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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20대 남성 A씨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A씨가 텔레그램에서 유료로 운영한 이른바 '박사방'이라는 음란 채널에는 미성년자 등 여러 여성을 상대로 한 성 착취 영상과 사진이 다수 올려졌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20대 남성 A씨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A씨가 텔레그램에서 유료로 운영한 이른바 "박사방"이라는 음란 채널에는 미성년자 등 여러 여성을 상대로 한 성 착취 영상과 사진이 다수 올려졌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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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수를 의미한다. 하나, 둘, 셋… 세어 나가다 그것이 알 수 없는 지점까지 나아가면 'N'으로 대체된다.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이용한 대규모 디지털 성범죄, 성착취 사건 'N번방'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아무리 닫고 닫아도 여전히 열려 있고 새로 생성되는 알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것이었다. '텔레그램'은 높은 보안성을 자랑하는 메신저 앱이다. 개인의 사생활과 대화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이곳은 증거 인멸이 가능한 범죄 소굴에 불과했다.

그들은 여성들을 철저히 유린했다. 주동자인 '박사'가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여성들을 모으고 임금을 지급하겠다며 개인 정보를 얻어내면 지옥이 시작됐다. 성착취의 잔인함은 말 그대로 'N'에 수렴했다. 지인들의 연락처는 물론 집주소까지 모조리 공개된 상황에서 피해자들에게 도망이라는 선택은 없었다.

26만명 (텔레그램 성착취 공대위 측이 밝힌 N번방 가입자 수 추정) 성착취영상, 불법촬영물을 보고 유포하는 동안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곳에서 피해자는 누구의 가족일수도, 성인일수도, 사람일수도 없었다.

주동자 중 하나였던 '박사'가 검거되었다. 역대 최대 인원이 'N번방'에 참여하고 이 끔찍한 범죄에 가담한 공범 26만명에 대해 처벌할 것을 청원하고 있다.

최근 며칠 새에 'N번방'과 관련된 키워드가 검색어를 장악했지만 동시에 '텔레그램 탈퇴'같은 검색어가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대한민국의 20대 중반 여성인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차오르는 역겨움에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감는 것만으로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었던 피해 여성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이 상황을 직시해야 했다. 그리고 써야 했다.

'피해 여성들도 원해서 참여한 거'라는, 2차 가해자들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목소리를 내야 했다. 지금 이 순간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 하나하나에 너무 많은 힘이 들지만, 한없이 더럽고 가벼운 손놀림으로 영혼 살인에 가담한 26만명을 생각하면 키보드를 부수는 수가 있어도 이 글을 써야 했다.

나는 묻고 싶었다. 어떻게 같은 인간으로 그럴 수 있느냐고. 그리고 묻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같은 인간이 아니니까. 피해 여성들의 자발적 의사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것이 철저히 계획된 영혼 살인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장난감 삼아 즐기다가 다음 날 아침 멀쩡하게 출근길에 오르는 건 인간이 아니니까.

너무도 쉽게 누군가의 가족을 죽이고 ,자기 부모한테는 아픈 데는 없냐는 안부 인사를 묻거나 자기 여자친구한테는 밤길 조심하라는 근심 어린 조언을 건네는 건 인간이 아니니까. 우리는 그런 걸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으니까.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그저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저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2차 가해에 대한 의견을 덧붙인다. 그들은 돈 벌겠다고 미끼를 문 게 잘못이라고 한다.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들은 어떤 수도 쓸 수 없을 만큼 궁핍해지면 안 되고 그때에 도움을 주겠다고 손을 내미는 여성의 따뜻한 음성과 그럴듯한 제안에 흔들려서도 안되며 설령 그 덫에 걸려 속옷을 머리에 뒤집어쓰라는 지시를 받게 되면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알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버텨야 한다.

집에 찾아가 죽여버린다는 협박이나 회사에 당신이 성매매를 하려고 했다는 식의 메시지가 가더라도 무시해야 한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시에 굴복하게 된다면 그때는 "너도 좋아서 했다"는 손가락질을 견뎌야 한다.

애초에 말이 되질 않는다. 가해자 26만명 중 한 명이 아닌 이상 이런 말을 배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든다.

'N번방'에 대한 수사는 이제 시작이다. 알 수 없는 수 'N'은 이제 정확한 실체로서 심판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가족과 직장, 사회에 공개될 것이고 '범죄자'라는 글자를 몸에 새기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딱 그들이 저지른 만큼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정의라고 믿는다. 그 정의를 당겨 오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이다.

태그:#N번방, #범죄,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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