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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발 한파가 불어닥친 7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중앙공원 한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온풍기 앞에서 추위를 견디며 검사 신청을 받고 있다.
 북극발 한파가 불어닥친 7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중앙공원 한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온풍기 앞에서 추위를 견디며 검사 신청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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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아픈 데는 없지만 평생 데리고 가야 할 지병이 있어 일 년에 두 번 혈액 검사를 한다. 그 외에도 비정기적인 일로 여러 차례 채혈을 하니, 제법 익숙해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시선을 돌리는 것도 예전 일. 이제 바늘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한다.

채혈을 하시는 분의 경력이 얼마 안 되셨는지 혈관을 한 번에 못 찾아 바늘을 여러 번 꽂아야 할 때도 더러 있었다. 나보다 더 당황하시는 분들께 나는 짐짓 여유롭게 말하기도 한다. 

"저 괜찮아요. 마음 편하게 하세요."

언젠가는 정맥 주사라서 조금 아플 거라는 안내를 받았는데 그 정도쯤이야. 내가 어찌나 덤덤했는지 주사를 놔주신 간호사분도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느낌이 안 나셨냐고 물어볼 정도. 솔직히, 이때 좀 뿌듯했다. 

언젠가 후배 하나가 어쩜 그리 태연하냐고, 본인은 여태 주사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다며 이 나이에 받기 민망한 칭찬을 해준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나라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주사 처방이 내려지기만 하면 날쌔게 도망 다니기 바빴다. 한 번은 간호사분과 엄마가 잡으려다가 실패하고, 결국 계단을 청소하시던 분께 잡혀 질질 끌려 들어간 적도 있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면 엄마에게 혼날 것도 무서웠지만, 그보다 주사가 더 무서웠으니 어쩔 수 없었다. 

주사 정도야 끄떡없는 내가 무서워하는 것 

어른이 되며 짐짓 괜찮은 척을 하기 시작했지만, 가장 크게 발전(?)한 것은 급성 간염 때문이었다. 감기인 줄 알고 병을 악화시키다가 결국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됐는데, 고열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내 살을 뚫고 들어온 바늘이라니! 그렇게 황송하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성인이 의젓하게 주사를 맞고 피를 뽑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겨우 이걸 참지 못하면 더 큰 후환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좋아하긴 어렵겠지만 살다 보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있음을 너무도 잘 알게 된 것. 

하지만 이런 내가 오랫동안 끔찍하게 싫어한 게 있으니 바로 콧속에 뭔가를 집어넣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해 몸서리를 치곤 했다. 코감기에 걸리면 이비인후과에서 가서 막힌 것을 확 뚫는다는 친구도 있는데, 나는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다.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언젠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에 걸려 수개월간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한 적이 있다. 그때 식염수로 코를 씻어내라는 처방을 받았는데, 결국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냄새를 맡지 못하니 음식에도 흥미를 잃고 만사가 지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저녁 식염수 통을 만지작거릴 뿐, 포기하고 말았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 좋아서 하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무서웠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맥 주사 열 대, 아니 스무 대와 맞바꾸고 싶을 정도. 나는 정말이지 콧속에 뭔가를 넣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러니 코로나19도 무섭지만 코로나19 진단 검사가 더 무서울 수밖에. 유치하지만 진심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나는 좀 심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철저히 지켰다. 박봉의 재택근무자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여기며 은둔과도 같은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지난달, 겨드랑이에서 뭔가가 만져지기 시작했다. 아픈 것도 아니니 병원에 가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얼마 뒤 메추리알 크기로 커져 있는 걸 발견했다. 더이상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병원에 가 보니, 피하 낭종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간단한 수술로 제거하면 끝. 

수술이라고 하면 왠지 거창하게 들리지만 국소 마취로 진행되니 아플 것도 없다. 주사 정도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나로서는 두려울 것도 없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으니, 수술 환자는 전원 예외 없이 코로나19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 

이런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즉각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이런 것이다.

"그럼 저… 코로나 상황 끝나면 할게요."

도망치고 싶었던 그 순간... 코로나 검사 받아보니 

하지만 낭종이 며칠 새 이렇게 커진 걸로 봐서는 더 커질 수도 있고, 지금은 비교적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부위에도 엉겨 붙어 심각해질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나는 이번에 수술을 해야 했고, 그 말인즉슨 코로나19 검사도 하게 됐다는 이야기.

부들부들 떨며 검사실에 들어갔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혼쭐이 났다. 하지만 검사를 담당하시는 의료진이 입은 복잡한 방호복을 보니 그런 마음이 서서히 가셨다. 많이 아프냐며 쓸데없는 질문을 할 뻔했지만 그 또한 쏙 들어갔다.

결국 나는 은둔 와중에 의젓하게 코로나19 검사를 마쳤다는 얘기.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할 만했다.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게 뭐라고, 아파 봐야 그 몇 초를 못 참을까. 엉겁결에 나는 공포 하나를 더 극복했다. 

검사의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설마하니 내가 걸리겠어' 하는 마음, 시간이 없어서, 파급 효과가 걱정돼서 등등. 그 중 혹시나 통증이 무서워서 피하는 나 같은 쫄보가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그까이꺼' 별거 아니더라고. 

성인이 된 지는 한참 지났지만, 이렇게 또 진짜 어른에 한걸음 가까워지는 듯하다. 감염 가능성이 있다면 씩씩하게 검사 받으며 우리 모두, 어른이 됩시다! 

태그:#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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