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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의 극락강과 장성 황룡강의 두 물줄기가 합수되어 사실상 영산강의 본류를 이루는 곳,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 마곡 마을 노평산(盧平山) 기슭에 광주·전남의 8대 정자중의 한 곳, ‘호가정(浩歌亭)’이 있다
 담양의 극락강과 장성 황룡강의 두 물줄기가 합수되어 사실상 영산강의 본류를 이루는 곳,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 마곡 마을 노평산(盧平山) 기슭에 광주·전남의 8대 정자중의 한 곳, ‘호가정(浩歌亭)’이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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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디를 가나 천지간에 꽃 세상이다. 우리 사는 이 땅에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뚜렷하다는 건 축복이다. 그중에서도 봄이 주는 혜택은 무한하다. 따스한 햇살과 온화한 바람, 촉촉한 봄비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언 땅을 녹이고 나무와 꽃들의 눈을 틔운다.

계절은 순환의 법칙에 따라 어김없이 찬란한 생명의 빛으로 가득 차 있지만,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재앙'이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요즘, 인간 세상의 봄은 아직 멀리 있다.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코로나 블루'라는 새로운 우울증까지 생겨났다.

여러 가지로 답답하고 우울한 세상사, 잠시 접어두고 사람들 붐비지 않는 산천경개 수려한 강가 언덕에 올라 큰소리로 노래라도 부를 수 있다면 가슴속을 짓누르고 있는 응어리가 뻥 뚫릴 것 같다. 그러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있다.
 
 광주와 나주의 경계 광산구 본덕동 호가정으로 가는 길목에는 노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한 유채꽃이 만발했다
 광주와 나주의 경계 광산구 본덕동 호가정으로 가는 길목에는 노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한 유채꽃이 만발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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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소리로 노래 부르는 영산강변의 아름다운 정자

전라남도 담양의 용소골에서 발원한 극락강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 마곡마을에 이르러 장성에서 발원한 황룡강과 한 몸이 된다. 담양과 장성의 두 물줄기가 합수되어 사실상 영산강의 본류를 이루는 곳, 마곡 마을 노평산(盧平山) 기슭에 광주·전남의 8대 정자중의 한 곳, '호가정(浩歌亭)'이 우뚝 서 있다.

호가정은 화순의 물염정, 담양의 식영정, 보길도의 세연정, 곡성의 함허정, 나주의 영모정, 영암 회사정, 장흥의 부춘정과 함께 유서 깊고 풍광이 수려하기로 유명한 남도지방 8개 정자중의 한 곳으로 이름을 올렸다.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된 호가정은 여느 정자와는 달리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사각형 팔작집이다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된 호가정은 여느 정자와는 달리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사각형 팔작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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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긴 언덕의 나지막한 산기슭에서 영산강을 훤히 내려다보며 절묘하게 서있는 호가정은 눈(雪)과 강(江)을 사랑한 조선 중기의 선비, 설강 유사(雪江 柳泗 1502~1571)가 부귀영화의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만년에 지은 정자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서산 유씨, 설강 유사는 조선 중종· 명종 때의 문신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서 태어났다. 1522년(중종 17년) 21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28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3사(司)의 벼슬을 지냈고 무장 현감, 전라 도사, 종성 부사 등 여러 고을의 현감과 부사를 두루 역임했다.
 
 정자 마루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영산강의 풍경
 정자 마루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영산강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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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중종 시대. 설강 유사는 '권신들을 배척하라'는 상소를 여러 번 올렸지만 노회한 대신들로부터 무고를 당한다. '기묘사화' 때는 성균관 유생들의 우상, 조광조를 비롯한 개혁적 성향의 젊은 선비들이 줄줄이 죽임을 당하는 처참한 현실을 목도한다.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이 8개월 만에 승하하고, 명종이 등극 하자 왕보다 위세가 더 셌던 외척들의 다툼으로 '을사사화'가 터졌다. 이때 설강은 같은 서산 유 씨 동족인 좌의정 유관(柳灌)과 이조판서 유인숙(柳仁淑)이 간신들의 중상모략에 의해 사사되자 시대를 한탄하며 벼슬을 던지고 고향마을로 돌아온다. 설강의 나이 54세였다.
 
 호가정 앞을 흐르는 영산강. 멀리 보이는 곳이 광주·전남혁신도시다. 높이 솟은 건물이 한전 본사 건물이다
 호가정 앞을 흐르는 영산강. 멀리 보이는 곳이 광주·전남혁신도시다. 높이 솟은 건물이 한전 본사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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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권신들이 물러나고 조정에서는 설강에게 도승지의 벼슬을 제수했지만 설강은 병을 핑계로 아수라장 같은 정치판으로 다시 나가지 않고 그대로 고향에 남아 영산강변에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호가정(浩歌亭)'이라 붙였다.

"강 언덕 조는 새와 말년 벗을 맺었노라"

고향의 정자에서 설강은 자연과 더불어 시문을 읊조리며 당대의 명사, 이황(李滉), 고봉 기대승(奇大升), 이언적(李彦迪), 오겸(吳謙) 등과 교유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간다. 정자에는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정자의 이름, 호가정은 중국 송나라 때 역학자이자 시인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의 ‘호가지의(浩歌之意)’에서 차용해 지었다
 정자의 이름, 호가정은 중국 송나라 때 역학자이자 시인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의 ‘호가지의(浩歌之意)’에서 차용해 지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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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자 주인, 설강의 호가정기와 원운시가 정자 들보 아래 걸려있다. 내부에는 사위인 서하당 김성원의 차운시, 후손 유보한의 ‘호가정 중수기’, 오겸과 이안눌의 시문을 새긴 편액이 걸려있다
 정자 주인, 설강의 호가정기와 원운시가 정자 들보 아래 걸려있다. 내부에는 사위인 서하당 김성원의 차운시, 후손 유보한의 ‘호가정 중수기’, 오겸과 이안눌의 시문을 새긴 편액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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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이름, 호가정은 중국 송나라 때 역학자이자 시인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의 '호가지의(浩歌之意)'에서 차용해 지었다. 산수 간에 이는 흥취를 읊조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니 '크게 소리 내어 노래하라'란 뜻이다. 고향의 정자에서 설강은 그때의 심정을 '호가 소서 (浩歌小序)'라는 기록으로 남겼으며 후손들은 이를 정자 아래에 비문으로 새겨 놓았다.

"... 고기 잡는 어부와 사공들의 배가 왔다 갔다 하며 노래를 부른다. 이에 명아주 지팡이에 기대어 큰 소리로 한 곡조 노래를 부르노니 물 좋고 산 좋음이여. 푸른 버들 아른거리고 갈대도 무성하도다..."

강나루에서 언덕에서 호가정으로 오르는 긴 돌계단 양옆에는 설강의 시를 비롯해 사위 서하당 김성원의 차운시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호가정을 짓고 나서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시다.
 
 정자를 오르는 돌계단 양옆으로 설강의 시들이 돌 속에 새겨져 있다
 정자를 오르는 돌계단 양옆으로 설강의 시들이 돌 속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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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벼개에 소나무 그림자 아른거리고
바람 치는 난간에 들 빛이 둘러있네
차가운 강물 밝은 달빛 속에
눈빛 같은 작은 배가 온다

​아래는 구강(九江) 있고 위에는 하늘인데
늙은이 일이 없어 풍인만 바라본다
바빴던 지난 일을 어찌 생각하리요
강 언덕 조는 새와 말년 벗을 맺었노라

 
 “돌 벼개에 소나무 그림자 아른거리고 바람 치는 난간에 들 빛이 둘러있네”
 “돌 벼개에 소나무 그림자 아른거리고 바람 치는 난간에 들 빛이 둘러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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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설강은 외롭지 않았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스스로 소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어 큰소리로 노래 부르며 강 언덕 조는 새와 말년 벗을 맺었으니.

54살에 고향에 내려온 설강은 71살이 되도록 고향을 떠나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며 시문과 더불어 자연이 되어 살았다. 설강이 57살 되던 1558년에 지어진 호가정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871년에 다시 지었다.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사위, 서하당 김성원도 장인의 정자에 시 한 편을 헌정했다
 사위, 서하당 김성원도 장인의 정자에 시 한 편을 헌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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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정은 여느 정자와는 달리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사각형 팔작집으로 중앙에 한 칸의 방이 있는 전형적인 남도의 정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자 내부에는 정자 주인 설강의 '호가정기(浩歌亭記)'와 호가정 원운시, 사위인 서하당 김성원의 차운시, 후손 유보한의 '호가정 중수기', 오겸과 이안눌의 시문을 새긴 편액들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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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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