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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암 나철선생
▲ 홍암 나철선생 홍암 나철선생
ⓒ 김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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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의 대종교 활동은 국치 초기에 국권회복운동의 모태가 되고 이와 함께 민족주의 역사학의 뿌리로 작용하였다. 대종교와 민족사학은 비슷한 시기에 상보관계를 유지하면서 작동한다. 그리고 '일란성 쌍둥이' 처럼 발전한다. 

대종교는 을사조약 직후부터 준비되어 1909년에 창립(중광)되고, 1910~20년대에 극성기를 맞이하였다. 교리는 단군 이래의 고유종교를 부활시킨 것이라고 표방하고, 또 단군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국사체계를 제시하고 있는 까닭에 역사서술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다.

대종교가 창설되는 시기와 민족주의역사학이 성립하는 시기는 거의 일치하며, 양자는 서로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면서 발전해 가고 있었다. 신채호는 대종교가 창설되는 분위기 속에서 많은 민족주의 사론을 발표하다가 1908년에 『독사신론』을 써서 민족주의 역사학의 방법론과 이에 입각한 새로운 고대사 체계를 제시함으로써 종전의 소위 신사체사학(新史體史學)'과 일선을 획하는 근대사학으로서의 민족주의 역사학의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주석 13)


이 같은 현상은 본격적인 민족사학 연구의 계기가 되고, 민족사학은 국난기 한민족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하였다. 출중한 민족사학자 대부분이 대종교 교도이거나 관련된 인사들이다. 김교헌ㆍ박은식ㆍ신채호ㆍ안확ㆍ안재홍ㆍ정인보ㆍ문일평 등이 이에 속한다. 전문가의 분석이다. 

대종교도들이 쓴 사화(史話)는 그 내용이 반드시 통일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통점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인류문화의 발상지를 백두산 부근에 설정하여 우리 나라가 세계문화의 중심지라는 것.

둘째, 부여족 뿐 아니라 여진ㆍ몽고ㆍ거란 등 소위 동이족 전체를 '배달족'이라는 하나의 큰 민족집단으로 간주하여 이를 우리의 조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서양의 '범게르만주의'나 '범슬라브주의'와 비슷한 '범동이민족주의(汎東夷民族主義)'라고 부를 수 있다. 

셋째로, 우리 민족의 종족적 범위를 위와 같이 확대시킨 결과 자연히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는 민주와 한반도는 물론이요 중국동북지방까지 포괄되며, 순임금이나 요ㆍ금ㆍ원ㆍ청 등과 같은 북방족의 왕조도 우리 민족의 역사로 간주된다.

넷째로, 우리의 민족문화의 핵심이 되는 종교는 불교나 유교가 아니라, 단군 이래로 내려오던 신교(神敎, 대종교에서는 이를 대종교(大倧敎)라 부른다)이며, 이는 동이족 전체가 공유한 배달족 고유의 민족종교인 것이다. (주석 14)


국치를 전후하여 진보적 지식인그룹이 대종교에 참여하면서 교세가 크게 확장된 것은, 나철의 '국망도존' 즉 "나라는 망했어도 정신은 존재한다"는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정신'은 멀리 국조(國祖)인 단군에 이어지고 '배달족'이라는 동포의식으로 확산시켜 국권을 회복하자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시기 대종교는 신흥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민족적 정체성을 찾는 이념적ㆍ역사적 구심체가 되었다. 대종교 계열 민족사학자들의 '범동이주의'는 때마침 일제가 밀어붙이고 있는 이른바 '대동아주의'를 제동하려는 의도가 배어 있었다. 

대종교인의 범동이주의는 현실적으로 조선인의 주도하에 만주족(여진족)을 포섭하여 만주지방을 탈환하고, 그곳에 대조선국을 세우려는 실천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일본이 대동아주의(大東亞主義)를 내걸면서 대륙진출을 추구하던 정책과 맞서 만주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와도 관련이 있었다. 

특히 대종교인들이 1910년 국치 이후로 만주에 본부를 두고 포교활동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발해사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 옛날 소수의 고구려유민이 다수의 말갈족을 지배하면서 발해국가를 운영해 갔던 그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염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석 15)


주석
13> 한영우, 「민족사학의 성립과 전개」, 『국사관논총』제3집, 262쪽, 국사편찬위원회, 1989.
14> 앞의 책, 264쪽.
15> 앞의 책, 265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태그:#나철 , #나철평전, #홍암 , #홍암나철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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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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