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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FM에서 진행하는 마을 라디오 교실
▲ 구로FM 마을라디오교실 구로FM에서 진행하는 마을 라디오 교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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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라디오 교실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수강했다. 주민이 직접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팟캐스트를 통해 송출하는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이었다.

서울의 경우, 24개 구에서 이런 마을미디어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단다. 서울 밖에서도 마을 라디오는 지역을 알리고 진실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주민 자치의 대안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팟캐스트는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튀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참여하고 나니 나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전문 방송인은 아니지만 날 것 그대로의 아마추어적인 순수한 열정이 돋보였다.

막연하게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이런 기회를 만날 수 있있었다. 큰 행운이었다. 획일화된 목소리가 아닌 다양한 생각과 새로운 관점을 알리기 위해선 결과적으로 '나'를 송출해야 했다.

시작부터 어려웠다. 방송 주제를 선정해야 했다. 첫 단계부터 벽이 느껴졌다. 재기 발랄하고 생각이 톡톡 튀는 사람이라면 주제를 한정 짓지 않고, 자신의 삶과 세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소수의 권리에 대해, 다양성에 대해, 사회의 책임과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속 시원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서부터 벌써 막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에 대해서는 조금 쉬웠다. 글을 조금씩 쓰고 있고, 책을 읽고 그것을 정리하고 있고, 간간이 기사도 썼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쓴 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것도 하고 있고, 책을 선정해서 자기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도 가끔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뭘 하고 싶은데?' 센터의 활동가 선생님은 그러한 일상의 지점 어딘가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며 그것을 찾아 범위를 축소하는 것을 권했다. 듣는 대상을 특정하고 나니 내 생각이 닿는 곳은 결국 책밖에 없었다. 사실 제일 만만하게 보지만 책도 쉽지 않은 주제다. 그래도 일단은 책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무작정 오프닝과 본 이야기를 쓰고 마무리 멘트까지 얼기설기 대본을 완성했다.

오글거리는 입말, 툭툭 던지는 스타일의 평소 목소리를 공손하게 바꾸고 최대한 성의를 다해 끝음까지 분명하게 말했다. 늘 듣던 라디오 방송에서 익숙하게 느껴지던 어느 정도의 '꾸밈'이 내가 쓴 대본에서도 느껴졌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색한 줄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는 핑계를 찾았다. 불특정 다수가 들을 수도 있는 방송이었다. 평소의 습관대로 말끝도 흐리고, 툭 던지다 말고, 상대가 못 들으면 그만두고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당위를 부여하기도 했다.

라디오 교실을 수강하던 당시에 읽고 있던 책을 소개하기로 했다. 평소에는 고전 문학 위주의 읽기를 했다. 편식하듯 그렇게 읽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여러 사람들과 독서토론을 진행하며 느끼게 되었다. 그 후로 자기 개발서나 심리학과 관련된 것, 경제학 책이나 사회과학서도 조금씩 읽어왔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환경 관련 책이었다. 제목에 끌려서 선택한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권유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팟캐스트를 통해 소개하기에 너무 무겁지 않고 가벼운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었다.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감동과 적당한 깊이의 환경에 대한 메시지면 족했다. 거기에 이국의 문화와 관련된 내용도 적당히 소개할 생각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방송에 나갈 내용은 '적당히' 만들어진 것 같았다. 책은 저마다의 깊이가 있다는 것을, 잠시 생각하지 못했다. 묵직한 주제와 깊이 있는 울림, 심각한 주제의식까지. 중량급 이상인 책을 다루면서 라이트급도 안 되게 방송 대본을 쓰고야 말았다.

대본을 쓰고 종이로 출력해서 소리 내어 읽으며 시간을 재 보았다. 어느 지점에서 어떤 음악이 몇 초간 나올지 생각하고 입으로 카운트한 후 다시 대사를 이어갔다. 말과 글이 안 맞아 버벅거리는 지점에서는 말을 바꾸고, 앞의 생각과 뒤의 진행이 안 맞는 경우는 순서도 바꿨다. 그렇게 몇 차례 연습했고 드디어 녹음을 마쳤다.

센터의 선생님들은 모두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지만 부끄러움은 나만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기로 했다. 마을 미디어에 직접 참여하며 배운 것들, 느낀 것들, 방송으로 담으며 생각했던 것들이 많았다. 책의 무게감과 주제의식, 그것을 가지고 내가 해야 할 역할까지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더불어 내 목소리로 나가는 말의 책임까지.

뒤늦게 쓰는 삶을 꿈꾸고 있다. 아직 일관된 주제도 생각하지 못했고 어디에 찾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쓴다. 그렇지만 무작정 쓰려고 해서 써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 경우엔 다른 이의 글을 열심히 읽어야 했고, 좋은 글을 필사도 해야 했고, 읽고 쓴 것에 대해 생각도 깊은 생각도, 관련 공부도 해야 했다. 가끔 글이 써지지 않아 멍하니 손을 놓고 지낼 때면 딸은 말한다.

"엄마, 필사가 필요한 지점이야!"

아마도 딸은 엄마의 미리 속 인생 경험은 책만큼 충분히 들어 있다고 여겨주는 것 같았다. 술술 문장이 써지지 않는 것만을 염려해 하는 말이었다. 나의 글쓰기는 다른 이의 문장을 머리로 읽고 손으로 익힌 결과물이다. 필사는 머리로 떠오른 생각을 손으로 이렇게 써 내려가면 된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이제 다른 과제가 생긴 것 같다. 방송을 잘하는 이의 방송 구성과 내용을 카피해 보는 것이다. 쓰기 위해 문장을 필사하는 것처럼 익혀야 할 것 같다. 하고자 하는 말들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듣고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의 주제의식, 목소리 톤, 내용과 앞뒤 선후의 인과관계까지 배워 내 것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내 목소리가 말하는 것이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라디오 방송은 오롯이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라서 좋다. 평상시 하는 말과는 다르게 다듬었지만 목소리의 진심은 전달될 것이라 믿는다. 미디어의 송출자로 미디어의 무게도 잘 감당하고 싶다. 들을 만한, 듣고 싶은 방송을 하고 싶다. 아직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결정된 것은 없지만, 내 목소리의 책임은 다하고 싶다.

태그:#마을라디오교실, #구로FM, #팟캐스트, #목소리의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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