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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를 통해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시켰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했던 강경한 말들은 잠시 뒤로 밀리게 됐다. 이에 따라 북한이 공언해온 대남전단(삐라) 살포 계획 역시 조금 더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최근 <조선중앙통신>은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과 "다 잡수셨네... 북남합의서까지"라는 문구가 인쇄된 대남전단을 공개했다. 문재인 정권이 최근 2년간의 남북합의들을 위반했음을 지적하는 전단이었다. 통신은 그 삐라 위에 담배꽁초가 버려진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의 23일 조치를 볼 때, 이런 대남 삐라가 남한 상공에 출현할지 여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알 수 있게 됐다.

북한이 의도한 것
 
북한이 대규모 대남삐라(전단) 살포를 위한 준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2020.6.20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 북한 "대규모 대남삐라 살포 준비사업 추진" 북한이 대규모 대남삐라(전단) 살포를 위한 준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2020.6.20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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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정보가 자유롭게 넘쳐 흐르는 현대 세계에서는 선전전단을 통한 심리전의 효과가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이 방식에 기대를 걸 만한 이유들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홍수처럼 흘러다닌다고 하지만, 남한 인터넷에서는 북한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남한 사람들의 북한 정보가 극히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남한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를 대남전단에 담는 방법으로 약간이나마 남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로 남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미국제 무기 수입 등을 통해 합의의 의미를 어느 정도 퇴색시킨 사실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입장에서는 전단 살포를 통한 도발행위가 명분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다.

게다가 현 단계의 전단 살포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기반한 문재인 정권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삐라가 남한 사람들의 수중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살포 그 자체만으로도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치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대남전단 살포를 유용한 수단으로 간주할 수 있다.

선전전단은 재질은 '종이'지만 실상은 '총알'이나 마찬가지다. 상대방 민중의 심리적 무장을 해제하고 이들과 상대방 정부의 유대관계를 해체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삐라를 살포하는 쪽은 이것이 상대방 민중의 손에 들어가도록 하는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이 사용된 방법 중 하나는, 삐라 한쪽 면을 지폐 모양으로 인쇄해 발견자가 일단 집어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2000년에 이재윤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쓴 <특수작전의 심리전 이해>는 이 방식이 가져올 효과에 관해 "50%의 확률로, 화폐가 인쇄된 쪽이 보이도록 지면에 뿌려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러한 전단들은 개개인이 그 전단이 진짜 돈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 꼭 습득해서 볼 것"이라고 짚는다. 화폐로 보일 확률이 50%일 수밖에 없는 것은, 삐라 양면을 모두 다 화폐로 인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삐라가 아니라 돈이 되기 때문이다.

돈이라고 집었는데 삐라인 것을 알고 실망하게 될 사람들을 배려하는 방법도 있었다. 절반만 화폐 모양인 삐라에 위조지폐를 끼워넣는 것이다. 위 책은 "이러한 접근 방법은 전단을 반군들이 습득할 가능성을 높여주며, 취약한 적의 경제에 피해를 주는 역할도 한다"라고 설명한다.

삐라 제작자가 다음으로 신경 쓸 부분은 당연히 선전문구의 작성이다.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휴전 때까지 북한이 뿌린 전단에는 남한 민중의 반미투쟁을 지지하거나 북한의 한국전쟁 수행을 정당화하는 내용들이 주로 담겼다.

삐라 보고 월북... 한때는 효과 있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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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뒤부터 1960년까지는 남한 대중의 반이승만 투쟁과 더불어 반미투쟁을 촉구하는 전단이 주로 인쇄됐다. 월간 <북한> 2016년 7월호에 실린 김윤영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의 논문 '북한 대남 심리전 변천 양상과 전망'은 이렇게 설명한다.
 
"1954~1960년 시기(위장평화공세 노선)의 경우는 6.25의 원인을 한·미 당국으로 책임 전가시켜 반미·반정부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남북총선거, 외국군 철수 등의 위장평화공세를 통해 '남한 내 혁명적 대중기반 구축'을 선전·선동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1960년대부터는 북한 삐라에 김일성 북한 주석의 업적과 더불어 경제발전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내용들이 많이 들어갔다. 전후 복구가 끝나고 어느 정도의 경제회복을 이뤘다는 자신감을 그렇게 표출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1970년대에도 이어졌다. 이 시기에 발견된 '월북 장병들에게'라는 전단에는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대표를 무색케 할 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 월북 장병에게 지급되는 혜택을 소개한 이 삐라에는 "공화국 공민의 권리와 자유 보장, 직업·직장 알선, 고급주택 무상 배정, 생활보장금 1억1100만 원~3억330만원(남한 돈으로), 상금 185억 원까지(남한 돈으로)"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런 전단을 읽고 실제로 월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북에서 삐라를 뿌린 것은 전단 습득자가 남한에 계속 살면서 정부에 불만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도, 그런 의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북한 당국에게 '부담'을 주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까지도 자주 등장한 그런 삐라를 차단할 목적으로, 남한 정부는 불온선전물 혹은 불온삐라를 주워 경찰에 신고하도록 유도했다. 학생들이 삐라를 주워 파출소에 갖고 가면, 공책과 책받침 등을 상품으로 주기도 했다.   

이 같은 대남전단 살포는 세계적인 탈냉전의 결과로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로 인해 공식 중단됐다. 하지만 '공식' 중단이었다. 실질적 중단은 아니었다. 중고등학생들의 삐라 수거를 독려하는 1996년 5월 14일자 서울시교육청 공문을 비판하는 기사가 그해 5월 25일 치 <한겨레> "북 삐라 줍기 봉사활동 찜찜"에 나온 데서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대남전단이 이전보다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남전단 살포는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번 더 중단됐다. 2007년에는 경찰청 훈령인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 규칙'도 폐지됐다. 학생들이 대남전단을 갖고 파출소에 가도 경찰관이 더 이상 아무것도 주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험악해지면서 대남 삐라가 다시 등장했다. 1991년 이후로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간헐적으로 살포됐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부터 눈에 띄게 감소한 선전효과

1990년대 이래의 대남전단 감소는 남북합의서의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이 시기에는 굳이 그런 합의가 없었더라도 삐라 살포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가 있었다. 선전전단이 남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가 이전보다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남한 사람들의 대북 적대감이 1980년대 후반부터 눈에 띄게 감소한 결과였다.

대북 적대감의 감소는 88올림픽 개최와 경제성장으로 자신감이 고양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적 탈냉전이 남한 사람들의 긴장감을 누그러트린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동아일보> <아사히신문>, 미국 여론조사기관 해리스가 공동 수행한 1984년 남한 여론조사와 1988년 남한 여론조사의 차이에서도 증명된다. 두 시기 여론조사의 차이를 비교한 김진환 통일교육원 교수의 2016년 논문 '남한 국민의 대북의식과 통일의식 변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조사 시기는 노태우 정부가 대북 화해와 교류를 천명했지만, 아직 남북 당국 대화는 시작되지 않았을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싫다'는 응답은 1984년 76.5%에서 1988년 59.4%로 뚝 떨어졌다. 반면 '어느 쪽도 아니다'라는 응답은 1984년 12.7%에서 1988년 23.3%로 두 배 가까이 올라갔다." - <현대사 광장> 제6호.
 
남북대화가 활발해지고 독일 통일이 임박한 1990년 6월과 7월의 <동아일보> 및 <아사히신문>의 공동여론조사는 대북 거부감이 훨씬 더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위 논문은 "응답자의 45.5%가 북한이 싫다고 대답했는데 1988년과 비교하면 13.9%포인트 줄어든 수치"라며 "반면, 북한이 좋다는 응답은 11.7%로 늘어났다"고 말한다.

대북 적대감의 급격한 감소는 1995년경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1998년 김대중 정권 출범과 함께 다시 가속화됐다. 남한이 경제적 자신감을 가진 상태에서 이처럼 대북 적대감마저 덜 갖게 됐기 때문에, 대남전단에 대해서도 한결 여유로운 태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는 대남전단의 심리전 효과가 현저히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이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하며 자극적인 언사를 내보내도 남한 사람들이 커다란 관심을 보이지 않은 핵심적 이유는 거기서 찾을 수 있다.

북한만 아직 발끈하는 이유
 
북한 청년들이 탈북자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성토하는 군중 집회를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6일 보도했다. 사진은 이날 평양시 청년공원야외극장에 모인 북한 학생들이 마스크를 쓴 채로 군중 집회를 하는 모습.
 북한 청년들이 탈북자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성토하는 군중 집회를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6일 보도했다. 사진은 이날 평양시 청년공원야외극장에 모인 북한 학생들이 마스크를 쓴 채로 군중 집회를 하는 모습.
ⓒ 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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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북전단을 대하는 북한 사람들의 반응은 남한 쪽과 확연히 구별된다. 최근 북한에서는 대북전단 규탄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고, 분노 섞인 민중의 목소리가 북한 언론에 여과 없이 등장했다.

일례로, 10일 치 <조선중앙통신> 기사 '인간 추물들과 남조선 당국에 대한 로동계급의 보복 열기 고조'는 "천추에 용납 못할 탈북자 쓰레기들의 반공화국 삐라 살포 망동과 이를 묵인·조장한 남조선 당국에 대한 우리 로동계급의 서리발치는 분노와 무자비한 보복 의지는 날이 갈수록 더욱 무섭게 달아오르고 있다"라고 한 뒤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그 일부는 아래와 같다.
 
차능도(황해제철련합기업소 직장장): 사람 값에도 못 가는 인간 쓰레기들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우리의 최고존엄까지 함부로 건드리고 모독했다니 정말 격분을 금할 수 없다.

김철룡(조양탄광 채탄공): 우리를 더욱 더 격분케 하는 것은 골수에 찬 동족대결 흉심을 버리지 못하고 똥개들의 망동을 묵인하고 부추기는 남조선 당국의 가증스러운 행태이다.

정문길(원산청년발전소 노동자): 우리 인민의 신념의 기둥에 먹칠하려 드는 특대형 도발자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력사는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래의 탈냉전이 전 세계적으로 균일하게 확산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탈냉전의 영향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상당히 적게 받은 셈이다. 그런 한국보다도 영향을 적게 받은 나라가 북한이다. 탈냉전이 확산된 뒤 북한의 대외 위기는 오히려 가중됐다. 1993년에 제1차 북미 핵위기가 있었고 2002년에 제2차 핵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과거의 대결적 분위기가 남한에 비해 북한에서 더 많이 잔존할 수밖에 없다. 탈냉전이 일어난 지 30년이나 됐는데도 북한 사회의 대미·대남 적대감은 매우 크게 감소했다고 볼 수 없다. 경제제재를 비롯한 미국의 봉쇄정책이 오히려 강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외부에서 살포되는 삐라에 대한 적대감도 북에서는 여전히 강할 수밖에 없다. 대남전단과 대북전단에 대한 남북의 온도 차이가 확연히 다른 이유는 거기서 찾을 수 있다.

북이 대남전단 살포를 강행한다고 해도, 그것이 남한 민중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뿌려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남과 북은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삐라 재질은 종이이지만 실상은 총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서든지 북에서든지 선전전단이 뿌려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 악화의 원인 중 하나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서 나타났듯이 김정은 정권의 과도한 대응에도 있지만, 또 다른 원인은 문재인 정권의 미온적인 남북협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긴장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히 남북협력을 추진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태그:#대남전단, #대남 삐라, #불온선전물, #불온 삐라, #대북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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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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