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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중소업체를 운영 중인 김아무개씨는 지난 2018년 7월 1억원이 넘는 금액의 디스커버리를 구입해 운용해왔다.
 디자인중소업체를 운영 중인 김아무개씨는 지난 2018년 7월 1억원이 넘는 금액의 디스커버리를 구입해 운용해왔다.
ⓒ 제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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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거나, 아예 차를 주차한 다음에 불이 났다면 주변 건물까지 번졌을지도 모르죠."

김아무개(49)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9일 오전 경기도 일산동구 재규어랜드로버 일산서비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한 달 전 끔직한 경험을 아직도 잊지 못한 표정이었다.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 앞. 디자인 중소업체를 운영 중인 그는 여느 때처럼 외부 미팅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던 참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운전석 뒷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뒷쪽 3열 좌석 아래쪽에서 불길과 함께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김씨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바로 차를 세우고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했다"면서 "주변에 있던 주민께서 바로 119에 신고를 해주시고 인근 소방서에서 긴급하게 나와서 화재를 진화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씨의 차량은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이하 랜드로버코리아)가 수입해 판매 중인 7인승 다목적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디스커버리다. 차량 값만 1억원이 넘는다. 세 자녀를 둔 그는 지난 2018년 7월에 구입한 이후 2년 넘게 운행 중이었다. 차량 화재는 20여 분만에 진화됐고, 차량 외부까지 크게 번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차량 내부는 큰 손상을 입었다. 차량 안쪽 3열 좌석 일부분은 화재로 형체가 크게 손상됐고, 주변 역시 전기 배선 등이 타버려 시커먼 그을음 투성이였다.

그는 "2년 넘게 별다른 문제없이 잘 운행하던 차 실내에서 갑자기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이날 사고 현장에 나온 소방당국에서도 실내 좌석 화재에 대해 의아했다고 그는 전했다. 김씨에 따르면, 소방대원은 차량 앞쪽 엔진룸 등을 살펴본 뒤 "좌석에서 화재가 난 것은 처음 본다"며 경찰 등과 함께 사고 현장을 채증했다.

김씨는 "화재 진화 이후 판매 회사(딜러)쪽에서 나와 차량을 서비스센터로 보냈다" 면서 "(회사 쪽에서) 처음에는 수리 보증기간 등이 남아있기 때문에 처리하면 될 것이라고 해서 믿었다"고 말했다.

이례적인 차량 실내 화재, 왜?
 
차량 화재로 김아무개씨의 디스커버리 3열 뒷좌석이 크게 훼손됐다. 화재는 3열 뒷좌석 아래쪽에서 발생했다.
 차량 화재로 김아무개씨의 디스커버리 3열 뒷좌석이 크게 훼손됐다. 화재는 3열 뒷좌석 아래쪽에서 발생했다.
ⓒ 제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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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며칠이 지난 후, 그는 차량을 인수해 간 판매사 케이씨씨 오토모빌 쪽으로부터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랜드로버코리아 쪽에서 조사한 결과, 제조사 결함이 아니기 때문에 보증수리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화재 발생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에 김씨가 별도로 방음재를 시공했고, 이 부품에서 문제가 생겨 화재가 났다는 것.

랜드로버코리아 쪽에서 <오마이뉴스>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차량의 내부 바닥 면과 좌우 옆면 곳곳에 방음재 등이 붙어 있었다. 또 화재가 처음 발생한 곳으로 추정되는 3열 좌석 아래쪽 너트와 배선을 감싸고 있는 피복 등도 벗겨져 있었다. 

회사 기술지원팀 관계자는 "차량 앞쪽 발전기에서 뒤쪽 밧데리로 전류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부품 불량으로 인해 고저항과 스파크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화재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때문에 주변 부위가 녹거나 손상되면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부품이 불량으로 이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선, 외부업체가 차량 바닥면 등에 방음 시공을 하는 과정에서 관련 부품과 배선 등에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회사 쪽에선 보고있다. 

반면에 내부 방음을 시공한 업체 쪽에선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자동차 방음시공 전문업체인 A사 이아무개 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화재 원인이 된 너트 등 관련 부품을 시공과정에서 손대지 않았다"며 "방음재로 사용한 제품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의 정품으로 화재시 불이 붙지 않는 난연성 소재"라며 사진과 동영상 등을 공개했다. 

이들 자료를 보면, 차량 바닥면에 방음재를 붙이면서 해당 너트 부분을 빼고 작업을 해 놓은 상태였다. 또 방음재에 직접 불을 붙이는 실험에서도 불은 붙지 않았다. 랜드로버코리아쪽에서도 해당 방음재가 난연성 소재인 것에 대해선 인정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어 "차량에 대한 방음 시공은 지난 2019년 8월이었고, 이미 1년 6개월 넘게 운행된 차량에서 갑작스런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며 "만약 부품 문제로(너트가 풀려) 사고가 생겼다면 그에 앞서 다른 전자 부품에서 먼저 고장이 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조 결함 의심 vs. 외부 시공에 의한 부품 불량 가능성
 
화재 발생 지점으로 추정되는 뒷좌석 아래쪽 전기 배선의 연결 부위. 회사 쪽에서는 차주가 임의적으로 바닥면에 방음재 등을 시공하면서 해당 부품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방음재를 시공한 업체쪽에서는 관련 부품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작업을 했다고 반박했다.
 화재 발생 지점으로 추정되는 뒷좌석 아래쪽 전기 배선의 연결 부위. 회사 쪽에서는 차주가 임의적으로 바닥면에 방음재 등을 시공하면서 해당 부품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방음재를 시공한 업체쪽에서는 관련 부품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작업을 했다고 반박했다.
ⓒ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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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지난 2014년부터 7년 넘게 국산차 뿐 아니라 고가의 수입차 등 2000대 가량의 방음관련 시공을 해왔다"면서 "시공 과정에서 차량 내부 부품을 뜯지 않고 작업을 해 왔고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의 화재가 발생하려면 강력한 열에 의한 불이 나야 한다"면서 "차량 내 해당 부품의 위치 등을 고려할 때 발전기 부분에서 정상 이상의 전력이 전달돼 부품을 싸고 있는 플라스틱과 주변 피복 등이 녹으면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디스커버리 차량의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랜드로버코리아 쪽에서 화재 원인 조사과정에서 임의로 발화지점의 관련 부품을 파손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차량 주인인 김씨는 "화재 직후에 발화로 추정되는 위치의 너트 등을 사진으로 찍어놨다"면서"10여일이 지난 후 서비스센터에 있던 차량을 다시 봤을 때는 차량 앞쪽까지 거의 대부분을 탈거해놓고 화재 추정 부위 등도 달라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전에 이 같은 조사에 대해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회사 쪽은 차량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련 부품과 전자 장비 등을 불가피하게 탈거하는 등의 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기술팀 엔지니어들이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작업이었다"면서 "조사 과정에서 일부 부품이 파손됐지만, 그것을 통해 사전에 부품에 문제가 있었을 개연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의 차량은 현재 한 달여 동안 서비스센터 주차장에 방치돼 있다. 회사 쪽에서는 최근 김씨에게 보증수리가 불가하다는 입장만 통보했으며, 수리를 할 경우 4500여만원에 달할 것이라는 견적서를 제시한 상태다. 김씨는 난데없는 화재 사고로 수천만원에 이르는 재산상의 피해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그는 랜드로버코리아 쪽의 소비자 대응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화재 직후 차량에 설치된 긴급구조전화(SOS)로 회사에 도움을 청했다"면서 "처음에는 '긴급 경정비만을 담당한다'면서 접수 자체도 안 됐고, 또 다른 긴급전화를 연결했을 때도 제대로 된 화재 대응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의 차량을 서울 강남 서비스센터로 옮긴 이후에도, 회사 쪽으로부터 화재 관련 조사 과정 등 어떠한 이야기도 전해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회사 쪽 입장을 계속 요구하자, 랜드로버코리아 쪽에서 이미 3월 초에 경찰에 보낸 '차량 화재 조사 확인서'를 뒤늦게 전달 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는 "딜러사(판매사)에서는 랜드로버코리아 쪽으로 떠넘기고, 랜코 쪽에서는 사고 한 달이 넘었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랜드로버코리아의 외국인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국내 소비자들을 위해 애프터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고 했는데, 현장에선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에서 대형 SUV 디스커버리 차량이 운행 중 뒷좌석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화재사고 당시 경찰과 소방당국에서 현장 채증을 하고 있는 모습.
 지난 2월 서울 강남구에서 대형 SUV 디스커버리 차량이 운행 중 뒷좌석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화재사고 당시 경찰과 소방당국에서 현장 채증을 하고 있는 모습.
ⓒ 제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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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디스커버리 화재사고, #랜드로버 애프터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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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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