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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미성년자를 포함한 일반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착취 영상이 해외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유, 판매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인 'n번방 사건'이다.

이 사건이 국민의 공분을 사자, 국회는 n번방 사건과 같은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형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20년 4월 23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 부터), 백혜련 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 단장,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텔레그램 n번방' 재발 방지 등을 위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당정협의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
 2020년 4월 23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 부터), 백혜련 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 단장,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텔레그램 n번방" 재발 방지 등을 위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당정협의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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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국회가 입법부의 역할을 잘 수행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n번방은 2018년 말에 만들어졌는데, 국회에서는 국민청원을 통한 국민의 분노 표출이 있은 뒤 2020년 3월에 부랴부랴 관련 논의가 진행됐다. 특히 당시 여야 의원들은 n번방 사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일부 의원들은 '놀이문화'로 언급하며 개인의 자유를 법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8년 발의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은 촬영물이 유포되는 플랫폼에 형사 책임을 묻고 있는데, 이 법안에는 불법 촬영물 유통사이트 운영자가 그 전송을 방지하고, 촬영물 당사자로부터 삭제 요청을 받을 시에는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이미 담겨 있는 것이다. 또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10월 촬영물을 실제 유포하지 않더라도 유포 협박하거나 강요한 경우 성범죄로 처벌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의견들은 법안심사소위원회 등에서 묵살됐고, n번방 사건처럼 큰 사건이 일어난 후여야만 국회의원들이 실제 활동을 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일어났다.

n번방 사건의 형태처럼 사건 전의 입법 활동이 있었더라면 더욱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음주운전 관련 법인 '윤창호법'이라든지, 최근의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인 '정인이법' 등 만일 미리 법을 제정했다면 법 이름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뒷북 입법'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국회의원이 국민의 공감대와는 달리 늦게 입법 활동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법의 특성 때문이다. 법이 가지고 있는 이념은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으로 세 가지인데, 이중 법적 안정성이란 법이 국민의 일반생활을 규율하고 법이 안정적으로 기능하고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3월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모습.
 지난 3월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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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법이 자주 바뀌는 것을 막아 사회 구성원들의 혼란을 방지하자는 태도다. 이런 '법의 경직성' 때문에 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법률의 제·개정 절차의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법률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아주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회의원들의 논의가 느린 위의 경우와 달리, 두 번째 이유는 논의가 단절된다는 것이다. 앞서 본 n번방 사례처럼 정인이법의 경우도 국회에 계류된 아동학대 방지 관련 법안 처리에 손을 놓고 있다가 관련 사건이 발생하니 뒤늦게 제도를 개선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위원들의 불참으로 의결이 불발된 적이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집행 정지 사태로 인한 여야의 대립으로 민생법안이 뒷방 신세가 됐던 것이다.

또한, 이런 뒷북 입법 현상은 졸속 입법과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청소년 및 청년 세대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교통수단인 전동 킥보드는 관련 사고가 증가하는 추세에도 지난해 5월 통과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따라 13세 이상이면 면허 없이도 전동 킥보드를 탈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비판 여론을 의식한 국회가 부랴부랴 이를 강화하는 쪽으로 법을 다시 고쳤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시행된 새로운 개정안조차 허점이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동 킥보드란 새 이동 수단이 등장하면 새로운 규제나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기존 규정에 넣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다"라며 "단속 근거 조항에 대한 교육, 이용 방법에 문제가 많고 전용 보험도 없다. 개인형 이동 장치(Personal Mobility) 총괄 관리법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화두가 된 사회 문제에만 치중하며 급하게 법률을 발의하다 보니 소외되는 사회 문제도 생기고 만들어진 법조차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않아 오히려 국민의 생활에 혼란이 가중된다. 결국 국회 및 법체계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가지게 된다.

급변하는 사회에 맞게 법을 사전에 개정하여 더는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고, 법치주의 나라에서 법을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입법부가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싸움이 아닌, 각 개인이 헌법기관인 국민의 대표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민생을 들여다본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달라질 것이다.

태그:#국회, #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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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청렴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은 고3 학생입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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