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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회 어린이날인 5일 오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이 가족 단위 나들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제99회 어린이날인 5일 오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이 가족 단위 나들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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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결혼했어? 누구랑 했어?"

아이의 물음에 강은지(27)씨가 멈칫했다. 잠깐 고민하던 강씨는 '우리 딸이랑 결혼했지' 웃으며 답했다. 5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강씨는 "아이는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의 물음이 반가웠다"라면서 "실제로 사유리씨처럼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엄마가 될 수도 있는 거잖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정의 형태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5일 어린이날을 맞아 몇몇 언론은 한부모 가정 아이들 이야기를 보도했다. 통상 매년 어린이날이면 한부모가정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다양한 행사·축제를 준비하는데,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다는 뉴스였다. 그러면서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혼자', '쓸쓸하게' 유튜브를 보며 지내야 한다는 안타까움을 전했다. 강씨는 "한부모가정을 무언가 결핍한 가정이라고 생각해야 나올 수 있는 기사"라고 지적했다.

사실 정부는 다양한 '가정'을 고려한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해(2020년) 결혼하지 않고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씨처럼 '보조생식술을 이용한 비혼 단독 출산'에 대해 본격적인 정책 검토에 들어간다고 밝히기도 했다. 혼인·혈연·입양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현행 법률 개정도 추진한다. 하지만 강씨는 "정책의 변화와 상관없이 한부모가정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여전히 '편견'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어린이날을 며칠 앞두고, 아이랑 여행을 다녀온 강씨는 "한부모가정이 아니어도 아이가 쓸쓸할 수 있고, 혼자 유튜브를 보며 오늘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을 포함한 세상은 꼭 한부모가정의 아이만 외롭고 고립된 것처럼 묘사한다"라고 꼬집었다.

불쌍하거나 이상하거나  

강씨는 남편과 결혼한 지 1년이 안 돼서 헤어졌다. 그게 서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딸 아이가 돌도 되기 전이었다. 이혼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다. 딸에게 아빠는 없었지만, '아빠 역할'을 한 어른들은 많았다.

"내 주변의 관계가 다양할수록 아이가 마주하는 어른도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대안학교나 여성회 등 여러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을 소개했어요. 아빠 역할을 하는 어른들을 다양하게 만나게 한 거죠. 여름이나 겨울마다 꾸준히 함께 놀러 가는 친구들이 있고요.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아이가 알아주기를 바랐어요."

아이는 '아빠'를 찾지도 딱히 아빠를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잘 자랐다. 하지만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 자꾸 아이가 '아빠'를 찾도록 만들었다. 가정의 달이자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은 특히 심했다. 여섯 살 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우리 가족 소개하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편지쓰기' 등 가족과 관련한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다.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어린이날인 5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이 해운대 모래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과 초여름 날씨에 바다를 찾은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어린이날인 5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이 해운대 모래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과 초여름 날씨에 바다를 찾은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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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가족 관련 프로그램을 할 때는 엄마·아빠랑만 연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유치원에 가니까 이제 가족 프로그램 범위가 할머니·할아버지까지 넓어지더라고요. 우리 딸은 할머니·할아버지가 없거든요. 뭐랄까 아이가 커갈수록 헤쳐나가야 할 벽이 계속 높아지는 기분이에요."

사실 한부모가정은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통계청 인구 총조사를 보면, 미혼자녀를 둔 가구 가운데 19.9%는 한부모가정이다. 여성가족부는 2019년 한부모가정이 152만9천 가구라고 집계했다. 한부모가정은 미혼, 배우자와 사별·이혼, 배우자 가출·군 복무·복역 등으로 모자가족·부자가족이 된 경우를 말한다. 한부모가족지원법 상 (외)조부모 가운데 한 명이 홀로 양육하거나 조부모가 함께 양육하더라도 그중 1명이 65살 이상이 된 조손가족도 한부모가정에 속한다.

한부모가정은 늘어나지만, 한국사회는 자꾸만 가정을 '부모와 아이'의 조합으로 여기며 이때만 '정상가정'으로 취급한다는 게 강씨의 주장이다. 아이의 유치원 프로그램이나 만화, 드라마, 동화책에서 '한부모가정'은 다루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불쌍한 존재로 취급했다.

"아이가 다섯 살 때, 유치원에서 가족사진을 가져오라고 했어요. 우리 둘째가 고양이거든요. 그래서 저랑 딸, 고양이가 함께 있는 사진을 찍었어요. 물고기도 키우고 있어서 어항도 나오도록 하고요. 유치원에 아이들 가족사진을 붙여놨는데, 전부 '엄마·아빠 아이'를 찍은 사진이더라고요. 그걸 보고 유치원 선생님에게 '가족은 다양한 형태라는 것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우리 아이는 잘 적응하고 있으니 걱정마시라고 하더라고요. 우리애를 걱정해서 한 말이 아니라 아이들이 벌써부터 편협하게 가족구성원을 생각하게 될까봐 물은 건데..."

"행복하게 이혼하는 게 왜 나쁜가"

강씨는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설명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동화책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라면서 "아이에게 한부모가정을 자연스레 설명해주기 위해 동화책을 찾아봤는데 우리나라 책으로는 없었다. 딱 한권, 외국 동화책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외국 동화책 내용은 이랬다. 아이들이 모여 엄마·아빠가 행복하게 지내지 않는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아이들은 부모가 싸우는 이유가 자신 때문은 아닌지 걱정하며 두려워했다. 이어 아이들의 부모님이 '결혼'이 끝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끝혼식'을 열었다. 결혼식처럼 사람들을 초대해 이혼 파티를 한 거였다.

검정옷을 입은 부모와 손님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혼을 축하하며, 결혼 생활이 끝났다는 걸 공식화했다.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따로 사니 찾아갈 수 있는 집도 두 곳, 선물도 두 배로 받을 수 있다며 행복해 했다.

"엄마·아빠랑 같이 살아야만 꼭 행복한 게 아니라는 걸 우리 다 알고 있잖아요. 어느 가정이 행복만 있고 어느 가정에 불행만 있겠어요. 그런데 유독 한부모가정은 가난하고 불행하다고 전제해요. 한부모가정도 돈이 많은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고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고 사는 게 버거운 사람도 있어요.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다양한 가족 형태는 계속 늘어가는데, 언제까지 3인 혹은 4인 가정만을 정상가정 취급할 건가요. 너무 구식 아닌가요."

강씨가 되물었다.
 

태그:#어린이날, #한부모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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