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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민애집으로 새로 단장한 송학동 옛 시장관사. 위 사진은 제물포 한옥갤러리로 변신한 본관동이고, 아래 사진은 역사전망대로 활용하게 되는 관리동이다.
 인천시민애집으로 새로 단장한 송학동 옛 시장관사. 위 사진은 제물포 한옥갤러리로 변신한 본관동이고, 아래 사진은 역사전망대로 활용하게 되는 관리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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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민애집으로 새로 단장한 송학동 옛 시장관사. 위 사진은 제물포 한옥갤러리로 변신한 본관동이고, 아래 사진은 역사전망대로 활용하게 되는 관리동이다.
 인천시민애집으로 새로 단장한 송학동 옛 시장관사. 위 사진은 제물포 한옥갤러리로 변신한 본관동이고, 아래 사진은 역사전망대로 활용하게 되는 관리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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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학동 옛 시장관사가 7월 1일부터 '인천시민애(愛)집'으로 그 명칭이 바뀐다. 시민들이 온라인 투표를 통해 선정한 새로운 이름이다. 이제 이곳은 인천시정과 행정이 이뤄졌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인천시민애집으로 바뀐 송학동 옛 시장관사는 어떤 스토리를 품고 있는 공간일까.

이곳은 개항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어 흥미롭다. 특히 개항지라는 특성 때문에 그 당시를 살았던 일본·중국·한국사람들의 이야기가 콕콕 박혀 있다.

송학동 옛 시장관사는 개항 이후 각국 조계지 중 독일인 거류지에 속했으며 일본인 사업가의 별장이었다. 잘 알려진대로 이 집은 코노 다케노스케(河野竹之助)의 별장이었다. 수입상과 포목장사로 큰돈을 번 그는 매우 공들여 별장을 지었다. 당시 집의 양식은 일본식과 서양식이 공존했고 외부는 전형적인 일본 정원의 느낌을 살린 저택이었다.
 
1930년대 '코노 다케노스케' 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
 1930년대 "코노 다케노스케" 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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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잘 나가는 사업가였던 코노는 인천월미도유원주식회사(仁川月尾島遊園株式會社)의 사장도 지냈다. 인천월미도유원주식회사는 그 당시 유명했던 월미도 조탕을 운영한 회사다.

광복후에는 적산가옥으로 분류돼 서구식 레스토랑인 '동양장'으로 영업했고, 한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출입했던 고급사교장 '송학장'으로도 쓰였다. 송학장 이후엔 인천 국악을 이끌었던 유명 국악인인 이두칠이 이 집을 인수해 인천국악의 명맥을 이었다.

1955년 송학장에서는 북한에서 소련제 비행기를 몰고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귀순용사들을 위한 오찬도 열렸다. 이때 인천 화교대표였던 여계직이 이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했다.
 
인천시민애집은 본관동, 관리동, 야외정원 각 공간이 가진 특징을 적극 활용한 전시와 콘텐츠 개발을 통해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항장의 상징적 복합역사 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 사진은 제물포정원으로 명명된 히스토리월(위)과 인천시민애집 야외정원(아래).
 인천시민애집은 본관동, 관리동, 야외정원 각 공간이 가진 특징을 적극 활용한 전시와 콘텐츠 개발을 통해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항장의 상징적 복합역사 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 사진은 제물포정원으로 명명된 히스토리월(위)과 인천시민애집 야외정원(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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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민애집은 본관동, 관리동, 야외정원 각 공간이 가진 특징을 적극 활용한 전시와 콘텐츠 개발을 통해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항장의 상징적 복합역사 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 사진은 제물포정원으로 명명된 히스토리월(위)과 인천시민애집 야외정원(아래).
 인천시민애집은 본관동, 관리동, 야외정원 각 공간이 가진 특징을 적극 활용한 전시와 콘텐츠 개발을 통해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항장의 상징적 복합역사 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 사진은 제물포정원으로 명명된 히스토리월(위)과 인천시민애집 야외정원(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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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장은 정원도 잘 꾸며져 있고,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으며 풍광이 좋아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했다. 인천 차이나타운과 가깝고, 주변이 인천의 근현대 역사를 품고 있어 영화촬영지로는 제격이었다.

적산가옥, 레스토랑, 송학장으로 쓰였던 이 건물은 1966년 인천시가 매입해 신축했다. 이때부터 이곳은 관(官)의 공간이 된다. 신축계획은 12대 윤갑로(尹甲老) 시장때 세웠지만 본격적인 공관시대는 14대 김해두(金海斗) 시장부터 시작됐다. 1966년부터 2001년까지 인천시장 관사로 활용했고, 14대 김해두 시장부터 2001년 최기선 시장까지 17명의 시장이 이곳을 관사로 사용했다.

시민 위한 복합 역사문화공간

2001년에는 시장관사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2001년 10월 인천시민의 날을 맞아 시장관사는 인천역사자료관(시사편찬위원회)으로 바뀐다. 인천역사자료관으로는 2020년 12월까지 운영됐다.

7월 1일부터 시민의 공간으로 바뀐 인천시민애집은 본관동, 관리동, 야외정원 등 각 공간이 가진 특징을 살려 전시와 다양한 콘텐츠의 복합 역사문화공간으로 운영한다.

먼저 본관동은 '제물포 한옥 갤러리'로 이름을 붙이고 역사북쉼터, 역사회랑, 디지털 갤러리, 전시실로 조성했다. 시장 집무실로 사용되던 공간은 시민들이 인천의 역사와 문화, 예술 관련 도서를 편히 누릴 수 있는 '역사북쉼터'로 꾸몄다. 좁은 복도는 개항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인천역사 타임라인이 구현된 '역사회랑' 전시장으로 디자인했다.

다이닝 룸으로 사용되던 공간은 '디지털 갤러리'로 꾸며져 디지털 패널(스마트 사이니지)을 활용한 디지털 전시가 구현된다. 안채로 사용하던 방들은 아날로그 전시실로 조성돼 시장관사에 얽힌 인물들의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통한 '휴먼라이브러리' 전시로 조성했다.

경비동은 '역사전망대'로 공간이 변화했다. 이곳에서는 조망 데크, 역사 굿즈 전시, 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조망데크는 서해와 개항장 일원을 조망할 수 있는 지리적인 장점을 살렸다.

100년이 넘게 잘 보존돼 온 야외정원은 '제물포 정원'으로 새롭게 이름을 지었고 독특한 조경과 식재된 나무에 대한 스토리텔링, 나무열전 산책로로 다채롭게 조성했다.

인천시민애집은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가 충분한 만큼 인천시 등록문화재로도 등록해 보존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이용남 i-View 편집위원입니다.


태그:#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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