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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만난 생명의 아우성에, 집안에 머물러 있기가 어렵다. 40여년 만에 어릴적 기억을 소환하여 봄나물 뜯기에 나선다. 산과 들에 지천이다. 냉이, 민들레, 달래, 망초대, 쑥, 생강나무잎, 찔레, 아기 고사리... 어? 그런데 어디선가 뭉근하게 시골 냄새가 풍겨온다. 농작물을 살찌울 거름이다. 반갑기조차 하니, 세상에 이런 일이?

김선우 시인의 <양변기 위에서>가 떠오른다. 옛날에는 거름으로 귀하게 쓰여졌던 똥이 양변기를 타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 시다. 
 
양변기 위에서
- 시인 김선우

어릴 적 어머니 따라 파밭에 갔다가 모락모락 똥 한무더기 밭둑에 누곤 하였는데 어머니 부드러운 애기호박잎으로 밑끔을 닦아주곤 하셨는데 똥무더기 옆에 엉겅퀴꽃 곱다랗게 흔들릴 때면 나는 좀 부끄러웠을라나 ...(중략)...돌아오는 길 알맞게 마른 내 똥 한무더기 밭고랑에 던지며 늬들 것은 다아 거름이어야 하실 땐 어땠을라나 나는 좀 으쓱하기도 했을라나

양변기 위에 걸터앉아 모락모락 김나던 그 똥 한무더기 생각하는 저녁, 오늘 내가 먹은 건 도대체 거름이 되질 않고.

 

시인은 양변기 위에 걸터앉아 똥을 누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나보다. 어릴 적 어머니 따라 파밭에 갔다가 똥 한무더기 밭둑에 누곤 하던 때를 떠올린다. 그때는 똥이 자연으로 돌아가 동식물을 키워내는 거름이 되었다.

똥이 대접받는 시대였다! 어머니가 알맞게 마른 똥무더기를 밭고랑에 던지며, "늬들 것은 다아 거름이어야" 하실 때, '내'가 좀 으쓱하기도 했던 이유다. 똥이 적절하게 대접받으니, 똥을 싼 나도 대접받는 기분이었으리라.

그런데 양변기에 싼 똥은 어떠한가. 싸자마자 빨리 버려져야 할 오물이 된다. 똥을 싸는 행위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우리 집에는 화장실이 두 개지만, 애나 어른이나 안방 화장실을 애용해서 화장실이 1개인 거나 마찬가지다. 식구가 많을 때는 5명이 1개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꼴이다.

알다시피 아파트 화장실은 다른 어떤 공간보다 좁다. 그래서 변을 보든 세수를 하든 한 사람이 들어앉으면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참 폐쇄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다. 똥을 싸는 것조차 경쟁이라니!

똥을 싸기도 부담스럽다. 냄새도 잘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똥을 싼다면 화장실에 볼 일이 있는 사람은 기겁을 한다. 아악! 언제부터 똥이 이렇게 천대를 받았던고. 똥은 사실 고마운 존재다. 똥을 누지 못하면, 먹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똥이 우리를 살리는 거룩한 존재라면 좀 과한가.
 
엉겅퀴
 엉겅퀴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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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똥>의 저자 진 록스던(1931~2016년)은 미국의 농부이자 저널리스트이며, 문화사학자였다. 그는 똥을 인류 최고의 자연 자원이라고 했다. 그는 수백억 가치가 있는 똥을 버리는 것도 모자라, 처리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쓰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비판했다.

그가 쓴 '소 똥에 대한 명상'이라는 에세이를 읽으며, 그가 똥을 왜 거룩하다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미국의 시골 사람들은 소똥을 '소 파이', '초원의 머핀'이라 부른단다. 소똥 덩어리들이 먹이 사슬을 먹여 살리는 파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소똥은 미생물과 곤충, 새, 동물, 심지어 인간까지 끌어들여 상호작용하며 지구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3월, 새먹이가 드문 때에 파랑새들이 소똥에게 다가간다. 햇볕을 흠뻑 받고 있는 검은색 소똥 주변에 아주 작은 벌레들이 많기 때문이다. 날이 더 따뜻해진 4월에는 스컹크가 돌아다니며 잘 마른 소똥을 찾아 노련하게 뒤집는다. 거기에는 분해되고 있는 유기물로 살찌운 지렁이가 있기 때문이다.

너구리나 주머니쥐도 누른 도요새도 소똥 뒤집기를 한단다. 소똥은 똥파리도 끌어들인다. 똥파리는 소똥에 유충을 낳고, 그 유충은 배설물 속의 다른 벌레 유충을 먹는다. 그리고 새들은 똥파리를 비롯한 다른 벌레를 먹는다.

쇠똥구리는 이름에 걸맞게 소똥을 굴려 땅에 묻으므로 농부가 손을 대지 않아도 거름의 형태로 땅에 돌려 보낸다. 이렇듯 소똥을 둘러싼 생명활동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소똥이야말로 작은 우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소똥이 거룩한 이유다.
 
호박꽃
 호박꽃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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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의 어릴 적 기억에서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거룩한 똥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파밭에서 누곤 했던 똥은 사방으로 꽉막힌 아파트 화장실의 양변기 속 똥과 다르다.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통하는 들판에 곱다랗게 핀 엉겅퀴 옆에 떨어지는 행복한 똥이다. 비데로 씻겨지는 더러운 똥이 아니다. 애기 호박잎으로 닦여지는 똥이다. 똥꼬에 살짝 남아있다 한들 괜찮은 똥이다.

하늘과 땅, 바람과 햇빛, 엉겅퀴와 호박잎, 그리고 '나'와 하나가 된 똥! 거름이 되어 온갖 식물과 동물을 키워내는 똥! 거룩하지 아니한가. 시인은 문명의 이기로 자연을 홀대하며 결국은 인간 자신도 소외되는 세계를 고발한다. 자연과의 공존! 인간다움의 지향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똥, #자연과 인간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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