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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가 경기 안산점, 대구점 등의 매각을 추진하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 일반노조, 마트노조 홈플러스 지부 등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홈플러스가 경기 안산점, 대구점 등의 매각을 추진하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 일반노조, 마트노조 홈플러스 지부 등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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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남편 죽었는데"… 홈플러스, 아내에 '정규직' 제안 논란(http://omn.kr/1tkiw) 기사가 나간 뒤,  "홈플러스 (배달) 기사다. 제보할 것이 있다. 연락 부탁드린다"라는 내용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핸드폰을 들어 그에게 바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지금은 배송 중이라 너무 바쁘다. 오후 7시가 지나서 숨 좀 고르고 통화하자"라는 답이었다. 그날 늦은 저녁 "경기도 남부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온라인 배송기사"라고 소개한 A씨와 접촉했다. 

그는 대뜸 "기사를 보고 너무 놀랐다"면서 "최근에 기사들끼리 '이렇게 가면 누구 하나 죽는다'고 했는데 결국 현실이 됐다. 그게 안타까워 연락하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돌아가신 최아무개 기사가 일한 홈플러스 본점(강서점)과 여기도 똑같다. 홈플러스에서 배송기사들의 운행을 탄력적으로 운용한다는 지침을 내리고 나서부터 배송권역과 노동강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나도 다음 주부터는 8일 혹은 9일에 한 번 쉰다.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연락했다." 

A씨가 언급한 최씨는 홈플러스 본사인 홈플러스 강서점에서 2019년 3월부터 배송업무를 하다 지난 5월 25일 사망한 하청 소속의 배송노동자다. 특별한 지병이 없었던 그는 지난 5월 11일 출근 준비 중 쓰러졌다.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출혈로 인한 뇌사판정을 받고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그는 지난 5월 25일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최씨에 대한 법적인 책임이 없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최씨의 아내에게 배·보상에 대한 언급 없이 홈플러스 정규직 자리를 제안했다. 사망한 최씨는 홈플러스 하청업체인 이편한세상과 계약 후 홈플러스 온라인에서 배송업무를 담당해 왔다.

"죽을 것 같은 업무 강도… 탄력배차 후 더 힘들어졌다" 
   
1일 홈플러스 본점인 강서점에서 배송노동자 최아무개씨 사망사고 관련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1일 홈플러스 본점인 강서점에서 배송노동자 최아무개씨 사망사고 관련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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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홈플러스 배송기사의 업무 강도는 어마어마하다"면서 "막노동보다 훨씬 힘들다. 빡세다는 말로 부족하다. 정말로 죽을 듯이 힘들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홈플러스는 사흘이 멀다 하고 행사를 한다. 이게 배송기사들을 미치게 한다. 저희가 배송하는 구역에는 빌라가 많은데 얼마 전에도 20kg짜리 쌀 한 포대에, 2L짜리 물 6개 들어 있는 박스 4개, 샴푸와 린스, 락스까지... 이걸 등짐 지고 올라가서 배달했다. 이렇게 배달하고 나면 정말로 진이 다 빠진다."

특히  A씨 등 기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홈플러스가 하청업체를 통해 하달하는 노동력을 쥐어짜는 명령들이다. A씨에 따르면, 홈플러스 배송기사들은 하루 3회 정해진 시간에 차량을 입고해, 물건을 받은 뒤 현장에 나가야 한다. 과정에서 물건에 대한 분류와 상차 등은 대부분 배송기사의 몫이다. 고객의 항의가 들어오면 그에 대응 역시 배송기사들이 책임져야 한다. 

"하루에 3회 집하 장소에 가서 물건을 받는 것이 규정이다. 1회차가 보통 오후 10시쯤이다. 13~15건 정도를 갖고 나가면 빨라야 오후 12시 30분에 배송을 마친다. 다음 회차 배송이 오후 2시께다. 그 사이 다시 집하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점심도 그때 해결해야 한다. 아무거나 급히 때우고 오후 배송 나가면 다시 빈 바구니를 싣고 3회차 배송을 위해 들어와야 한다. 그게 오후 6시께다. 시간에 맞춰야 하니 항상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도 홈플러스 강서점처럼 올 초부터 탄력적인 운용을 선택한 뒤 바뀌었다. A씨가 일하는 사업장도 상대적으로 덜 바쁜 요일에 기존 운영 차량 대비 배차 대수를 유동적으로 변경했다. 이로 인해 한 명이 감당해야할 배송권역이 자연스레 확장됐다. A씨의 말이다.

"배차 대수를 줄이면서 안 쉬어도 되는 날에 갑자기 쉬게 되는 일도 생겼다. 금전적으로도 당연히 어려워졌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내가 일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내 영역을 커버해야 한다. 다음날엔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 홈플러스가 왜 이 시스템을 도입했을까? 돈 때문이다."

앞서 홈플러스는 <오마이뉴스>에 "주문량이 많은 요일은 모든 차량을 운영하고, 주문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요일은 배송이 필요한 수준의 차량만 운행한다"면서 "탄력적 차량 배치를 통해, 줄어든 배송량과 기사분들 휴식권 사이의 조화를 꾀하는 운영을 하고 있다. 이는 기사분들의 동의를 얻은 점포(사이트)만 선별해 시행했다"라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A씨는 홈플러스의 이러한 설명에 대해서도 "현장 기사들한테 무슨 동의를 얻었냐"면서 "일방적으로 하달된 거다. 하청인 물류사는 기사들에게 홈플러스에서 메일이 왔으니 '따라야 한다', '별수 없다'는 말만 했다"라고 강조했다.

"많이 타는 사람은 한 번 나가면 120km를 돌아야 한다. 마지막 배송지가 홈플러스에서부터 25km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구역이 넓어져서다. 솔직히 저희 기사들 한 달에 300만 원 조금 더 받고 거기서 기름값과 차량 유지비도 빼고 나면 일당으로 따지면 하루에 12만 원 겨우 되는 정도를 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니 다들 참고 일하는 거다."

아픈 날 쉴 수 없는 이유? 용차비 30만 원
   
1일 홈플러스 본점인 강서점에서 배송노동자 최아무개씨 사망사고 관련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1일 홈플러스 본점인 강서점에서 배송노동자 최아무개씨 사망사고 관련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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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통화에서 A씨는 홈플러스 배송기사들이 '아파도 쉴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작년에 교통사고가 나서 일주일 정도 입원한 적 있다. 내가 알아서 사람을 구하고 하루에 20만 원씩 용차비를 줬다. 최근에 동료는 집안일 때문에 하루 급히 빠져야 했는데 용차비만 30만 원이 들었다. 하루 벌이가 10만 원 약간 넘는데 용차비 내고 나면 계속 손해다. 그러니 누가 쉴 수 있나. 요즘엔 마트 쪽에 워낙 클레임이 많아서 용차 구하기도 정말로 어렵다."

실제로 강서지점에서 일했던 최씨도 쓰러진 당일 몸이 안 좋아 용차를 부르려 했지만, 당일 구하기가 제한된다는 이유로 출근 준비를 강행하다 쓰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A씨는 이날 통화를 마치며 "택배는 그래도 요즘 많은 국민들이 관심이 높아져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마트 배송기사들은 너무 열악하다. 사람 수도 많지 않아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잘릴까 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다.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서 조금이라도 기사들 편의를 좀 봐줬으면 좋겠다. 기사들 의견이라도 좀 들어봤으면 좋겠다"라고 하소연했다.

마트노조가 2020년 6월 전국 홈플러스 온라인 배송기사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하루 운송 무게는 평균 985㎏, 1회 배송 시 가장 무거웠던 물품은 65.8㎏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배송 중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오른 경우도 42.8%에 달했다. 하지만 마트 배송기사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규정은 현재까지 따로 없는 상태다. 

앞서 마트노조는 1일 홈플러스 본사 앞 기자회견에서 ▲ 과로사 보상대책 마련 ▲ 온라인배송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홈플러스에 촉구했다.

태그:#홈플러스, #용차, #산재, #온라인,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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