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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숭모회 홈페이지 갈무리
 안중근 의사 숭모회 홈페이지 갈무리
ⓒ 안중근의사 숭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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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의거 제112주년 기념식이 26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사)안중근의사숭모회 주관으로 거행된다. 이날 기념식에는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김황식 숭모회 이사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원 등이 참석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1909년 하얼빈 의거를 통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기 위한 이날 행사에서는 안 의사 외증손자인 이명철씨가 참석해 '의거의 이유'를 낭독한다.

또, 올해 제18회째를 맞는 '안중근 장학금' 전달식에서는 개인 5명, 단체 3팀이 장학금을 지원받는다.

행사 주관인 숭모회에서는 코로나19로 기념식이 축소됨에 따라 안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행사를 누리집(홈페이지) 및 유튜브(YouTube)를 통한 생중계로 진행한다. 온라인 시청은 '안중근 의사 숭모회(http://www.patriot.or.kr)'를 통해 가능하다.

황기철 보훈처장은 기념사를 통해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안 의사님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중국 정부와 다양한 소통망으로 외교적 협의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힐 예정이라고 보훈처는 전했다.

다음은 보훈처가 정리한 안중근 의사의 주요 공적 내용이다.

안중근 의사(1879.9.2.∼1910.3.26.)는 황해도 신천 사람으로,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였으며, 부친상을 당하고 돌아와서는 사재(私財)를 털어 삼흥학교(三興學校)ㆍ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안 의사는 광무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경흥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그 후 안 의사는 다시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하였고, 1909년에는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 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하였다.

1909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의거 당일인 10월 26일 9시경, 안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러시아군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이날 의거를 통해 일제의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침체된 항일운동을 다시 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하였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하였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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