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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COVID-19)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한창이지만, 활짝 피는 꽃들과 함께 찾아오는 봄은 막을 수 없나 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하여 새롭게 볼 수 있는 점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박종대 선생과 식사를 하던 중 우연히 100권을 넘게 번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은 그동안 <세상을 알라>(열린책들), <너 자신을 알라>(열린책들), <데미안>(사계절) 등을 번역해 왔는데요. 어떻게 1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할 수 있었을까 호기심이 생겨 벚꽃이 만개한 4월 14일 원주에 위치한 토지문화관에서 집필 중인 박종대 번역가를 직접 만났습니다.

- 토지문화관에서 만나자고 해서 여기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습니다. 토지문화관에 관하여 소개를 해줄 수 있나요?
"토지문화관은 박경리 선생님의 뜻을 기려 토지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작가 집필촌입니다. 문인을 비롯해 번역, 음악, 미술,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개방된 곳입니다. 산과 들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인데, 저는 여기 들어오면 꼭 '낯선 고향'에 안기는 느낌이 들어요. 마치 현실에 찌든 낯선 인간을 포근하게 품어 준다고 할까요?

박경리 선생님이 생전에 그러셨다고 하더군요. 가끔 휴게실에 술을 채워 놓으시며 지치고 고단했던 몸 여기서 푹 쉬었다 가라고요. 어머니 같은 넉넉함을 느낍니다. 여긴 정말 '따로, 함께'인 공간입니다. 외롭게 작업하다가 사람 살내음이 그리우면 슬쩍 방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죠. 게다가 여긴 여러 장르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됩니다. 어찌 보면 경험과 인식의 콜라보라고 할까요?

이곳을 문인들로만 제한하지 않고 문화 영역 전체로 개방한 이유도 거기 있지 않나 싶어요. 요즘 한류 드라마나 영화, 음악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힘도 어쩌면 이런 보이지 않는 교류나 융합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어요. 아무튼 이곳은 저에게 만남과 쉼의 의미를 갖는 아주 특별한 장소입니다."
 
토지문화관에서 번역하고 있는 박종대 선생
▲ 토지문화관에서 번역하고 있는 박종대 선생 토지문화관에서 번역하고 있는 박종대 선생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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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리 선생님의 뜻이 숨 쉬는 곳에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창작과 소통을 하는 멋진 공간이군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번역을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계기 없는 일이 어디 있으랴마는 저는 이 질문을 받으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거창할 것까지야 없지만 삶의 진로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뀐 사건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죠.

돌아보면 제 삶의 첫 전기는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을 시작했죠. 그 결과 꿈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되겠다는 꿈이 아니라 무엇이 안 되겠다는 꿈이었습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는 찾을 수 없었지만, 뭐가 되고 싶지 않은지는 명확했습니다. 월급쟁이였죠. 시간표에 매여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삶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공부였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시작한 일은 스스로 좋아서 시작한 일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막상 공부의 길로 들어섰지만, 공부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지 못했고 목표도 불분명했습니다. 세속적으로 비칠 것 같아, 경제적 걱정 없이 학문을 할 수 있는 직업이 목표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실질적인 목표였습니다.

그런 내게 서른한 살쯤 두 번째 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누가 공부하지 말라고 말려도 평생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둘 현실에 적용해 보면서 공허한 지식이 머릿속에서 걸어 나와 내 삶으로 들어오는 즐거움을 맛본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순탄할 것 같던 제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1996년 한국에 잠시 다니러 갔다가 독일로 돌아가지 못한 겁니다. 제가 아는 독일 교포가 북쪽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로 안기부에 체포된 것이죠. 사실 아내와 저는 그 사람과 친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쪽으로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문제 되는 행동도 하지 않았기에 곧 풀려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그런 일로도 얼마든지 사건을 만들 수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재판을 받느라 1년 6개월을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 뒤 세상에 나와 보니 막막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독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국에서 공부를 이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집안의 가장으로 식구를 건사해야 할 의무가 목전의 비수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후배가 번역을 권했고, 저는 삶이 내민 그 끈을 감사히 잡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이제 20여 년을 넘겨 천직이 되었습니다. 지나 보면 가지 않은 길이 가끔 궁금하기도 하지만 미련이나 후회는 없습니다.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즐거워하는 일을 찾았기 때문이죠."
 
박경리 선생 동상 앞에서 옛 일을 떠올리는 박종대 선생
▲ 박경리 선생 동상 앞에서 옛 일을 떠올리는 박종대 선생 박경리 선생 동상 앞에서 옛 일을 떠올리는 박종대 선생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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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균열이라 표현해주셨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될법한 이야기 같네요. 독일에 유학을 다녀 온 후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소개해줄 수 있나요?
"유학 시절에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독일 사회 시스템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한 사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2000년대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유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범인은 10여 세 여아를 유괴해 부모에게 돈을 요구했습니다. 범인은 잡혔지만, 아이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경찰은 유괴범에게 아이가 있는 곳을 대라고 했지만 범인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고문을 하겠다고 위협했고, 결국 범인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으로 달려가 보니 아이는 벌써 숨진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온 국민이 분노했죠. 여기까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중요한 건 다음 상황 전개였습니다. 범인은 수감 중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경찰이 자신에게 고문하겠다고 협박한 것이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죠. 범인의 뻔뻔한 행태는 또 한 번 공분을 불러일으켰지만, 헌법재판소는 범인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가에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권력 기관이 개인을 협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죠. 당연히 법원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게 독일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몹쓸 인간의 인권까지 지켜주는 사회라면 누구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죠. 사실 '국가 권력'은 어원을 더듬어 보면 '공공의 폭력'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믿기에 인신을 제약하는 폭력에 동의하는 것일 뿐입니다. 삼권분립이 나온 것도 그 폭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죠.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그 수준으로까지 나아간 독일 사회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유괴 사건은 이청준 선생의 <벌레이야기>를 이창동 감독이 영화로 만든 <밀양>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영화에서 종교와 용서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벌과 인권 침해에 관한 판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이클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도 떠오릅니다. 많은 책을 번역하셨는데요. 번역한 책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책을 고르시겠습니까?
"음, 고민이 되는 질문인데요.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꼽고 싶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인데, 그림이 퍽 특이합니다. 팔레트를 든 화가를 비롯해 화방에 우연히 들른 공주 일행을 그린 작품인데, 정작 이 그림의 모델이 되는 국왕 부처는 지금 우리가 그림을 보는 위치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바뀌어 있는 것이죠. 이를테면 연극배우가 관객을, 소설 속 주인공이 독자를 바라보는 식입니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의 작가는 이 그림에서 사람이 아닌 개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응석받이 공주의 애완견으로 보이는 개는 난쟁이 어릿광대가 등을 짓밟아도 묵묵히 참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개의 모습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개로 살기를 강요당한 바르톨로메라는 소년을 보았습니다.

바르톨로메는 혼자서 걷기조차 힘든 난쟁이 꼽추입니다. 중세의 가치관에 따르면 난쟁이나 불구는 하늘로부터 벌을 받은 불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었죠.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던 바르톨로메는 우연히 길에서 공주의 눈에 띄어 공주의 노리개가 됩니다. 이제부터는 공주의 인간 개가 되어 개처럼 기고 짖어야 했죠. 이런 바르톨로메에게 유일한 벗과 희망이 되어 준 것은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화방과 그림이었습니다.

화가들은 바르톨로메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았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선입견도 없었고, 뒤집어쓴 개 가죽으로 바르톨로메를 평가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르톨로메에게 인간의 모습을 일깨워 준 것은 그림의 세계였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회화이기 때문이죠. 회화는 표면에 드러난 그대로를 재현하는 사진과는 달리 여러 색깔을 겹쳐 사물 속에 숨겨진 깊은 맛이 우러나오게 하는 예술입니다.

예를 들어 밤하늘을 그리더라도 검은색 하나만 칠하지 않고 흰색, 노란색, 파란색을 겹쳐서 칠할 수 있죠. 떠오르는 해에 대한 기대와 별빛, 달빛, 깊은 우주에 대한 경건함, 거기다 화가의 소망까지 시커먼 하늘에 담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회화는 드러나지 않은 대상의 깊은 본질을 선과 색채로 포착해 내는 예술 장르입니다.

벨라스케스는 개의 그림 속에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과 영혼을 담은 한 소년의 모습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로부터 400여 년 뒤 이 책의 작가는 개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인간의 권리와 주어진 환경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이건 해석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역사라는 것이 해석의 산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행복한 오해'라는 이름을 붙여도 무방할 겁니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행복한 오해일 테니까요."
 
박종대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 박종대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박종대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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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분야의 책을 번역하셨는데요. 그 중 번역이 가장 어려웠던 작품은 무엇이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꼽고 싶습니다. 원고를 넘기고 출간을 기다리는 작품인데, 제가 전공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원고지 6400매에 이르는 대작인데다 유럽의 정신사를 작품 속에 녹인 성찰 소설이라 난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흔히 영어권에 <율리시스>가 있고, 프랑스어권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다면 독일어권에는 <특성 없는 남자>가 있다고 하죠.

대개 번역이 어려운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루는 내용 자체가 어렵고, 하나는 그것을 표현하는 문체가 어려운 경우입니다. 무질의 소설은 두 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작가는 상투적이거나 길들여진 표현을 극도로 싫어해서 비슷한 문장이 거의 없고, 비유나 은유도 개인적인 경험이나 인상에 기초해서 굉장히 특이하고, 문장도 길어서 어떤 경우는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제가 책을 한 권 번역하는 데 2, 3개월이 걸리는 데 이 책은 근 2년이 걸렸습니다."

- <율리시스>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많은 분량으로 인해 아직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은 책인데, 독일엔 <특성 없는 남자>란 책이 있군요. 6400매의 분량이라니 엄청납니다. 이렇게 많은 분량의 작품과 100권 이상을 번역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어떤 작가가 이런 말을 했죠. 작품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고. 끈기와 규칙성이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이건 저한테도 딱 들어맞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컴퓨터를 켭니다. 그래서 저녁 8시까지 일을 합니다. 중간에 운동을 하고 잠시 쉬기도 하지만 보통 하루에 여덟 시간을 일합니다. 게다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작업을 합니다. 물론 이때는 오후 네 시 정도에 일을 끝내죠. 주말에도 일을 하는 이유는 남들 놀 때 일을 해야 남들 일할 때 놀 수 있거든요. 제가 노는 날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놀고 싶을 때 놉니다. 프리랜서만의 호사죠."

- 작품을 번역하다 보면 스스로 창작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진 않나요?
"그런 질문을 더러 받지만,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다릅니다. 물론 취미로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업이라면 잘하는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창작에 재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창작을 시도한다면 그건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거니와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겁니다.

제가 잘하는 일은 번역입니다. 번역도 나름의 글쓰기입니다. 누가 번역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죠. 반면에 창작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글쓰기입니다. 독특한 문법과 표현 방식이 있죠. 제가 잘 알지도 못하고, 잘할 수도 없는 영역입니다. 설령 저에게 알량한 재주가 있다고 해도 제가 번역한 독일 작가나 제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깨닫는 것도 나이 들어가는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토지문화관의 소통공간에서 인터뷰 중인 박종대 번역가
▲ 토지문화관의 소통공간에서 인터뷰 중인 박종대 번역가 토지문화관의 소통공간에서 인터뷰 중인 박종대 번역가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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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의 작품을 한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도 번역가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은 한 사람의 번역서만 읽는데, 과거에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 새로운 번역으로 나오면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이란 분야는 박종대 번역가의 이야기처럼 외국어, 한국어, 논리력, 배경지식 그리고 행간을 읽어낼 수 있는 번역가의 재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종대 번역가의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에서 오히려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만남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의 번역으로 만나길 기대합니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라헐 판 코에이 (지은이), 박종대 (옮긴이), 사계절(2017)


태그:#박종대, #독일어번역, #박종대번역가, #토지문화관, #독일어박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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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글을 쓰는 주말작가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yoodluf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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