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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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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열겠다는 '한국판 디지털 뉴딜'

4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다섯 번째 비상경제회의는 매우 특별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50명 이하는 물론 10명대 전후로 급격히 축소되면서 5월부터 거리두기를 단계적으로 완화할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재난으로 인한 경제비상대책은 대체로 세 단계, 즉,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방어하면서 고용과 소득을 보존하는 첫 단계 -> 시스템의 부분적 붕괴로 인한 파산과 해고를 실업부조나 채무경감으로 완화하는 단계 -> 그리고 재난이 정점을 지나면서 이후 시스템 복구를 위한 경기부양책의 순서를 밟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코로나19 재난이 어느 정도 수습되어가는 것을 전제로 한 마지막 단계인 경기회복 프로그램 방향이 나왔던 것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바로 얼마 전 4.19혁명 기념사에서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일상과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언급했다. 코로나 이후의 일상과 세상 모두는 그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세간의 여러 전망을 적극적으로 참조하여, 한국이 코로나의 이후의 세상에서 "새로운 세계적 규범과 표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찬 비전을 제시했던 터였다.

그러면 대통령은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코로나 이후 세상을 '새롭게' 열어갈 뉴딜을 제안했을까? 우선 대통령 모두발언 해당 대목을 그대로 옮겨와 보자.

"정부는 한편으로 범국가적 차원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사업을 대담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용의 위기를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극복하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정부는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대규모 국가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단지 일자리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한국판 뉴딜' 기획단을 만들겠다고 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일자리와 연계된 대규모 국책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것이고, 단순히 임시직 일자리를 넘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 전망과 연계시키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규모 국책사업과 여기에 대응하는 대규모 고용,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전망이 연결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대통령 모두발언을 설명하면서 '한국판 뉴딜'(New Deal)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며 주요 내용이 '디지털 뉴딜'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이한 디지털 일자리'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연다고?

그런데 내용을 뜯어볼수록 뭔가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 점이 너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측대로라면 코로나 재난으로 2020년 경제가 –1.2%로 역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에도 겪지 않았고 외환위기 이후 23년 만에 처음 당하는 엄청난 경제 충격이다.

당초 올해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2.4%성장을 목표로 했으니까, 목표대비 무려 3.6퍼센트 포인트의 경제규모 축소다. 사실 국제통화기금 전망치도 너무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꽤 있는 것을 감안하면 더 심각한 경기 추락이 있을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경기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는 어떤 식으로든 불가피하고 수십 년 만에 사상 최대의 프로젝트가 되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더욱이 포스트 코로나 이후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엄청나게 야심찬 포부까지 밝히지 않았나? 방역에서 보인 모범을 바탕으로 자신감있게 경제 회복에서도 "새로운 세계적 규범과 표준"을 세우겠다면, 정말 전례 없는 규모가 기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대규모 국가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홍남기 부총리는 '예시'라면서 '디지털 뉴딜'을 들었다. 디지털 분야는 통상 고용창출 효과가 매우 적다고 알려졌는데, 이 분야가 정말 '고용창출 효과가 큰 대규모 국가사업'일 수 있을까? 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여는 새로운 비전과 희망일 수 있을까? 당장은 전혀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도 암시도 없다.

일단 급한 단기대책으로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것은 비대면 디지털 정부 일자리라면서 공공·공간·작물·도로 등의 데이터 구축이거나, 또는 취약계층을 위한 방역, 산림재해예방, 환경보호 등 옥외일자리들이다. 아니면 민간분야에서 기록물 전산화, 온라인 콘텐츠 기획·관리, 취약계층 IT 교육 등이란다. 무늬만 디지털이지 23년전 외환위기 직후의 정보화 공공근로와 비슷한 수준이다.

만약 이후 기획될 한국판 뉴딜이 질적으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규모만 키워진 디지털 뉴딜이라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최근 긴급재난지원금이나 고용유지 지원책을 보면 단지 기우가 아니다.

패턴이 이렇다. 대통령은 대규모적이고 신속하고 과감하게 하라면서 화려한 수사로 큰 주문을 한다. 그런데 이를 받는 기획재정부는 예산 범위를 확 줄여서 실질적으로 규모도 속도가 훨씬 못미치는 제약을 부과한다. 그러면 고용노동부 등 주무 부처는 기획재정부의 예산제약 범위에서 대체로 기존 사업이나 혁신적일 것도 없는 사업들을 재배열해서 실행계획을 짜는 것이다. 한국판 뉴딜은 이 패턴에서 예외가 될 수 있을까?

 
그린뉴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여는 한국판 뉴딜의 모범 답안

많은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최근 신종 바이러스 감염과 확산 사태가 환경파괴 등으로 인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인간과 야생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발발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해빙이 심해지면 그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따라서 넓게 보면 이번 코로나19 재난도 조만간 닥쳐올 기후위기의 예고편일 수 있다. 당연히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여는 경기회복 프로젝트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동시에 막기 위해 세계적인 프로젝트로 기획된 '그린뉴딜(Green New Deal)'이어야 한다.

그린뉴딜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이전부터 세계 여러 곳에서 2020년대를 여는 새로운 국가정책과 지방정부정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은 대선 후보들이 앞 다퉈 그린뉴딜을 핵심공약으로 채택했었고, 유럽 집행위원회는 2019년 말 유럽 '그린딜'이라는 포괄적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고 실행에 들어갔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도시와 지방정부들도 각자 자신들의 그린뉴딜 정책을 속속 채택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정의당과 녹색당이 공식적으로 그린뉴딜을 핵심 정책으로 채택하고 내용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린뉴딜은 기후위기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황, 비유하자면 지니를 램프안에 다시 가둘 방법이 없어지기 전에 국가적 자원을 동원하여 결정적인 산업전환과 삶의 전환을 이루자는 기획이다. 그래서 1930년대 미국 루스벨트 뉴딜을 뛰어넘는 대개혁을 국가적 수준에 추진하자는 취지로 '그린'에 '뉴딜'을 합성한 것이다. 또한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에서는 2세기 전 자신들을 대영제국으로 올려놓은 산업혁명을 상기시키면서 녹색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처럼 현재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그린뉴딜은 규모와 집중성 측면에서 볼 때, 2020년대 10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전사회적 자원을 집중해서 수행해야 할 대개혁 플랜으로 기획된다. 구체적으로 기후과학자들이 절박하게 경고하는 수준에 맞추어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려면 엄청난 규모와 속도(긴급성)으로 변화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2030년까지 무조건 탄소 배출 절반수준의 감축(그리고 2050년 탄소 배출 순 제로)을 제1목표로 한다.

이점이 종래의 '지속 가능한 성장'(또는 2008년 버전의 그린뉴딜)과 결정적인 차이다. 기존에는 온난화를 실효성있게 억제할 수준으로 가까운 시간대의 탄소 배출감축 목표를 명시하기 보다는 대체로 환경 친화적인 유형의 정책수단들을 온건하게 선택하여 배열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탄소 배출 목표와 기간이 정확히 특정되어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수단도 명확히 체계화되어 있다.

즉 10년 안에 탄소배출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화석연료를 과감하게 버리고 재생에너지로의 대대적 전환, 기존 내연기관 운송수단을 전기 또는 공유 기반의 교통체계로 개편, 주요 건물들의 에너지 효율화, 농업과 축산에서의 탄소배출 감축 등의 실행계획과 이를 뒷받침할 예산배정이 명시되어야 한다.

민주당 그린뉴딜안은 코로나 이후를 보장하지 못한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대봉쇄가 안겨준 거대한 경제충격에 대응하여, 무너진 경제를 회복시키면서도 기후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로서 '그린뉴딜'에 비견할 다른 프로젝트가 있을 수 있을까? 홍남기 부총리가 예시한 디지털 뉴딜은 그린뉴딜 추진과정에서 수반되는 스마트 그리드라든지 도시와 빌딩의 효율적 에너지 관리 시스템 구축 등에 연관된 하위 프로젝트로 수준에서 검토하면 되지 그 자체가 그린뉴딜을 대체할 대안일 수는 없다.

이처럼 그린뉴딜은 목표와 방향, 핵심 정책 수단 등은 이미 윤곽이 모두 나와 있고 정의당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몇 가지 틀과 안을 이미 제시한 바도 있다. 수백조 원이 투입되어야 할 그린뉴딜은 그 규모나 범위에 비추어볼 때 코로나19가 파괴한 경제를 복구할 정도의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린뉴딜이 바꿀 세상은 확실하게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 '미래의 표준'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다만 민주당이 선거기간에 제시했던 한국형 그린뉴딜은 이름만 그린뉴딜일 뿐 앞서 설명한 원래의 그린뉴딜로서의 특징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단적으로 민주당의 한국형 그린뉴딜은 앞으로 10년 안에 탄소배출 절반 감축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부재하다.

2015년 파리 기후협약을 이끌어낸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는 이렇게 확인한다. "2030년까지 글로벌 탄소배출을 절반으로 줄이는 목표는 우리가 달성해야 할 절대적인 최소한이다. 왜냐하면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절반으로 줄이지 못하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순제로 목표는 거의 달성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당의 한국형 그린뉴딜은 전국가적 프로젝트로서 추진할 재원조달 계획이 없이 단순하게 '중장기적으로 탄소세 도입을 검토'하자는 수준이어서 당장 실행계획으로도 준비가 전혀 안 된 정책안이다. 따라서 정의당의 그린뉴딜을 포함한 제대로 된 그린뉴딜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서 포스트 코로나 국가프로젝트를 준비할 때다. 그것이 코로나 이후 세상을 확실히 바꾸는 길이다.

한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싸고 정부에서 두달 째 재정건전성 논쟁에 매달리는 것을 볼 때, 한국판 뉴딜 한다면서 잘못된 방향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나면 정작 그린뉴딜이 필요할 때 다시 예산제약 때문에 못하겠다고 어깃장을 놓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태그:#경제, #한국판 뉴딜, #그린뉴딜, #코로나, #경기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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