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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전자상가. 보통 때면 붐비는 평일인데도 상가는 물론 도로에 차조차 별로 없어 한산하다.
 용산전자상가. 보통 때면 붐비는 평일인데도 상가는 물론 도로에 차조차 별로 없어 한산하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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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사장, 좀 어떤가? 장사한 지 30년이 다 됐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찾아오는 손님도 없고, 예정돼 있던 납품도 다음에 가져오란다. 큰일이다, 큰일..."

옆집 사장님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오후 3시밖에 안 됐는데 벌써 가게 문을 닫고 있었다. 왜 이렇게 빨리 들어가시냐고 인사하자 "혼자 앉아 있으면 뭐 하냐"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잔뼈가 굵은, 나름 터줏대감이라는 불리는 그의 낯빛이 어두웠다.

맥이 빠진다. 한창 붐벼야 할 거리는 주말처럼 고요하고, 건물 내 상가에서는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도 용산에서 컴퓨터 장사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이런 적이 있었나 싶다.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보다 당장 먹고사는 게 더 걱정이라는 하소연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자영업이 예년과 같지 않지만 그래도 졸업과 입학 시즌이 맞물린 2~3월은 전자업계에서는 한 해 중 가장 큰 성수기로 꼽힌다. 학교와 각종 공공기관이 낡은 PC를 교체하는 시기도 이때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신입생을 상대로 비교적 저렴한 아카데미 버전을 출시하고 각종 이벤트를 연다.

경기 흐름에 따라 다르지만, 명절은 앞둔 재래시장처럼 몇 개월은 북적이는 것이 이 무렵 전자상가 모습이다. 개학을 앞두고 찾아오는 손님도 많지만, 지방 도·소매점 주문도 이어져 상가 구역의 택배업자와 화물업자까지 덩달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시기이기도 했다.
 
물건값은 오르고, 손님은 없고

 
 콜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퀵서비스 배달 기사들. 이들에게는 변변한 휴식공간조차 없다.
 콜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퀵서비스 배달 기사들. 이들에게는 변변한 휴식공간조차 없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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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진짜 시장이 딱 멈췄다. 퀵서비스 배달 기사들도 건물 한쪽에 모여 '콜'을 기다리고 있고, 주변 식당들은 밥조차 안 먹냐며 울상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날마다 목도해야 하는 현실이다. 고달프고 무겁다.

'코로나19 사태'에 직격타를 맞은 건 확진자 수 급증으로 손님이 급감하고 매출이 급락한 2월 말부터지만, 감염병의 영향을 체감한 건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우한시를 중심으로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제품 공급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중국의 생산 공장이 문을 닫고 통관조차 어려워지자 부품의 품귀 현상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특히 중국에서 전량을 수입하다시피 하는 컴퓨터 메인보드, 그래픽카드, 케이스와 중저가 모니터의 공급 부족 사태가 두드러졌다. 수입 가격은 하루가 멀다 않고 올랐다. 제품을 구하지 못해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고, 오른 가격에 마진도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일시적이겠거니 했다. 코로나19가 지금처럼 나와 내 주변을 뒤흔드는 태풍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31번 확진자를 기점으로 감염이 급격히 확산하면서 공포는 직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방송에서는 연일 마스크 품귀 현상을 생중계하듯 전했고, 긴급재난문자는 서울시청과 가까운 구청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으로 전송됐다.

방역과 건강도 걱정이었지만 상가 사람들의 진짜 불안은 다른 데서 오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거래처인 지방 컴퓨터·사무기기 전문점들의 매출 감소 사례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매일 수십·수백 명씩 나올수록 그 지역 거래처의 주문량은 곤두박질쳤다. 거래처와의 전화 통화만으로도 전국의 공포가 실시간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다른 곳은 좀 괜찮나요? 여기는 관공서, 학교, 전부 출입을 통제해서 견적 상담도 못 해요. 학교 네트워크 공사도 인부 출입 문제로 미뤄졌습니다."

학교와 관공서뿐만이 아니었다. 군부대에 중점적으로 납품하던 거래처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당분간 출입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대구경북, 전남전북, 강원, 세종시의 관공서와 학교, 군부대 주문이 중지됐고 소비자 발길마저 끊겼다는 소식이 날이면 날마다 더해졌다.

거래처에 매출 부진은 그들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나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으로 다가왔다. 예년 이맘때 매출의 반이라도 넘길 수 있을까? 이달 임대료와 관리비, 공과금은 제대로 낼 수 있을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장부를 들여다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서 함께 이겨내자고 하지만, 결국은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자영업의 비애다.
     
오랜만에 주문 전화가 왔다. 웹캠 30EA. 화상카메라는 이제 별로 찾지 않는 제품 중 하나인데 서른 개나 주문이 들어왔다. 의아했다. 대리점에 전화하니 품절이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화상회의와 사이버강의가 늘어나면서 화상카메라 설치가 때 아닌 유행을 맞고 있단다. 대리점에서는 1년 치 판매할 양을 보름 만에 다 팔았다며 '화상 카메라가 마스크처럼 귀해졌다'고 농담했다.

이곳저곳 수소문해 겨우 물건을 구하느라 진땀을 뺐다. 코로나19 때문에 나도 일 년에 열 개도 팔기 힘든 화상카메라와 웹캠을 한꺼번에 서른 개나 팔았다. 참 요지경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실시간 온라인 원격 강의를 진행한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실시간 원격 강의하는 DGIST 박종래 교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실시간 온라인 원격 강의를 진행한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실시간 원격 강의하는 DGIST 박종래 교수.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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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 뒤 찾아올 '빈곤'... 정부가 적극 나서야

코로나19 사태, 언론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한다. 그런 초유의 상황을 참 잘 견디고 있다.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지만 정부와 방역당국, 국민 모두 박수받을 만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에 찾아올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국민의 호주머니 쌈짓돈으로 살아가는 자영업자들의 삶은 더 암울하다. 하루 노동을 하지 않으면 하루 치 임금을 보전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프리랜서의 삶도 어둡긴 마찬가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재택근무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게 이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11조 7000억 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편성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네 번째 추경으로 가장 큰 규모라 한다. 문제는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이다. 예전 추경처럼 은행 문턱을 낮춰 저리 대출을 알선하고, 수출 대기업을 돕는다고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으로는 국민에게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내기 힘들다.

몇몇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주장하는 재난기본소득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미 전북 전주시는 지자체 최초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맞대 적극적으로 논의했으면 한다.

감염병은 사라져도 대다수 국민들의 삶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남을 것이다. 빈곤층일수록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사회 안전망의 강화와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속하고 정확한 코로나19 대응태세로 세계 각국에서 찬사를 받은 한국 아닌가. 정부와 국민의 머리만 맞댄다면 '역병' 뒤 찾아오는 '빈곤'도 해결 못 할 바 아니다.
 
 12일 오전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서울 신도림역을 통해 출근하고 있다.
 12일 오전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서울 신도림역을 통해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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