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타임(TIME)지 화상 인터뷰 및 표지 촬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인터넷판 기사 화면갈무리.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타임(TIME)지 화상 인터뷰 및 표지 촬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인터넷판 기사 화면갈무리.
ⓒ TIME지

관련사진보기

 
한때는 대학생들이 미국시사주간지인 타임지(TIME), 뉴스위크(Newsweek)를 읽는 것이 유행이었다. 돌이켜 보면 일종의 과시욕이었던 것 같다.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옆에 끼고 다니면 다들 한 번씩 쳐다보았으니까. 가끔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하는 기사들은 펜으로 까맣게 지워져 있기도 했다.

지금 <타임>지(아래 '타임')의 길고 지루한 기사들을 제대로 다 읽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독보적 권위를 가졌거나 기사들이 매번 특색을 지닌 것도 아니고,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같은 권위 있는 매체 기사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는데 굳이 타임지만을 찾아 읽을 이유는 없다. 적어도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뷰를 통해 표지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몇몇 보수 언론은 비판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이번 타임 기사를 두고 몇몇 보수 언론이 연일 비판 기사를 실었다. 타임 기사를 비판한 것이 아니고 타임에 대통령이 났다고 '자랑질하는' 청와대를 비판하는 기사들이다.

기사들은 주로 정치인들의 말을 인용한다. 먼저 관련해 인용되는 건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인데, 그는 페이스북에 '타임은 문 대통령에게 망상에 빠져 있다고 하는데 청와대는 그걸 자랑이라고 하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창피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적었다. 다음으로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대 교수가 역시 페이스북에 타임 해당 기사의 상당 부분을 번역해 올리고, 독자들에게 이게 칭찬인지 비판인지를 직접 판단해 보라고 했다. 자기가 보기에는 '고강도의 비판' 기사이며, 정부 당국자라면 '고개 들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내용을 들여다보자. 우선, 타임의 기사는 분량이 상당히 길고 내용도 많다(기사 링크). 장부승 교수가 번역한 부분은 전체의 1/5 정도다. 내용은 대체로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남북대화와 화해의 노력을 서술하고 몇몇 전문가의 의견을 덧붙여 이를 평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타임 기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고강도로 비판'한 근거로 위의 두 사람이 인용한 곳은 두 부분이다. 하나는 문 대통령의 김정은 평가에 덧붙인 기자의 의견이다. 곧 문 대통령이 '정직하고 열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지닌 인물'로 높게 평가한 김정은이 사실은 자기 삼촌과 이복동생을 잔인하게 죽인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그의 한결같은 김정은 옹호를 '망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는 구절이다(For many North Korea watchers, Moon's steadfast defense of Kim is verging on delusional).

첫 번째 부분은,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의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두 번째는 기자의 의견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북한 전문가들이 다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의견 가운데 하나라는 뉘앙스다.

말이나 글을 곡해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 글 전체의 맥락을 무시한 채 언급된 한 두 마디 말로 트집을 잡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이번 타임 기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한 부분 못지않게 '칭찬한' 부분도 얼마든지 있다.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세계가 (한반도 핵전쟁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구절 같은 것 말이다(Moon helped guide the world back from the abyss. Reconciliation kicked off with Kim agreeing to Moon's invitation to send a delegation to the 2018 Winter Olympics in Pyeongchang).

전체 맥락을 보면 다르다

요점은 전체 맥락을 보라는 것이다. 장부승 교수의 제안대로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앞서 나왔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 '고개 들기가 어려울 정도'의 내용이라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굳이 평가하자면 타임의 이번 기사는 '객관적', 또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언론 본연의 자세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장 교수의 말마따나 미국의 우방 대통령을 표지로 올려놓고 그를 무자비하게 '까는' 기사를 실었다면, '중후한 품격을 가진' 타임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기사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면, 아무리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라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칭찬뿐 아니라 비판받아 마땅한 부분도 틀림없이 있기 때문이다. 타임의 이번 기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김정은이나 북한 체제를 보는 시각이 순진한 면은 있지만 동시에 남북 화해를 위한 그의 열정, 그 노력의 역사적 의미도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사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문재인 대통령마저 남북관계를 고치지 못한다면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깨달음, 아마 이것이 그의 진정한 유산이 될 것이다. (That might, after all, be Moon's true legacy—the grim realization that if he couldn't fix things, perhaps nobody can.)
 
일부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언론의 소명이 권력 감시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떳떳하게, 객관적 사실들을 가지고 말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외국 언론을 곡해해서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또 비겁하게 보일 뿐이다. 타임 기사를 가지고 억지로 문재인을 '까려고만' 하지 말고, 명색이 언론인데 차리리 이번 기사가 보여 준, 객관적이려는 태도를 본받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유종선씨는 울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태그:#문재인, #타임, #TIME, #김정은
댓글3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전)울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서울대학교 졸업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대학원 졸업(정치학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