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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9일 발생한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 건물 붕괴' 참사이자 사회적 재난이었습니다. 앞서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지만 유족들은 지금도 ▲ 철저한 진상조사 ▲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통탄의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유족들과 법률대리인단은 5일 오후 광주경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중 유족이 쓴 탄원서 일부를 동의를 구해 싣습니다. 이 글은 고 임아무개씨의 막내딸이 쓴 것입니다. [편집자말]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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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광주경찰청장님!

저는 지난 6월 9일 발생한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 건물 붕괴사고'로 고인이 된 임OO씨의 막내딸입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렇게 떠들썩하고도 허망하게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말로는 '두 달', '이제 50일'이라고 할 수 있어도, 저는 그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견뎌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비통의 한숨을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내쉬었을 뿐인데 시간을 벌써 이렇게나 지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덜어질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가라앉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설움은 갈수록 더해지고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참사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진행된 일련의 처리 과정들은 저와 제 가족, 그리고 다른 유족들의 마음을 더 괴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참사 이튿날 장례의 시작부터 부검 관련 문제로 인해 제 가족을 포함한 모든 유족들에게는 그리도 허망하고 비참하게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 딸을 애도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경황없이 시작된 장례기간 동안 부검 확정, 부검 취소, 연기 등 얼마나 많은 번복이 있었는지 아직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몸과 마음이 지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유족들은 국민청원과 방송 인터뷰로 이러한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이후 감사하게도 몇몇 국회의원들께서 관련된 사항에 대해 입법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문제는 일단락이 되어갑니다. 사실 부검에 대한 건 만에 하나 다시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면 저희 유족이 겪은 일을 반면교사 삼아 다른 피해자들이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사 이후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문제였습니다.

우려와 체념, 기우라고 생각했는데...

장례 이후에도 유족이 겪어야 했던 크고 작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지만, 다시 한 번 현실의 가혹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7월 22일 예정된 심사일보다 하루 늦춰 진행된 현대산업개발 측 현장소장과 안전부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 현장소장은 구속되고 같은 혐의를 받는 안전부장에 대한 영장은 기각된 판결이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참담했습니다. 유족뿐만 아니라 학동 건물 붕괴사고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모든 시민, 국민들이 의심하고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가는 첫 판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모두가 '꼬리 자르기'를 걱정했습니다. "결국은 가장 힘없는 꼬리들만 잘라내고 사고 수습이 끝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던 우려 섞인 체념의 말들을 저는 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은 '말단 꼬리'부터 시작해 사고에 책임 있는 모두가, 그들이 '꼬리'든 '머리'든 법으로 심판받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아무리 한국의 대기업이라도 무고한 시민들을 다치고 죽게 만든 이런 명백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 관행의 면죄부를 받지는 못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관련 수사와 재판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큰 아쉬움과 비통함을 느꼈습니다.

참사 이후 50일 만에 발표된 중간수사 결과는 다시 한 번 통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수사 결과의 중심을 이루는 내용은 국과수의 사고 발생 건물 시뮬레이션 해설이었고, 향후 수사계획은 불법재하도급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중점을 두었던 붕괴원인 및 책임자 규명 수사가 일단락된 만큼"이란 수사결과 발표 자료의 그 한 문장은 뼈를 깎는 고통을 인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기다려온 유족 및 부상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결과였습니다.

사건에 연관되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많은데 입건된 사람은 9명에 불과하며, 그 중 영장이 청구된 사람은 6명뿐이고, 실제로 구속된 사람은 5명입니다. 또한 참사와 관련해 분명히 죄를 물어야 할 광주광역시청과 동구청의 공무원이 단 1명뿐이라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발표에 따르면 '부정한 청탁을 받고 감리를 선정한 동구청 직원 1명이 불구속 송치'되었을 뿐입니다.

저희는 그동안 수사관님들의 수사 의지와 역량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무고한 죽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가장 먼저 발로 뛰는, 우리가 믿어야 할 첫 번째 울타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울분을 풀어주기보다는 많은 아쉬움과 복잡한 심경을 갖게 했습니다. 그래도 광주경찰청과 사고 수사본부의 수사관님들은 우리 유족들이 믿고 의지할 분들입니다. 다시 한 번 힘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광주광역시와 동구, 무얼 하고 있나요
 
광주 동구 학동4구역 붕괴 현장.
 광주 동구 학동4구역 붕괴 현장.
ⓒ 광주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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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청과 동구청은 유족 및 부상자와 그 가족들의 조력자인 동시에 사실상 또 다른 가해자입니다. 유족들은 의도치 않게 그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우리의 조력자가 되어준다고 한들, 참사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참사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관련 부처와 공무원들의 업무 태만과 관행적인 '건설사 봐주기'입니다. 이미 많은 기사와 증언에서도 지적됐듯이, 사고 이전부터 정류장 앞 철거공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민원이 여러 차례 제기됐음에도 시정되지 않았고 이리도 참담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광주광역시청과 동구청은 참사 발생 후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합동분향소 철거식을 포함해 3~4차례 대면하긴 했지만 광주광역시장과 동구청장은 아직까지 지자체장으로서 사고의 책임을 인정하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발생 이후 그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이 유족을 방치했고 도의상 기본적인 편의를 제공하다 이제는 현대산업개발의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면서 참사의 흔적을 지우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하도록 방치한 현대산업개발의 책임자들과 광주광역시청, 동구청의 관련 공무원들 모두 합당한 처벌과 징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대로 관련자 수사와 처벌이 끝나버린다면 희생된 고인들과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갈 부상자들의 억울함을 풀 길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무고한 희생을 야기하고 국격을 떨어뜨리는 어이없는 참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 7월 19일 유족과 부상자 가족이 처음으로 대면한 자리에서 이번 참사로 큰 부상을 당하신 한 어머니의 고통으로 절규하는 신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가 잊히지 않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평생을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로, 풍족하지 않은 형편임에도 이웃과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사셨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좋은 이웃이고 친구이자 형제였는지, 어머니가 쌓아온 인덕이 얼마나 컸는지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다시 한 번 그 큰 그릇을 마주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매일 가계부를 작성하고 일기를 쓰셨습니다. 2021년 6월 8일자로 끊겨버린 어머니의 일기장은 이제 다시는 이어질 수 없게 됐습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셨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머니를 단순히 참사의 제물로만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참사는 비단 목숨을 잃은 희생자 본인만의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희생자들의 모든 가족과 친척, 이웃, 지인들,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일터에 수많은 생채기를 내고 슬픔을 떠안긴 참사입니다. 여기서 수사와 처벌이 끝나버린다면 유족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배신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유족들은 공유할 수 없는 고통스런 기억과 함께 무력하게 삶을 소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입니다.

피해자 모두가 참사의 고통을 이겨내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국민을 기초로 하는 국가와 법이 존재함을 저희들에게 다시금 보여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태그:#광주, #학동, #재개발, #붕괴,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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