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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와 '노동자시인 조영관 추모사업회'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둘 다 지금은 지상에 없는 이름들이다. 나는 무슨 인연이 있어 하필이면 죽은 이들을 기리는 모임 두 군데나 이름을 걸치고 있는 걸까?

박영근 시인은 내가 시인이 될 수 있도록 추천해준 인연이 있고, 조영관 시인은 그런 박영근 시인과 육친과도 같은 정으로 엮여 있는 사이였다. 내가 몇 번 만나지도 못했던 조영관 시인 곁에 머물고 있는 이유다. 아니 꼭 박영근 시인이 아니었더라도 나 역시 조영관이라는 사람에게 끌렸기에 그랬을 것이다.

조영관 시인은 생전에 박영근 시인이 믿고 의지하던 형이다. 서울시립대 영문과를 졸업한 조영관은 출판사 일월서각에 다니는 동안 구로동과 독산동에서 박영근 등과 학습모임을 가지며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에 훌쩍 사표를 던지고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용접을 배운 다음 인천에 있는 동미산업에 들어가 노조위원장을 하던 조영관은 파업 중 구사대들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채 해고된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  
 
조영관 시인 10주기를 맞아 만든 <조영관 전집> 겉표지
 조영관 시인 10주기를 맞아 만든 <조영관 전집> 겉표지
ⓒ 삶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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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관이 떠난 후, 조영관도 떠났다

조영관은 노동자로 살면서도 고등학생 시절부터 꿈꾸던 시인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글쓰기와 노동, 그 둘은 조영관이 결코 놓을 수 없는 생의 동아줄이었다. 하지만 둘 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전국의 건설 현장을 떠돌아다니며 뜻맞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렇게 해서 노동자들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햇살공동체'를 만들었으나 제대로 운영도 해보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 쓰기 역시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마흔여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이른바 등단이란 걸 했다. 생전에 자신의 시집 한 권 갖지 못한, 자신의 언어를 세상에 마음껏 펼쳐보기도 전에 하늘길을 밟아 올라간, 그래도 나는 그런 조영관 시인을 누구보다 자신의 삶과 시에 치열했던 시인으로 기억한다.

평택 대추리 싸움 현장에서 처음 보았을 것이다. 행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돌 때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던 그는 흥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인사동이었던가. 술집 한구석에서 그와 나는 바로 직전에 세상을 떠난 박영근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조영관이라는 사람이 박영근과 막역한 사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박영근이 가고 난 다음 가족을 빼면 조영관이 가장 슬퍼했을 것이다. 충격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던 그는 자신이 만들어 운영하고 있던 홈페이지에 박영근에 대한 추모글을 몇 차례 올렸다. 박영근이 곡기를 끊고 죽음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고 있을 때 그는 수원에서 부평에 있는 박영근의 집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2박 3일 동안 함께 술을 마시며 끌어안은 채 울고, 어떻게든 박영근에게 밥 한술이라도 먹이려고 기를 썼다. 어쩔 수 없이 가지 말라고 울며 매달리는 박영근을 뿌리치고 돌아서야 했던 그날의 회한을 조영관은 이렇게 기록했다.    
            
"3일째 되는 날은 음식을 입에다 억지로 떠먹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그릇을 떠먹이고 형 가면, 나 죽어, 했어도 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철을 타고 오는데도 어디야 형아 돌아와라, 나 죽을 거야 몇 번씩 전화가 왔어도 나는 나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설마 그렇게 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예전에도 몇 차례 죽을 거라고 해서 달려갔던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자신도 당장 해야 할 일이 있고,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되는 급박한 상황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마지막까지 박영근을 지켜주지 못한 게 회한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영관은 춘천의 교각 설치대 작업 현장에서 쓰러졌고,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간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부천 순천향대학병원 병실에 누워 있던 그를 만난 게 세 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부쩍 야윈 모습을 보며 그냥 미안하면서 막연히 화가 나기도 했다. 환자복을 입은 그는 꼭 이겨내 보겠노라며 회생의 의지를 전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이 자꾸만 마음 한 편을 파고들었다.

박영근 시인이 심심하고 외롭다며 데려가려는 건 아닌가 싶은 돼먹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세상을 둘러보면 나쁜 놈 천지인데 왜 지은 죄 하나 없이 이리 맑고 선한 이를 데려가려고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결국 박영근 시인이 가고 난 뒤 1년도 안 되어 조영관 시인이 뒤를 이었다.

조영관 시인에게 '열 번째 기쁜 소식' 전하기 위해

그렇게 조영관 시인은 우리 곁을 떠났고, 박영근 시인이 떠난 뒤 그랬듯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모였다. '노동자시인 조영관 추모사업회'를 만들고, 유고시집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를 엮어내고, 조영관문학창작기금을 조성해서 시인이 못다 펼친 꿈을 이어갈 후배들을 격려해오고 있다. 10주기를 맞아서는 두 권으로 된 조영관전집을 만들어 발표작보다 미발표작이 훨씬 많은 조영관 문학의 결정판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벌써 조영관문학창작기금이 10회째를 맞았다.

조영관 시인이 <실천문학>으로 공식 등단하기 전 백기완 선생이 운영하던 잡지 <노나메기>에 <산제비>라는 시를 발표한 적이 있다. 백기완 선생으로부터 시라는 건 이렇게 써야 한다는 칭찬을 받았던 시다. 시 마지막 연은 이렇다.    

웅숭그리고 있던 잠에서 깨어
가슴에 불을 담고 뜀박질했던 날들
야만이 끝나는 그 순간에 또 다른 야만이 길을 트는데
아무도 희망을 말하지 않아도
항상 처음처럼 들풀들은 자라나고
하늘 향해 길을 낸 버드나무를 바람이 흔들면
날카로운 삶의 흔적처럼
파들파들 떠는 사시나무 잎사귀에
둥지에
햇살이 걸리면
사금파리 같은 빛살이 희망을 쏘고
광야로 길을 떠난
발바닥이 뜨거워 잠들지 못하는
목이 말라 
하 목이 말라서
우물 빛 하늘 때굴때굴 굴러가는 저 새야

 
조영관창작기금 웹자보
 조영관창작기금 웹자보
ⓒ 조영관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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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빛 하늘 때굴때굴 굴러가는 저 새'를 불러 조영관 시인의 안부를 묻고 싶다. 그리고 우리들의 안부도 전해주고 싶다.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아무도 희망을 말하지 않아도/ 항상 처음처럼 들풀들은 자라나고' 있으니 걱정 말고 그곳에서 박영근 시인과 다정한 술잔 나누고 계시라고, 이제 곧 조영관문학창작기금 10회 수상자가 나올 테니 언제나처럼 기쁜 소식 전하겠노라고. 변함없이 지켜봐주시고, 맑았던 영혼 그대로 안녕하시라고!

[조영관문학창작기금은?]

조영관은 1957년 함평에서 출생했다. 1972년 단식으로 부모를 설득해 서울의 성동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984년 서울시립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여러 편의 문학평론을 교지에 발표할 정도로 문학에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1984년에 출판사 일월서각에서 일하다가 1986년에 퇴사해 구로공단, 독산동에서 고 박영근 시인과 학습모임을 꾸리기도 했다. 그 후 인천으로 건너가 노동운동에 투신, 안기부에 의해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1987년 동미산업(주)에 취업해 노조를 세우고, 1988년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임금인상 파업 도중 구사대에게 폭행을 당하고 결국 해고되었다. 

그 후 인천 남동공단의 현대기계에서 잠깐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건설노동자 생활을 주로 했다. 2000년 『노나메기』에 「산제비」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같은 해 해남의 암자에서 장편소설 '철강지대'를 쓰기도 했다. 다시 상경하여 노동자 공동체 운동을 구상하다 2002년에 『실천문학』 시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2005년 노동자 공동체 '햇살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2006년에 간암 판정을 받고, 2007년에 영면했다. 2008년에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가 출판되었고, 2017년 미발표 장편소설 등을 포함한 『조영관 전집』이 출판되었다. 2011년 2월 19일 추모비가 마석 모란 공원묘지에 세워졌다. 

그의 이름을 딴 '조영관문학창작기금'이 만들어져 2020년 현재 9회 수혜자까지 배출했다. 시집 『하늘공장』 등을 펴낸 노동자시인 임성용, 삼성반도체 백혈병 희생자의 르뽀집인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과 『퀴어는 당신 곁에서 일하고 있다』 등을 펴낸 르뽀작가 희정, 장편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와 단편소설집 『고요는 어디 있나요』 등을 펴낸 하명희 씨, <길목인>에 탈핵과 유성기업 노조파괴 르뽀 등을 연재 중인 르뽀작가 일곱째별 등이 주요 수상자다. 문학상 운영위원회에는 생전에 그와 함께 했던 박일환, 문동만, 송경동 시인, 그리고 유가족인 조영선 변호사(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와 서울시립대 민주동문회 등이 함께 하고 있다. 

 

태그:#조영관 시인, #박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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