역시 육성될 필요가 있는 식문화 산업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배송 허용은 풀뿌리 식문화를 살리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하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이 주류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온라인 주류 판매 제한의 근거로 삼는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우려 지점이다.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는 양조장을 소규모 양조장으로 제한하는 것 역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 보호와 주류 시장 보호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논의되어야 한다.

2018년 8월 국내 수제 맥주 브루어리인 더부스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연대의 메시지를 담아 'LGBTQ'라는 이름의 맥주를 만들었다.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와 같은 앞글자를 지닌 리버티 홉, 글래시어 홉, 블랙베리, 타르트체리, 퀴노아 등의 재료를 활용한 것이다.

이 맥주가 강조하는 무지개빛처럼, 수제 맥주 시장은 새로운 맛을 실현하는 다양성의 장이다. 시장의 다양성, 맛의 다양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 역시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만 수제 맥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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