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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민성철)는 '위안부'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2차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일본 정부가 주권 면제에 해당하기에 재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과 3개월 전 1월 8일에는 소송인만 다른 같은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피해자들에게 각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했다. 불과 3개월 사이 정반대 되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4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 참석한 뒤 법정을 나서며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실망하고 있는 모습.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4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 참석한 뒤 법정을 나서며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실망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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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그릇된 주장만 그대로 답습한 재판부 - 판결의 문제점

① '일본국의 위법적 주권도 주권적 행위니 대한민국 법원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2차 소송 재판부는 '무력 분쟁 시 발생한 행위는 가장 강력한 주권적 행위이므로 아무리 심각한 반인도적인 인권 침해라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주권 면제란 국가의 주권적 행위를 타국 재판정에서 판결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으로 국가의 주권침해를 방지하고자 함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9년 10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배상 판결에 대해서도 주권 면제를 이유로 들면서 주권 침해적인 위법한 판결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주권 면제는 국가의 주권 행위를 타국이 부당하게 제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지 국가의 위법한 행위가 주권 면제라는 방패로 면죄부 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국제법은 강행 규범에 대해 '국제공동체 전체에 대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 국가의 행위가 국제공동체 전체에 위협을 가한다면 이는 강행 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되며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전쟁·식민 범죄 또한 이에 해당한다.

주권 면제는 국제강행 규범의 하위 관습법 개념이므로 일본의 행위가 주권 면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도 이러한 법 해석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독일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듯이 국제적으로도 반인륜적이거나 공동체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주권 면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1차 소송 재판부도 주권 면제에 대한 이러한 해석으로 일본에 배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본의 소위 '주권 면제' 주장은 모순 그 자체다. 첫째로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일본군'위안부' 모집·관리 및 폭력이 모두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 진행됐다고 하며 정부의 무혐의를 주장했었다.

역대로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 그리고 2015 한일합의에서도 정도는 다르지만 일본 정부의 사과 혹은 유감 표명이 있었지만 이는 민간에 의해 일어난 사건에 대한 '애도' 정도이지 일본 정부가 계획, 실행한 사건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아니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의 주권적 행위에 대해 주권 면제를 적용하라는 일본의 주장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주장한 내용과 모순이다.

둘째로 국내외로 주권 면제를 부정해왔던 것은 일본 자신이었다. 일본은 2009년 4월 24일 '외국 등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아래 법률)을 제정·공포했다. 이 법률 10조에는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다치게 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주권 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가 반영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은 자국이 타국 법원에서 누리는 주권 면제 제한을 수용하는 조약까지 체결한 바 있다. 일본이 2007년 1월 11일 서명하고 2009년 6월 10일 국회에서 승인한 '국가 및 국가 재산의 재판권 면제에 관한 유엔조약' 제12조는 사망·상해 등으로 인한 피해의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는 재판 절차와 관련해서는 재판권이 면제되지 않는다고 주권 면제 예외를 규정했다. 이 조약은 30개국 중 2 국가가 모자라 체결되지는 못했으나 일본의 주권 면제 부정 의지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일본국민의 타국에 의한 피해는 주권 면제 적용을 받을 수 없지만 일본 정부는 주권 면제에 해당한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2차 소송 재판부는 이러한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며 주권 면제를 결정했다.

② '상대국(일본)과의 외교 관계에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2차 소송 재판부는 '박근혜 정권의 2015 한일합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국의 권리구제로 볼 수 있다면서 이번 재판이 피해자들로 하여금 최후의 구제 수단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2015 한일합의'에는 피해자들이 그동안 주장해온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배상이 빠져있다.

한일합의에 따르면 일본은 '배상금'이 아닌 '거출금' 명목으로 10억 엔을 출자하고 동 합의에 의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이 거출금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한다. 화해치유재단은 한국 재단이다. 배상금도 아닐뿐더러 지급 주체까지 일본의 흔적을 지웠다. 그렇기 이번 2차 소송인인 고 김복동 할머님을 포함한 피해자 상당수는 화해치유재단 해체를 주장했고 2015 한일합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90년대부터 일본에서 열린 재판에서 승소하지 못한 '위안부'피해자들이 선택한 한국 법정 투쟁을 2차 소송 재판부는 무슨 근거로 최후의 구제 수단이 아니라고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또 2차 소송 재판부는 '대한민국 법원이 오로지 국내법 질서에 반한다는 이유로 필연적으로 상대국과의 외교 관계에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며 한일관계를 걱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식민범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2018년 강제징용 판결에 대응해 한국을 수출입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으며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되기 위해 평화헌법 개정을 서두르는 등 한일 외교 관계에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다.

법리에 근거해 재판해야 하는 재판부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감수하고까지 이런 무리한 판결문을 내놓은 이유가 무엇이든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 다음 기사 <두 개의 '위안부'판결 4개월 간 대체 무슨 일이?>에서 계속됩니다. http://omn.kr/1t5fk )

덧붙이는 글 | 2021년 1월 8일과 4월 21일. 두 개의 정반대 '위안부' 판결이 나왔습니다. 판결의 문제점과 4개월 간 어떤 일들이 국내외에서 벌어졌는지 알아보고자 두 편의 논평을 작성 했으며 그 중 '상' 글입니다. 4개월 간의 일들을 정리한 '하'글도 구독바랍니다.


태그:#한일협력, #위안부판결, #문재인정권, #2차소송,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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