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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다. 동영상과 달리 박제된 그 순간은 많은 의미를 내뿜고 있다. 몇 달 전부터 멀리 영국 끝자리 발(發)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이 누리소통망(SNS)에 퍼지며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1170년 영국군이 북아일랜드 얼스터(Ulster) 지방을 침략하며 시작된 북아일랜드분쟁은, 750여 년이 지난 1921년 아일랜드가 영국과 조약에 서명하며 끝이 났고, 남아일랜드에 영국을 지지한 통일당 정부가 세워진다. 북아일랜드 내 통일당원들은 영국을 지지했으나, 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은 독립을 원했다. 그래서, 일부 공화당원은 조약을 부정하고, 1923년까지 북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벌인다.  

결국 통일당원(개신교)과 공화당원(가톨릭)의 종교와 정치적 감정이 쌓여 1969년에 다시 충돌이 시작됐다. 수 세기간, 개신교인들에게 차별과 억압을 받던 가톨릭교인들은 IRA를 주축으로 폭탄 테러, 게릴라전 등으로 영국에 격렬히 저항했다. 30년간 이어진 종교적, 정치적 격렬한 유혈 충돌인 북아일랜드 분쟁(The Troubles)은 3,7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972년 1월 31일,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이 터졌다. 북아일랜드 데리(Derry) 시(市) 주민들이 시민권을 주장하고, 영국의 불법 구금과 IRA의 무력 저항에 반대하는 평화행진을 벌인다. 그런데, 영국 공수부대의 무차별 총격으로 노인과 부녀자를 포함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고요하고 평화롭던 도시는 순식간에 피로 물들고 유족들의 눈물바다로 변한다.

아직도 데리 참상이 남아있던, 1973년 1월은 영국과 아일랜드가 유럽경제공동체(EEC)에 동시 가입한 중요한 달이었다. 일간지 아이리쉬 프레스(Irish Press) 사진기자 콜맨 도일(Colman Doyle) 씨는 IRA 임시정부 사령관과 같이 긴장감이 돌던 벨파스트 내 IRA 관할구역의 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바라보니, 치마와 가죽 재킷을 입은 한 여성이 총을 들고 건물 모서리에 몸을 숨기고 있다. 곧 반사적으로 그녀가 사라지가 전, 그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IRA 대원은 비정규전 부대라 항상 평범한하게 옷을 입는다. 도처에 깔린 영국군과 첩자들의 눈을 피해 총을 쏘거나 폭탄을 던지고 잽싸게 사라진다."

더블린 소재 아이리쉬 프레스는 도일 씨가 찍은 '여자가 총을 든 사진'이 부적절하다며 기사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후 사진 속의 여전사는 북아일랜드 주민들 사이에 벽화, 그림책 등에서 유명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① 벨파스트 시 앤더슨스타운(Andersonstown) 벽화. ② 70년대 당시 손으로 그린 영어 그림책, ‘A는 그들에게 다 토해내는 아말라이트 소총’. ③ 남자를 검문하는 IRA 여성 대원들 ‘74년 2월 24일 자 리퍼브리칸 뉴스. ④ IRA 여성 뒤에 서 있는 또 다른 여성 대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① 벨파스트 시 앤더슨스타운(Andersonstown) 벽화. ② 70년대 당시 손으로 그린 영어 그림책, ‘A는 그들에게 다 토해내는 아말라이트 소총’. ③ 남자를 검문하는 IRA 여성 대원들 ‘74년 2월 24일 자 리퍼브리칸 뉴스. ④ IRA 여성 뒤에 서 있는 또 다른 여성 대원.
ⓒ John O Neill/Litter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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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출판된 그의 사진집 '큰 변화: 아일랜드의 사진 50(All Changed: 50 of Photographing  Ireland)' 81쪽에 "서벨파스트에서 아말라이트 소총(AR-18)을 들고 근무 중인 IRA 여성 전사"로 소개했다.

이 여전사 사진은 1974년도 북아일랜드 공화국 달력, 벨파스트 주간지 리퍼브리칸 뉴스(Republican News) 기사, 그리고,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Raf Simons)의 책 '제4의 성' 등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가죽 재킷에 물방울무늬 짧은 치마를 입은 긴 생머리로 얼굴을 가린 아가씨가 건물 모서리에 몸을 숨기고 소총을 겨누고 있는' 그 사진이 47년 만에 새롭게 관심받고 있다.
 
가죽 재킷에 짧은 치마를 입은 긴 생머리 아가씨가 건물 모서리에 몸을 숨기고 소총을 겨누고 있는 사진과 설명
 가죽 재킷에 짧은 치마를 입은 긴 생머리 아가씨가 건물 모서리에 몸을 숨기고 소총을 겨누고 있는 사진과 설명
ⓒ Colman Do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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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는 설명이 붙어 있다. "1972년 아일랜드에서 영국군과 교전으로 부상한 약혼자가 안전한 곳까지 차량으로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한 여성이 끝까지 싸우다 죽는다. 영국군 지휘관은 전사자가 여성인 걸 알자, 아일랜드인들이 그녀를 거두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라고 병사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우리를 보호 안 하는 여왕을 우리는 보호하고, 이 여인은 그녀의 약혼자와 땅을 보호한다.'고 뇌까렸다…"  

그러나 역사학자들과 당시 IRA 대원들은 그 사진 속 여주인공이 IRA 대원은 맞지만, 그 이야기는 훨씬 후에 흥미를 끌려고 누군가가 지어낸 허구라고 주장한다.

그러자 설정 논란이 뒤따랐다. 도일이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총을 든 여성 뒤로 또 다른 여성이 서 있거나, 세 명의 여성 전사가 한 남자를 수색하는 다른 사진들이 돌았다. 물방울무늬 치마 여전사와 짧은 치마에 긴 부츠를 신은 긴 곱슬머리 여성 대원이 겹친다. 벽에 낙서처럼 휘갈긴 'BRITS OUT(영국인은 나가라)'도 급조된 거 같고, 건물 벽 디자인 등 모두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서 찍은 것 같다.

1970년대 활약했던 한 IRA 여성 전사는 "만약, 실제 작전 상황에 낯선 이가 우리를 사진 찍으려 했다면 주변의 우리 대원들이 못 찍게 막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도일 씨는 "나는 IRA 사령관으로부터 대원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도일 씨는 50년 넘게 아이리쉬 프레스(Irish Press), 파리 마치(Paris Match) 등에서 일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 사진기자다. 현재 80세인 그는 아일랜드 국영방송사(RTÉ)와 인터뷰에서, 정확히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분명한 건 '설정'된 사진이 아니라며 "그녀를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사진은 분쟁 기간 공화국 투쟁의 상징이 되어 IRA 홍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긴 생머리, 짧은 치마, 총은 북아일랜드 공화국을 위해 투쟁하는 젊은 여성의 강렬한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고, 전 세계적으로 IRA의 애국심에 큰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다. IRA가 선전전에서는 승리한 것이다. 
 
럽 크로스(Rob Cross ) 씨가 흑백사진을 컬러사진으로 복원했다. 
아일랜드인인 그는 건축과 디지털 디자인전문가로 틈틈이 아일랜드의 역사적인 사진 자료를 복원하고 있다.  [Coleman Doyle/National Library of Ireland]
 럽 크로스(Rob Cross ) 씨가 흑백사진을 컬러사진으로 복원했다. 아일랜드인인 그는 건축과 디지털 디자인전문가로 틈틈이 아일랜드의 역사적인 사진 자료를 복원하고 있다. [Coleman Doyle/National Library of Ireland]
ⓒ Coleman Do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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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수소문해 찾은 사진 속 물방울무늬 짧은 치마 여성은 현재 70대로 벨파스트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지인을 통해 오래전 일이라며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1973년 당시 현장에 있던 몇 사람만이 '설정'인지 아닌지 진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태그:#조마초, #아일랜드, #MACHO CHO, #마초의 잡설 , #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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