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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좋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데, 기숙사가 있는 학교였다. 동생들과 북적대며 한 방을 쓰는 것으로도 짜증이 나던 사춘기의 반항아는,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좋기만 했다. 가족을 떠난 새로운 곳의 삶이 줄 수 있던 '불안감'은, 나에게 허락된 안전한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순간 안정감을 찾았다.

열여섯 살에 시작된 기숙사의 삶은 대학을 지나 대학원까지 12년 동안 이어졌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기숙사의 이사철이 되면 짐을 실은 손수레가 교정을 채우기도 했고, 방을 같이 쓰는 친구가 계속 바뀌기도 했지만, 기숙사라는 울타리는 안전했고 편안했다.

하지만, 박사 과정 고년차가 되며 기숙사 생활이 지겨워질 즈음, 졸업이 늦어진 학생들에겐 '징벌적 기숙사비'를 더 받겠다고 하길래 근처에서 대학을 다니던 셋째 동생과 함께 살 집을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진 돈으로 방이 여러 개인 그럴듯한 아파트는 가능할 리 없었다.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 간신히 학교 근처 다세대 주택 1층의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전국 각지의 원룸을 옮겨 다니며 살게 된 것은.  

안전한 기숙사를 벗어난 원룸의 추억

기숙사를 벗어나서 원룸에서 사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동생과는 학교를 마치고 나서야 만나는 정도였지만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할 수도 있었고, 부엌도 있어서 원하는 음식을 해 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건물들로 빼곡하게 둘러싸인 다세대 주택의 1층엔, 해가 비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집은 항상 어두웠고 축축했다. 이후로 집을 구할 때엔, 가능하면 창이 있고 빛이 들어오는 곳을 구하려 했던 것도 이때의 경험 때문이었다. 

첫 직장은 수원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도 벗어났으니, 이번에는 완벽히 낯선 도시에서 '기숙사도 친구도 없이' 새롭게 시작하는 경험이었다. 입사를 결정하고 나서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그곳에서 '살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직후였으니 모아놓은 돈은 여전히 없었고, 예산은 회사에서 정착금 형태로 빌려준 대출금이 전부였다. 그 길로 회사 근처의 부동산에 들러서 예산 범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을 청했다. 

"그 예산으로는 아파트는 불가능해요. 원룸 중에서 괜찮은 것들을 보여드릴게요."

부동산에서 안내해 준 '예산 범위 내'의 집들은 하나같이 퀴퀴한 냄새나 해가 들지 않는 좁은 방에 실망하는 곳이었고, 간신히 회사 후문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의 동네에 새로 지어졌다는 원룸이 눈에 들었다.

새로 지어진 집이라 깔끔했고, 넓은 베란다의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한 공간이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회사를 마치고 들어오면 새벽이었으니, 편안한 잠자리와 샤워할 수 있는 화장실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서른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혼자 살기에도 불편함은 없었다. 

두 번째 직장인 포항으로 옮겼을 때도 이런 과정은 계속 반복되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1인 생활자라는 것도 변하지 않았고, 이삿짐이라고 해봤자 작은 승용차에 채워 넣은 것들이면 충분했다. 낯선 곳에서 집을 구하는 것도 벌써 몇 번이나 해 본 일이었기에 실수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찾아간 부동산이 구해준 집은 생각한 집과 너무 달랐다. 동네에 익숙해진 후 살펴보니, 내 집은 유흥가의 한가운데로 비슷비슷한 다세대 주택들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햇빛은 충분하지 않았고, 작은 침대를 하나 들여놓으니 가족들을 초대하기에도 비좁았다.

전세 계약 기간이었던 2년을 간신히 버티고 이사를 가겠다고 결심했지만, 꽤나 오랫동안 다음 세입자가 결정되지 않아 혹시라도 계속 거기서 살아야할까봐 공포에 떨었다. 더 이상은 그 곳에서 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포기할 때 쯤, 세입자가 결정되어 공원이 있는 다른 동네 원룸으로 옮길 수 있었다. 
 
작은 침대를 벽에 붙여서 놓고, 친구가 만들어 준 거실 테이블을 놓고나면 손님이라도 누구 하나라도 초대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햇빛도 부족하니 계속 축축했고, 욕실의 금속들은 2년도 되지 않아 녹이 슬었다. 이런 곳이 계속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 포항에서 구했던 원룸은 정말 좁았다. 작은 침대를 벽에 붙여서 놓고, 친구가 만들어 준 거실 테이블을 놓고나면 손님이라도 누구 하나라도 초대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햇빛도 부족하니 계속 축축했고, 욕실의 금속들은 2년도 되지 않아 녹이 슬었다. 이런 곳이 계속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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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훌쩍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 사는 '1인 생활자'이다. 친구들이 가정을 꾸리고 아파트를 구하는 동안, 나는 기숙사를 거쳐 원룸으로, 지금은 회사에서 제공해준 아파트로 사는 곳만 옮기고 있을 뿐이다. 1인 생활자에게는 턱없이 큰 회사의 숙소가 과하기는 하지만, 전세 계약에 따라 2년마다 집을 옮겨야 하는 부담이 사라지니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안정감이 만족스럽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날 때의 불안은 머무를 수 있는 기숙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완화되었다. 하지만, 아파트를 소유하겠다는 생각을 버린 후에는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의 원룸'을 찾아다녀야 했고, 처음 집을 떠날 때의 불안은 다시 소환되었다. 나의 경우엔 회사에서 제공한 집에 입주할 수 있었으니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모든 1인 생활자의 상황이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 초년생이 세상에 나오면서 처음으로 머물게 되는 집이라는 공간을 생각해 본다. 가족의 지원이 넉넉하다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오래된 원룸이나 비좁은 고시원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나는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군대를 마친 남동생이 잠시 머물렀던 신림동의 고시원을 찾았을 때 느꼈던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혹자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언젠가의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불안을 참아내라고 하지만, 그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 것만으로도 불안이 가득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지금의 이 사회가 애를 써야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열악하고 불안한 환경을 '젊음의 패기'로 견뎌내라는 것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도, 먼저 세상을 살아온 선배의 역할도 아니다. 

청년들과 노인들이 안전한 주거 환경에서 살기를
 
1일 서울 성북구에 문을 연 청년 맞춤형 공유주택에서 관계자가 시설을 시연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대학생·청년의 주거안정을 위해 청년 맞춤형 공유주택 '안암생활'을 공급하고 입주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우수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장기간 공실 상태에 있었던 도심 내 관광호텔을 리모델링했다.
▲ "안암생활" 청년 맞춤형 공유주택 1일 서울 성북구에 문을 연 청년 맞춤형 공유주택에서 관계자가 시설을 시연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대학생·청년의 주거안정을 위해 청년 맞춤형 공유주택 "안암생활"을 공급하고 입주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우수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장기간 공실 상태에 있었던 도심 내 관광호텔을 리모델링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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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부에서 제안한 새로운 청년 주거 형태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호텔을 개조한 건물의 객실은 개인의 공간으로 침실과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이 있고, 공용공간으로는 부엌, 식당과 거실이 있는 형태였다. 사회 초년생을 포함한 1인 생활자라면 부족할 것이 없는 주거환경이었을 텐데, 일부 언론 기사는 이 제도가 가진 장점마저 어떻게든 깎아내릴 태세였다.

기사를 통한 그들의 논쟁을 지켜보며, 살 곳을 찾아 헤매 다녔던 지난 20년의 시간을 떠올렸다. 기숙사를 나와서 살 곳을 찾을 때, 이런 안전하고 좋은 환경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불가능한 가정까지 하면서 말이다. 

살아가는 환경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 처음 나온 것만으로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이 점점 더 나아지면, 나이 들어 혼자된 어르신들에게도 지금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을 기대한다.

그렇게 모두의 삶의 주기에서 '살아갈 공간'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기만 해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 부동산 문제를 새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원룸이나 고시원이 아닌 청년 주거의 새로운 형태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태그:#호텔식 주거, #1인 생활자, #원룸이나 고시원, #새로운 주거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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