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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영석 이석영(潁石 李石榮 1855-1934)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감춰져있는 인물이다.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李裕承)의 차남으로 우당
이회영 선생과 성재 이시영 부통령의 둘째 형이다. 무장독립투쟁의 베이스캠프라고 하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울 때 건립 비용과 운영 자금을 쾌척했던 당대 굴지의 재산가였다.

마침 2월 16일은 영석 선생 순국87주년 되는 추모일이다. 1934년 2월 28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이석영 선생은 2월 16일 오후 2시 상해 빈민가에서 서거하여, 홍교 공동묘지에 안장했다는 5단짜리 기사가 났다. 이 기사에 따르면, 동생 이시영은 사정이 있어 항주에 머물러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 임시로 장례를 지냈다고 보도했다. 임시정부가 윤봉길의사 상해 의거 이후 항주로 피신했고 상해는 일제가 점령하여 독립운동가들이 접근하지 못해 이시영이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석영 선생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 대감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885년 증광시(增廣試) 문과에 급제하여 1904년에는 차관급에 상당하는 장예원(掌禮院) 소경(少卿)을 역임하고 을사늑약 직후 은퇴하였다. 이유원 대감이 서거한 후에는 양부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았다. 황현(黃炫)선생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의하면 "경기도 양주에게 한양까지 80리 주변의 전답이 모두 그의 소유"라고 서술했다.

경술국치를 당하자 이석영 6형제는 독립운동을 위하여 모든 재산을 비밀리에 매각하여 40만 원의 자금을 가지고 망명했다. 1969년 월간지 '신동아'에서 한국은행에 의뢰하여 추산한 규모가 600억 원이었고, 2012년 한 대학에서 조사한 6형제의 소유재산의 공시지가로 따지면 2조 원이 넘는 엄청난 재산이었다.

1910년 12월, 이석영 선생 6형제 전 가족 50여 명이 망명하여 다음 해 4월에는 망명 동포들의 자치단체인 경학사를 설립하고, 6월에는 신흥강습소를 개교하여 청소년 교육과 군사훈련을 시작하였다. 신흥강습소는 다음 해 통화현 합니하(通化縣 哈尼河)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신흥무관학교로 개칭하였다. 무관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자금은 이석영 선생이 대부분 부담하였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경신참변(庚申慘變)으로 폐교될 때까지 10년 동안 3500여명의 독립군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무관학교 출신들은 1945년 해방될 때까지 모든 독립전쟁의 주역이었고, 1940년 광복군을 창설할 때 지청천 사령관을 비롯한 김원봉, 이범석, 김학규 등 고위 지휘관이 모두 신흥무관학교 출근들이다.

이석영 선생은 1918년 일제의 체포령이 떨어지자 삼양, 천진, 북경을 유랑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상해 빈민가에서 생을 마감했다. 더군다나 의열단체인 다물단(多勿團) 단장이던 장남 이규준은 의열투쟁 중 일제에 의하여 전 가족이 몰살되고, 차남 이규서도 행방불명되어 후손이 없어 안타깝다.

이제 순국하신 지 87년 만에 처음 추모식을 거행하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이석영 선생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지만 훈격이 낮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정부에서 독립유공자를 심사할 때 일제강점기 소속 단체이나 조직에서의 역할, 그리고 일제에 의한 형량을 중심으로 서훈을 결정한다.

조직적인 활동을 하지 않거나 일제에 검거되지 않은 분들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는 구조이다. 이석영 선생은 당대 굴지의 재산가로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쾌척하여 독립군을 양성했으나 87년만의 처음으로 추모식을 거행하는데도 정부의 지원이 없으니, 참담한 생각이 든다.

이석영의 업적에 대하여 1936년 상해에서 발행된 '한민(韓民)'지는 "수많은 재산을 신흥무관학교 운영에 모두 쏟아 붓고 나중에는 지극히 곤란하게 생활하면서도 일호의 원성이나 후회하는 마음이 없이 태연하여, 장자(長子)의 풍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건국훈장 표상제도가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이제 60년이 경과했으나 아직도 일제가 만든 자료로 평가하는 모순에서 탈피해야 한다. 독립운동에 대한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업적을 평가해야 될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황원섭씨는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입니다.


태그:#이석영, #이회영, #이시영, #신흥무관학교, #광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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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을 정년 퇴직하고 현제는 보훈처에서 지정한 현충시설에서 해설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세미나나 학술회의에 자주 참여하면서 소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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