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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저녁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열린 "성구매자에 의한 피살여성 10주기 추모 문화제”
 11월 1일 저녁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열린 "성구매자에 의한 피살여성 10주기 추모 문화제”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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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저녁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열린 "성구매자에 의한 피살여성 10주기 추모 문화제”.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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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가명). 이젠 안녕!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1일 저녁 경남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다짐했다. 10년 전 이날 새벽 창원 한 모텔에서 성구매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피해여성 고 헬레나를 기억하는 '성구매자에 의한 피살여성 10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소장 김유순)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그녀가 일기장에 남긴 구절을 떠올리며 해마다 이맘때 이곳에서 모여 "환하게 웃고 싶다"는 이름으로 추모문화제를 열어왔다. 다행히 고인을 살해한 가해자는 붙잡혔다. 

"항상 밝게 살자, 환하게 웃고 싶다"는 고인이 일기장에 남긴 글이다. 여성단체들은 고인을 기리는 추모제를 이날 마지막으로 열었다.

김유순 소장은 "상남동은 겉으로는 10년 동안 많이 변한 것 같지만, 화려한 불빛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며 "추모제는 오늘이 마지막이지만, 성매매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당시 여성인권상담소장이었던 최갑순 부마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은 "10년 전 그날 기억이 생생하다. 조정혜 로뎀의집 관장한테 연락을 받고 헬레나를 찾기 위해 여러 병원 영안실을 다녔다. 한 병원 영안실에서 '무연고자'로 처리하려는 사실을 알았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가족도 찾고 여성단체들이 나섰다"고 했다.

이어 "그때 여성단체들이 상남동에 모여 추모집회를 열었다. 그때는 입이 있어도 할말이 없다는 뜻으로 지금처럼 마스크를 썼지만 'X' 표시를 했다"며 "당시 유흥시설 업주들이 확성기로 반대했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최 이사장은 "상남동 불빛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며 "우리나라가 영화 <미나리>,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다 그룹 <방탄소년단>으로 세계에 K-문화를 자랑하고 있지만, 성매매 피해를 비롯한 여성인권은 나아진 게 없다"고 했다.

조정혜 로뎀의집 관장은 "10년 전 우리 곁을 떠났던 고인의 기일은 다시 한번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며 "그날 날씨는 쌀쌀했다. 비가 내린 새벽 한 시에 병원으로 가는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함께 살았던 친구들이 울면서 헬레나가 성구매자에 의해 모텔에서 살해되었는데, 장례도 없이 무연고자로 처리된다고 아우성을 쳤다. 일기 내용에는 항상 밝게 살자, 환하게 웃고 싶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조 관장은 "많은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고인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이제 창원 마산합포구 서성동 성매매 집결지도 110년 만에 종지부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것은 우리 모두가 성매매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여기까지 왔다"며 "그렇지만 이제 성매매 현장은 디지털로 넘어가, 많은 청소년들에게 검은 손길을 뻗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관장은 "우리는 더 열정적으로 디지털시대에 성산업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야 한다. 10년이라는 세월은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함께 목소리를 내다 보니,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내면에서 변화의 용트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정혜 관장은 "성매매 착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들을 위해 천국에서라도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소외되고 힘든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 활동해야 된다"며 "끝까지 이 길에 손을 놓지 않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폭력 피해 여성들이 환하게 웃으며 여성답게 살아갈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신순재 김해성폭력상담소장은 "여기 상남동 밤거리는 변함이 없다. 여전이 그 날의 밤처럼 은밀한 웃음소리 오가고, 매캐한 착취의 냄새가 진동한다. 당신의 인권을 유린하고 당신의 목을 졸랐던 더러운 돈과 권력과 폭력이 매스껍기만 할 뿐이다"고 했다.

신 소장은 "헬레나, 당신이 죽음으로 우리에게 외친 성매매 없는 세상, 인권이 바로서는 사회는 이다지도 멀기만 한 거냐. 아직도 요원한 꿈처럼 아득하기만 하다"며 "매년 당신을 추모하며 이렇게 다시 모인 우리들의 심정은 10년 전 당신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했던 다짐의 말들이 부끄러워지지 않기 위한 까닭이다. 잊지 않고 이뤄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 소장은 "우리는 믿는다. 우리의 외침은 무력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외침이 모여 함성이 되고, 우리의 몸짓이 거대한 힘으로 뭉쳐지는 것을 원하고, 믿는다"며 "당신의 죽음은 슬픔일지언정 정말로 말하지 않았고, 당신의 희생은 고통일지언정 사위어지지 않을 희망을 외쳤다. 당신이 남긴 희망이 우리를 다시 이 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하였다"고 했다.

신순재 소장은 "당신, 그리고 또 다른 이름의 당신들, 반성매매, 평등과 평화의 세상을 우리가 만들겠다. 돈과 권력, 폭력에 맞서고 성매매가 사라진 자리에 인권이 피어날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 결코 당신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여성인권상담소는 "올해는 성매매피해 여성들의 감금과 착취, 희생으로 만들어진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지 17주년이 되는 해"라며 "성구매자에 의해 착취와 폭력을 당하고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성매매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2011년 여성의 죽음으로 당시 관련기관과 여러 차례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성매매불법광고, 밤거리를 위험하게 운행하는 보도 차량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며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그 거리에서는 여전히 불법광고가 나뒹굴고, 보도 차량은 취객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운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당시 식품 위생법(제22조)에 명시된 '유흥업소에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를 둘 수 있다'는 법 조항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정을 위한 노력을 했으나, 아직도 착취와 차별의 이름 '유흥접객원'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인권상담소는 "그녀를 기리는 추모문화제는 끝이 난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사회적 낙인 속에 누구도 관심 갖지 않으며, '아무도 모르는' 혹은 '몰라도 되는' 사람으로 스러져 갔던 여성들을 추모하고 성매매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

창원 상남동은 우리나라 최대 유흥시설 밀집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11월 1일 저녁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열린 "성구매자에 의한 피살여성 10주기 추모 문화제”. 김유순 소장.
 11월 1일 저녁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열린 "성구매자에 의한 피살여성 10주기 추모 문화제”. 김유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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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저녁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열린 "성구매자에 의한 피살여성 10주기 추모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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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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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저녁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열린 "성구매자에 의한 피살여성 10주기 추모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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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성매매, #경남여성회, #추모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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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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