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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는 수험생들
 2019년 6월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는 수험생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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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죽을 맛'이다. 코로나19로 인해 1학기 분량의 시험을 불과 2달에 걸쳐 모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역대급' 시험 범위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나도 체감 중이다. 간혹 시험 범위가 많아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학생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달래가면서 계획했던 진도를 끝내면 다행이지만,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세상살이다. 결국 보충 수업이라는 처방까지 내려야 간신히 원하는 진도를 끝낸다. 그제야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아마 대다수가 그렇지만 시험이 끝나면 한바탕 보이지 않는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아이는 왜 점수가 안 오를까요

보이지 않는 전쟁을 마친 후 시험 결과가 나오면 학원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또다시 치른다. 바로 학부모와의 상담이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은 아니어서 다행히 상담이 까다로운 부모는 없지만, 가장 진땀을 빼는 질문은 '우리 아이는 왜 점수가 안 오를까요'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학생마다 천차만별이어서 한 가지 답이 없다. 자신의 실력을 발휘 못 하는 경우, 기초가 부족해서 못 풀어내는 경우, 집중력 약해서 시험을 망치는 경우 등 다양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학부모들이 가장 불쾌해하는 답이 있다. 내심 맞아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답. 바로 '문해력'이다. 
 
사실 현장에서 학생들을 상대할 때 원장 선생님이나 강사님들이 가장 어려운 것이 학생들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 할 때'다. 어른들의 입장에선 아이들이 글자는 잘 읽으니까 어리둥절할 수 있으나, 학생들이 푼 문제를 채점하고 대화를 나눠 보면 문제 속 숨어 있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손도 못 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틀린 문제의 풀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질문하는 학생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많이 틀리는 예상 문제 유형을 하나 소개 해 보겠다. 실제 문제를 약간 변형해서 작성했음을 참고하자. 여러 번 검토하였으나 매끄럽지 않은 해석 등 발생은 필자의 잘못임을 미리 밝히겠다.
 
1. 다음 글을 읽고, 아래의 질문에 답할 수 없는 것은?
① Where does the phrase "rain cats and dogs" come from?
   ("rain cats and dogs"라는 표현은 어디서 유래를 했나요?)
② When did people start to use "rain cats and dogs"?
   (언제 사람들이 "rain cats and dogs"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을 했나요?)
③ Why were the people expressing the "rain cats and dogs"?
   (왜 사람들이 "rain cats and dogs"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④ How was the expression "rain cats and dogs" used in America?
   (어떻게 미국에서 "rain cats and dogs"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을까요?)
⑤ What happened to the person who use the "rain cats and dogs"?
   ("rain cats and dogs"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어떤가? 이 문제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틀리는 유형의 문제다. 물론 성적이 좋은 상위권 학생은 이 문제를 별문제 없이 풀어낸다. 그러나 실제 학생들이 풀어낸 문제를 채점해 통계를 내 보면 10명 중 6~7명 정도는 이 문제에 대한 오답을 적는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볼 때 이 문제는 새로운 유형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렇게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데 요구하는 '문해력'은 '다음 중 본문과 옳은 내용을 고르시오' 또는 '본문에 없는 틀린 내용을 고르시오'로 바꿔서 볼 수 있는가, 아닌가다. 결국 과거에 자주 보았던 '윗글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을 고르시오' 또는 '윗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를 변형시킨 것이다.
 
쉽게 풀 수 없도록 낸 문제(학원가에서 말하는 '꼬아서 낸 문제')는 어른들도 어렵기 때문에 누구나 틀린다. 하지만 학생들의 성적을 향상시키는 것이 갈수록 어려운 이유는 완곡한 말 또는 문제의 숨은 의도를 우리 말이나 영어를 읽고 찾아내지 못 하는 현상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고등학생에게 예상보다 자주 나타난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단순 암기를 통해 머릿속의 암기를 '뽑아내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많은 반면, 고등학교 문제는 문제 속에 숨은 의도를 파악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배점이 높은 문항으로 많이 배치하기에, 그 문제의 결과에 따라 성적이 갈린다.

실례로 필자가 담당했던 한 학생의 경우 '문해력'이 떨어져서 문제 하나하나 질문했던 경우가 있었다.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해 '질문하지 말고 스스로 문제를 모두 풀고 난 후 채점한 뒤 질문'하라고 처방했다. 자신 스스로가 독해 후 깨달아 보는 과정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문으로 쓰인 문제는 직접 해석을 적어보라고 했다. 실제 그 과정에서 학생이 문제를 이해했는지, 못 했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녀가 글자'만' 읽고 있지 않나요?
 
학원에서는 시험 점수도 중요하지만 '우리 학원은 자녀를 위해 공부를 많이 시켰습니다'라는 증거(?)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학생에게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시키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강의 또는 설명이 끝나면 어떻게든 학생이 교재에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학교 시험 대비를 위한 실습이니까.

그런데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기 점점 버거워하는 이유는 문제를 읽었는데도 '무슨 말인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손을 못 대거나 엉뚱한 답을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해', 즉, 우리 말에 대한 독해로 이어지지 못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보통 영어 독해가 중요하다는 말을 학생들에게 자주 한다. 그런데 한글에 대한 '독해'는 등한시한다. 그래서 수업 중 필자가 자주 학생들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그 질문은 사실 별것 아니다. '이 문제는 뭐를 물어보는 것 같으냐'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보면 문제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성적을 올리기 위해 많은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가장 쉬운 대책이며 중요한 대책이다. 하지만 문제를 제대로 이해 했는지 아닌지 한 번만 학생들에게 물어보거나 확인만 해도 제대로 문제를 이해하고 풀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만약 학생이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학생에게 틀린 문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물어보거나 써 보게 하는 것도 한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태그:##문해력, ##때로는양치기가답이아니다, ##문제풀이가약이아니다, ##문맹과는거리가멀다, ##글자만읽고있는당신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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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KID.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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