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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는 8월 14일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 화단에 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의 생가터 표지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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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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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는 8월 14일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 화단에 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의 생가터 표지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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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며 일본영사관 등을 습격해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리웠던 독립운동가 김명시(金命時, 1907~1949) 장군의 생가 터에 표지판이 세워졌다.

경남 창원시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인 14일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 옆 화단에 표지판을 세웠다.

생가터 표지판은 2019년 10월 10일 열린사회희망연대가 나무판으로 제적해 세워 놓았다. 당시 표지판에는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집터(1907~1949). 항일독립운동기간 : 1925~1945"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 7월에는 트럭이 후진하다 이 표지판을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창원시는 표지판을 다시 제작해 설치했다. 

이번에 세운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

"김명시 장군 생가터.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린 김명시는 중국대륙에서 대일항전에 참전해 총을 들고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이다. 어머니 김인석, 오빠 김형선, 동생 김형윤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마산공립보통학교(성호초등)를 졸업하고 1925년, 18세에 모스크바 유학을 떠났다. 25세 때 중국에서 국내로 잠입하여 노동운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해방직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활동하다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극렬한 이념갈등으로 인하여 1949년 10월 부평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

마산공립보통학교를 나온 김명시 장군은 조선의용군으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리웠고, 1925년 오빠(김형선)가 가입해 있던 고려공산청년회에 들어가, 중국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다.

김명시 장군은 해방 후 좌익계열의 조선부녀총동맹 지도부로 활동했고, 남한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10월 부평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망했다. 그의 오빠(김형선, 金炯善, 1904~1950), 남동생(김형윤, 金炯潤, 1910~?)이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2019년 1월 김명시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정부에 신청했지만, 국가보훈처는 11월 "사망 경위 등 광복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 등의 이유를 들어 탈락시켰다. 김명시 장군과 오빠, 남동생도 아직 정부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서훈 여부와 관계없이 김명시 장군은 지역의 독립운동에서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창원시가 공식적으로 표지석을 세운 것에 의미가 있고 당연히 세우는 게 맞다"고 했다.
  
 창원시는 8월 14일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 화단에 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의 생가터 표지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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