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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87년 취임사를 하고 있는 모습.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87년 취임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삼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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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지난 1987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수장으로 올라설 당시 취임사 속에 포함돼 있던 문구다.

10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던 당시만 해도 이 회장의 말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자 설익은 포부에 불과했다. 25일 오전 <뉴욕타임스>의 이 회장 부고기사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은 "저렴한 상점에서 팔리는 값싼 텔레비전이나 믿을 수 없는 전자레인지를 파는 회사"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33년 뒤 그의 다짐은 현실이 됐다. 현재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 컴퓨터 칩 등 분야에서 세계 초일류기업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매출 역시 지난 2018년 기준 386조 원을 넘기며, 30년 새 덩치를 396배 키웠다.

현실이 된 그의 약속

"언제까지 그들(미국·일본)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삼성그룹 회장 취임 전이었던 지난 1974년. 동양방송 이사로 활동했던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를 개발하겠다면서 갑작스레 파산을 앞두고 있던 한국 반도체를 인수했다.

당시 이 결정을 지지한 이들은 드물었다. 대다수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기술 선진국들이 이미 반도체 분야에서 훌쩍 앞서고 있다며 반도체 개발을 반대했다. 심지어 당시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한국 반도체 인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 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 2004년 반도체 30년 기념식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결국 한국 반도체를 인수한 지 약 10년이 흐른 1986년,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어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해 기술 주도권을 확보했으며 메모리 강국 일본을 추월해 결국 반도체 업계 세계 1위 기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신경영 선언 어떻게 나왔나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의 모습.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의 모습.
ⓒ 삼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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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중순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해서 작년 말부터 하루에 3시간에서 5시간 밖에 잠이 안 왔습니다." - 1993년 오사카 회의

그렇게 삼성이 세계적으로 환호를 받고 있을 무렵에도 이 회장의 머릿속은 시름으로 가득차 있었다. 언제, 어떤 위기가 닥쳐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993년 이 회장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제품 품질보다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했던 당시, 생산라인에서 불량인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사내 방송으로 보도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해당 영상은 이 회장에게도 전달됐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잘 알려진 이른 바 '신경영 선언'을 내놨다.

"휴대폰 품질에 신경을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비싼 휴대폰, 고장나면 누가 사겠습니까?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

이 회장은 휴대전화가 지배하는 세상 또한 일찍 예견했다. 삼성은 신경영 선언 이후 휴대전화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휴대전화 상표인 애니콜로 51.5%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995년 국내 휴대전화 업계 정상에 올라섰다. 전 세계 휴대전화 업계 1위였던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지 못했던 나라는 당시 한국뿐이었다. 

"학력 위주에서 실력 위주로"
 
 2008년 삼성그룹 경영쇄신안 발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008년 삼성그룹 경영쇄신안 발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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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장과 관계없이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주고 입사 후 승진, 승격에도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삼성의 입사 기준은 학력이 아니고 실력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또 하나의 중대 발표를 했다. 낮은 학력이나 성별에 따른 인사 차별을 없애고 '열린 인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때부터 삼성은 대졸 공채 대신 3급 신입사원 입사 시험을 실시했다. 시험에 합격할 실력만 있다면 대학교 졸업장은 의미가 없었고 당시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여성 입사 차별도 이무렵 줄어들었다.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고 있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다. 이는 실로 인적 자원의 국가적 낭비라고 아니 할 수 없다."

2000년대에 들어 삼성은 더 크게 매출 규모를 늘려갔지만, 이건희 회장은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병상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고 6년 후인 2020년 10월 25일 눈을 감았다.

그의 어록 마지막 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을까. 이 회장이 쓰러지기 불과 몇 달 전이었던 2014년 1월 신년사에서 나온 이야기다.
 
 2014년 1월 2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장의 이건희 회장.
 2014년 1월 2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장의 이건희 회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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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립시다.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을 떨쳐 냅시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합니다.

남보다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보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냅시다. 핵심 사업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산업과 기술의 융합화·복합화에 눈을 돌려 신사업을 개척해야 합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주역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껏 도전하기 바랍니다. 지난 20년간 양에서 질로 대전환을 이루었듯이 이제부터는 질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 사업의 품격과 가치를 높여 나갑시다. 우리의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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