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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5월 27일자 경제면에 실린 김강한 기자의 “인명사고 나면 거의 공장 전체가 스톱... 수백억씩 손실” 기사
 조선일보 5월 27일자 경제면에 실린 김강한 기자의 “인명사고 나면 거의 공장 전체가 스톱... 수백억씩 손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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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조선일보>는 "인명사고 나면 거의 공장 전체가 스톱... 수백억씩 손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최근 노동자가 일을 하다 사망한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삼성중공업에 내려진 작업중지명령으로 인해 기업의 손해가 막대하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일보>가 5월 21일 "평택항 일터에서 숨진 20대 대학생을 추모하며"라는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이 산업재해왕국임이 부끄럽다고 이야기한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한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했던 <조선일보>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노동자의 죽음과 기업의 이익을 비교한 것은 산재 사망이 마땅히 추모해야 하는 윤리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산재 사망은 그동안 노동자가 죽어도 타격을 받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는 기업과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는 사람들 간의 정치적인 격전지이다.

그 신문이 감춘 것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망의 요인을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동부는 해당 기계 혹은 작업, 더 나아가 공장 전체의 작업을 멈춘다. 이 과정에서 공장을 돌리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손실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 5월 27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기사의 내용이다.

기사 속에서 <조선일보>가 감춘 것은 사례로 나오는 현대중공업에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빠짐없이 산재 사망이 일어나 총 1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2021년에도 벌써 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현대제철과 삼성중공업 역시 노동건강연대 등이 매해 산재 사망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기업을 선정하는 살인기업 선정식의 단골 수상 기업들이다.
 
산재사망대책마련공동캠페인단,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서 4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2021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하고 있다.
 산재사망대책마련공동캠페인단,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서 4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2021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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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 등을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해당 작업이나 동일한 작업에 산업재해가 다시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 노동부는 해당 기업에 작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조선일보>가 거론한 3개 기업은 모두 산업재해와 산재 사망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기업으로 사망에 따른 개선이 필요한 기업이다.

작업중지에 대한 명령이 부당하다면 해당 기업은 노동자가 사망하지 않도록 하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매번 산재 사망을 반복하면서도 손해를 들먹이며 또 다른 산재 사망이 일어나는 것을 '방조'해온 기업들의 이야기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공장이 멈춰 발생하는 손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이전에, 공장이 왜 멈출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우선이다.

중대재해가 일어나고 해당 기업은 작업중지를 통해 일부 개선을 한다. 그리고 작업중지는 해제되고 노동자는 다시 현장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개선 이후에도 현대중공업처럼 또다시 사고가 발생한다. 그렇게 현대중공업에서는 1974년 창사 이래로 469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다.

공장은 자주 멈춰야 한다, 정확히는 사고가 나기 전에

<조선일보>의 이야기와 반대로 오히려 기업은 자주 멈춰야 한다. 정확하게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멈춰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기업과 사업주는 중대재해가 발생하기 이전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을 확인하고, 위험이 있다면 작업을 중지시킨 후 노동자를 대피하고 이후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고가 나기 전에 작업을 멈추고 위험을 제거했다면 노동자가 사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손실이 아니라 '예방의 효과'를 맛봤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업은 '예방의 효과'를 누리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90% 이상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된다. 하지만 노동자가 사망해도 400만 원 벌금에 그치고,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낮은 처벌 속에 중대재해를 막아야 하는 기업과 사업주의 책임을 방기되고 있다.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한 채 매해 반복적으로 노동자가 사망함에도 최소한의 개선을 위해서 진행되는 작업중지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는 것은 노동자 사망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기업의 무책임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더불어 작업중지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매번 특정 기업에서 산재사망이 반복됨에도, 노동부가 작업중지명령을 내리고 개선을 요청함에도 노동자가 사망하는 것은, 사고 발생 이전에 노동자가 감지한 위험에 대해 작업을 중지하고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노동자는 위험한 업무를 거부하고 개선을 요청할 경우 관리감독자는 조치를 취하고, 개선을 건의한 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고 이전 수십번의 개선요청이 있었음에도 개선이 되지 않은 기계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일수록 회사에 개선과 작업의 중지를 요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일하며 발생할 위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그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다. 기업이 작업을 멈추고 위험요인을 개선하기보다는 더 빠르게 일하길 원하고, 낮은 처벌로 인해 제대로 된 안전보건체계를 갖추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사고가 일어나기 이전에, 더 자주 더 빨리 기계를 공장을 그리고 기업을 멈출 수 있어야 끊이지 않은 산재 사망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장을 넘어 기업을 멈춰라

<조선일보>의 낯 뜨거운 기사를 읽은 후 우리는 작업중지에 따른 손해가 아니라 작업중지 이후 어떤 개선이 있어야 노동자는 더욱 안전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사고 확산을 막고 시설 개선을 확인하기 위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린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작업중지와 함께 진행되는 개선은 매우 제한적이다.

2021년 1월 통과된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기업과 사업주는 재해발행 시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이행뿐만 아니라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등을 취해야 한다. 산재 사망이 발생한 이후의 재발 방지 대책도 중요하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하기 이전에 기업의 인력 및 예산과 같은 안전보건관리체계와 노동자의 '정상적 일탈'을 강요하는 공사기간단축, 2인 1조 근무가 아닌 단독 근무와 같은 무리한 기업문화를 점검하고 바꿔야만 산재 사망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삼성중공업과 같이 매번 반복적으로 산재사망이 이뤄지고,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지고, 일부 시설에 개선이 이뤄지지만 산재사망이 줄지 않는 것은, 바로 개선에 대한 요청이 산업재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문화와 경영체계에 대해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업중지명령을 통해 바꿔야 하는 것은 몇몇 설비에 그쳐서는 안 된다.

2018년 여름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더위에 지쳐 일하던 노동자가 감전사한 이후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명령을 통해 CJ대한통운이 개선한 것은 사고가 난 설비뿐이었다. 이후 CJ대한통운에서는 다른 장소에서 또다시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 이후의 개선 사항도 마찬가지로 일부 시설 개선에 한정되었다. 사고가 난 시설 혹은 작업, 그리고 유사한 작업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대기업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노동자의 사망을 막을 수 없다.

노동자의 사망은 최종적으로는 한순간에 발생하는 추락, 깔림, 끼임과 유형과 특정 기계 및 설비와 연관되지만, 노동자의 사망은 기업의 경영문화, 설비의 안전, 노동자의 권한 그리고 이를 규제하고 점검하는 정부의 역할과 같은 여러 요인의 복합적인 결과로서 발생한다.

문재인 정부 이후 노동자의 추락과 끼임을 중점적으로 막겠다며 기업을 점검하고,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어 장비를 개선했지만 산재 사망이 거의 줄지 않은 것은 기업 내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기업의 시스템을 개선하기보다는 낮은 처벌을 받고 끝내거나 법적 처벌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작업중지 명령 이후 기업의 개선을 확인할 때 멈춰진 기계, 공장을 넘어 기업을 멈춰,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예산이 적절하게 배정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횡행하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없애고 노동자가 위험을 개선할 수 있는 권한을 적절히 부여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당장 변화를 확인할 수 없다면 기업의 개선 약속과 그 이행과정을 적절하게 확인한 이후에 기업을 다시 경영할 수 있을 때 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가르쳐 준 것

산재 사망의 문제는 추모가 끝난 이후 기업과 정부 그리고 노동자 간에 벌어지는 '정치적인' 문제로 부각될 때 비로소 각자의 입장이 명확해진다. <조선일보>가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바로 이것이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통해 산재 사망과 예방의 책임이 '기업'에 있으며, 기업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공장을 멈추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돈과 비교한 것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기업이 진정 무서워하는 것을 바탕으로 산재 사망을 끊어낼 수 있는 핵심을 파악하고, 그 핵심을 정치적인 문제로 끌어올릴 때만이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태그:#노동건강연대, #산재사망, #기업살인, #중대재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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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하청, 일용직, 여성, 청소년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건강하고 평등한 노동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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