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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아니한다

대체적으로 보면 중국 사람들은 태평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들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조급한 내색을 하지 않고 유유자적한다. 그들에게는 부잣집 자제처럼 무슨 믿는 곳이 있는 듯한 표정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대부분 가난하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표정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전통과 믿음에서 기인한 지혜이자 정신이다.

"하늘은 복록(福祿)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아니하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아니한다(天不生無祿之人,地不長無名之草)."

이 말은 순자가 한 말이다. 우리 속담에도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가지고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중국인들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자신은 하늘이 낸 사람임으로 어떻게든 살아갈 방편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탓에 그들은 여유로운 것이다. 그들은 앞날에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도 알 수 없는 일 따위는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게 사는 길이란 것을 알고 있다.
  
인간 세상을 주재하는 하늘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줄 곳 하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민족이다. 하늘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단순히 자연현상으로서 존재하는 천공(天空)일 뿐만 아니라, 만물의 주재자로서 사물과 인간 세상에 커다란 힘을 미치고 조화를 주는 마음의 의지처다.

현세를 떠난 초월적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중국인들은 세상의 모든 작용을 천명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인간이 사는 세계 전체를 천하라고 하고, 이것을 통치하는 지배자를 천자(天子)라 하며, 천자는 천명(天命)을 받아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 즉 사람의 길은 하늘의 길을 근간으로 해야 하며, 하늘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가(儒家)나 도가(道家)는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하늘에서 인간 행동의 규범과 도리를 구한 점에서는 놀랍게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공자는 직접 하늘에 대해서 말한 적은 없지만, '하늘은 말하지 않는다. 사시(四時)가 운행되고 만물이 잘 자라고 있는데 하늘이 무엇을 말하랴'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 '아래로는 인간의 사리를 배우고, 위로는 하늘의 도리를 다함(下學上達)이니 나를 아는 자는 하늘인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또 맹자도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고 했다.
또한 노자도 '하늘의 길은 남는 것을 버리고 모자란 것을 보충한다' '천도(天道)는 친한 것이 없고 항상 선인(善人)의 편에 선다'고 하면서 하늘의 순리를 이야기했다.
  
과연 천도는 있는 것인가?

그러나 과연 현실에서 그러한 천명이나 도리가 인간 세상에 고루 퍼져서 평등한 혜택을 주는 것일까? 악인이 번성하고 선한 사람이 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은 하늘에 뜻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다. 역사상 그 전형을 보여주는 이는 <사기(史記)>의 작가 사마천(司馬遷)이다. 그는 아무도 올바른 말을 하지 않는데 직언을 하다가 궁형을 당하기까지 한사람이다. <사기>를 완성하는 10여 년 세월 동안 그는 비참에 극을 더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사기>를 완성했다. 그러면서 그는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의로운 삶을 살았지만 결국 굶어 죽고 만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두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혹자는 말하기를 '천도는 공평무사해서 항상 착한 사람을 돕는다'고 한다. 백이와 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과 같이 어진 덕을 쌓고 품행이 고결한 사람들이 끝내 그렇게 굶어죽었다. 하늘이 착한 사람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면 이런 일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어디 그뿐이랴! 공자는 72제자 중에 오직 하나 안회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로 천거했다. 그러나 안회도 항상 가난하여서 굶주리다가 끝내 요절하고 말았다.
반면에 도척(盜稙)같은 자는 날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쳐 먹고, 포악무도한 짓을 일삼고, 수천 명의 도둑 떼를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그런 자가 도대체 무슨 덕을 쌓았기에 그런 복을 누렸을까?

이 몇 가지는 가장 두드러진 예이며, 가장 문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법도를 지키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도 종신토록 안락을 누리며 부귀를 대대로 누리는 족속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사는 곳을 조심스럽게 골라야 하고, 말을 하려면 적당한 기회를 찾아 입을 열어야 하며, 길을 걸을 때는 작은 길이 아닌 큰길로 다녀야 한다. 또한, 세상을 위해 공명정대한 일을 하다가도 오히려 재앙을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실로 매우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런 것이 천도라는 것이라면 이러한 천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니면 틀린 것인가? - 이상 사마천, <사기> 백이열전

하늘은 그대로 있으니 군자는 스스로 노력하라

그래서 맹자는 각국을 주유하면서 제왕(帝王)들에게 서경(書經)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했다.

"하늘은 백성이 듣는 소리를 듣고. 백성이 보는 바를 본다."

맹자는 왕들에게 패도를 버리고 백성의 소리를 들어서 천명을 얻음과 함께 백성들의 복지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과감하게 이렇게 주장했다.

"백성이 국가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토지와 곡식의 신은 그 다음이다. 통치자는 가장 마지막에나 놓이는 구성요소이다. 만약 국가가 민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결국 '천명'이 바뀌어 지며 국가의 운명은 위태롭게 될 것이다."

맹자의 이 말은 백성이 바라는 바가 하늘이자 하늘의 뜻이라는 인본사상의 기초를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 많은 정치인과 학자들이 천명을 다스리는 자는 백성이 하늘의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귀담아 듣는 것만이 진정한 천명을 따르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군주는 오직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려야 하는 것인데, 만일 사물이 질서를 잃고 혼란 상태에 빠졌음에도 이를 바로잡아 정리하지 못한다면 이는 군주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 정약용

하늘의 해는 고루 비치어 어느 것은 더하고 어느 것은 덜함이 없으며 지극히 공정한 일에는 사사 절친함을 용인하지 않는다. 군주가 만민의 위에 있어서 덕화(德化)를 펴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군주로서 천하를 다스리게 하는 것은 천하를 바로잡아 만민을 다 편안케 하는 것이 그 본분이며 천하의 재력이나 인민의 수고로움을 거두어서 군주 한 사람의 안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군주는 천명에 의하여 천하를 다스릴망정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기 때문이니, 군주는 예의를 바르게 가져 사치한 일을 금하고 음악으로써 본심을 고르게 하여 방탕에 흐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 장온고(張蘊古), 대보잠(大寶箴)

태그:#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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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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