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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1880-1936)
 신채호(1880-1936)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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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신문』 논설위원과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역임하면서 날카로운 필치로 항일구국논설을 집필했던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역사학자ㆍ언론인ㆍ독립운동가로서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문화사』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조선의열단의 선언문인 「조선혁명선언」은 불멸의 일제타도의 문건으로 평가되었다.
 
국치 직전인 1910년 봄에 망명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교포신문인 『해조신문』의 주필로서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대종교의 중진 윤세복의 초청으로 1914년 서간도 봉천성 환인현 홍도천으로 가서 대종교와 인연을 맺는다.

망명 직전에 발표한 「동국고대선교고(東國古代仙敎考)」에서 '선교'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인다. 따라서 망명 이전부터 나철이나 대종교와 일정한 교유가 있었을 것 같다. 
 
신채호는 1914년 서간도로 망명하기 이전에 이미 대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서간도 봉천성 환인현 홍도천으로 가서 한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때에도 대종교계통의 학교인 동창학교에서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국사를 교수하는 한편, 만주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애국심 고취와 계몽을 겸한 국사교재로 『조선사』를 집필 간행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당시 서간도로 망명할 때에도 대종교의 중진이었던 윤세복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신채호가 단군의 역사적 존재와 의의를 강조한 것도 일제의 강점지배라는 식민지 상황과 밀접한 조응을 갖거니와 김교헌ㆍ윤세복ㆍ김좌진ㆍ신규식ㆍ이시영ㆍ박찬익ㆍ김백연ㆍ조완구ㆍ조성환 등 망명지사들이 모두 대종교의 지지자들이었으며, 공통적으로 이 시기의 독립운동을 추진하는 활력과 결속을 위해서 대종교 운동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석 6)

 
신채호가 가졌던 한국고대사의 주제어는 선교와 '낭가사상(郎家思想)'이다. 
 
국난기를 맞은 그에게 선교와 낭가사상은 외래 사상과 외부의 침략에 맞서 이를 구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민족정신으로서의 고대 민족신앙인 선교와 전통적인 민족사상인 낭가사상의 이념을 「동국고대선교고」란 논설을 통해서 그 싹을 표출하게 된 것은 낭가사상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낭가와 낭가사상의 독자성과 주체성을 강조하여 국선ㆍ풍류도ㆍ풍월도가 갖는 의미가 중국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즉 낭가사상의 국선은 투쟁에서 생활하여 도교의 '무위(無爲)'와 '불언(不言)'과는 판이하며, 낭가를 풍류라 함은 지나(중국) 문자의 유희풍류(遊戱風流)의 뜻이 아니라, 우리말의 풍류 곧 음악을 가리킨 것이며 풍월(風月)도 지나 문자의 음풍영월(吟風詠月)의 뜻이 아니라 우리말의 풍월, 곧 시가(詩歌)를 가리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신채호, 『조선상고문화사』)
 
신채호(뤼순감옥 투옥 중)
 신채호(뤼순감옥 투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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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문화사』는 서명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사와 함께 문화사 부분의 서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신채호는 단군조선 전반기 1천년의 정치와 문화는 고대에 있어서 가장 선진적인 것이었다고 하며, 중국을 비롯한 동양 각국 문화의 원류가 된 모범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만일 후손들이 무력으로 그 문화를 보호하고 확장하였다면 조선이 진실로 동양문명사의 수좌를 차지할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독점하였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신채호는 여기에서 단군시대의 종교로서 선교를 들고 있으며 화랑은 신라의 과거법이 아니라 단군 때부터 내려오던 종교의 흔이요, 국수의 중심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중국의 오행과 팔괘는 조선에서 수입해간 것이라 하여 한중관계를 문화우열의 관계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주석 7)


주석
6> 김동환, 「기유중광의 민족사적 의의」, 『국학연구』 제1집, 111쪽, 한국정통문화연구회 국학연구소, 단기 4321.
7> 박걸순, 앞의 책, 29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태그:#나철, #나철평전, #홍암, #홍암나철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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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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