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풍년정미소 김영일씨
 풍년정미소 김영일씨
ⓒ 주간함양

관련사진보기


"나락(벼) 가마니가 처음엔 지게에 얹혀 오다가 어느 날엔 리어카를 타고 왔지. 그다음엔 소달구지, 그리고 경운기를 타고 오더니 이젠 1톤 트럭에 실려 왔어. 그러다가 요즘은 승용차가 나락 가마니를 모셔오지."

승용자에 쌀을 실으려는 아들은 먼지 나는 왕겨는 버리자고 하고, 어머니는 돈 주고도 못사는 왕겨를 챙겨가면 쓸 데가 많다며 아들과 실랑이를 한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풍년정미소의 어느 날 풍경이다.

안의면에만 정미소가 36개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풍년정미소 한 곳뿐. 함양군을 통틀어 매일 문을 여는 정미소는 이곳뿐이다. 외조부가 하던 정미소를 아버지가 물려받고 군대를 제대한 김영일(70)씨가 맡아 운영하면서 3대째 이어오는 가업이다.   

"세상이 빨리 변해도 옛것은 소중하니까"
 
풍년정미소
 풍년정미소
ⓒ 주간함양

관련사진보기

  
풍년정미소 김영일씨
 풍년정미소 김영일씨
ⓒ 주간함양

관련사진보기


풍년정미소 이야기를 하자면 '라테는 말이야'가 빠질 수 없다. 안의면 인구가 2만 명(현재 함양군 총인구 약 3만9천 명)이 넘던 그때는 장날이면 사람에 떠밀려 다니던 시절이다. 방아 찧을 사람들은 정미소 앞에 줄을 섰다. 먼저 왔다며 서로 싸우기도 했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먹을 게 없어 보리등겨를 가져가서 죽도 써 먹고 보리개떡도 해 먹었다.

"보릿고개 때는 아버지가 많이 나누고 베풀었지." 일하는 사람을 3명이나 썼다. 그때는 솜도 타 주고 떡도 했다. 설에는 가래떡을 뽑고 단오에는 쑥떡을, 김장철에는 고추방아를 찧으러 손님이 왔다. 쌀은 물론이고 보리방아, 밀방아를 찧으러 왔다. 110볼트가 공급되던 시절, 전력도 약했다. 모터도 작은 기계로 보리방아를 찧으려면 24시간 밤새 기계를 돌려야 했다.

"쌀은 왕겨만 살짝 까면 되는데 보리는 금강석이 돌아가면서 깎는 거라 시간이 걸렸지. 힘을 많이 주면 기계가 고장 나니까 약하게 천천히 돌리다보니 쌀보다 5배는 시간이 더 걸렸어."  

이름처럼 풍년을 이루던 정미소는 미곡처리장이 생기고 220볼트 전기가 집집마다 들어오고 가정용 도정기가 공급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풍년정미소의 화려했던 과거가 지금도 생생한 김영일씨는 사람들 발길이 뜸해진 현재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풍년정미소의 미래도 알고 있다.

"그래도 이걸 하는 이유?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해도 옛것은 소중하니까. 지킬 수 있다면 지키고 보존도 해야지. 돈 때문이라면 벌써 문 닫아야지."  

김영일씨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풍년정미소에 시설투자를 했다. 그 시절엔 최고의 시설이었다.

"1988년에 시설을 새로 했지. 쇠로 만든 기계는 보기에 좋지만 나는 목조로 했어. 나무는 습을 빨아들이거든. 지금까지 잘 쓰고 있지. 나락을 넣으면 먼지를 털어주고 돌을 걸러내고 왕겨는 뒤로 날아가고 쌀은 앞으로 나와 포대에 들어가지. 공정이 미끄럼 타듯 기계가 돌아가는 거야."  

'라테' 시절은 끝났지만... 기계는 돌아간다
 
풍년정미소
 풍년정미소
ⓒ 주간함양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김영일씨는 아내와 함께 기계 안에 들어가는 컨베이어벨트를 수리했다. "수리기사를 부를 수도 없어. 이 기계를 설치해 준 사람들은 모두 저세상 사람이 됐지. 아버지 때부터 거래하던 부품회사도 주인은 죽고 동생이 받아 하더라고." 이곳의 모든 기계를 고치고 설치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  

"지금 우리 나이엔 건강이 최고야, 걸을 수 있다는 게 행복이지"라고 외치며 하루 만 보 이상 걷기로 건강관리를 하는 김영일씨. 그의 건강은 곧 고객과의 신뢰다. 함양읍에서도 쌀을 팔러 온다. 그의 전화기에는 왕겨를 구입해 가는 거래처 번호가 수십 개 저장돼 있다.

"조금 있으면 쓰레기고 많으면 돈이야. 쌀을 찧으면 왕겨, 싸라기, 등겨 이런 부산물이 나오는데 요즘 사람들은 쌀만 가져가. 그래도 필요해서 찾는 사람이 꼭 있다니까."  
   
풍년정미소 김영일씨
 풍년정미소 김영일씨
ⓒ 주간함양

관련사진보기


노동의 대가만큼 돈이 되는 곳은 아니지만 그가 풍년정미소 문을 활짝 열어 놓는 이유는 또 있다. "좋은 품종으로 자리 좋은 논에 퇴비로 농사 지어 잘 말린 갓 찧은 쌀을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부모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쌀을 가공하면 금방 산패한다. 어떻게 가공했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진다. 김영일씨가 1모작 논의 벼만 고집해서 백미, 현미, 7분도 쌀을 도정하는 것도 그 이유다.

라테의 시절은 끝났지만 풍년정미소 기계는 아직도 힘차게 돌아간다.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다면 사시사철(055-962-4747) 문이 열린 풍년정미소로 가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에도 실립니다.


태그:#풍년정미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언론 젊은신문 함양의 대표지역신문 주간함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