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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자전거로 5분만 가면 도서관이 있다. 귀한 보물이 가득한 집채만 한 금고가 곁에 있는 기분. 여유롭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 사이를 걷다가 발길을 붙드는 제목을 봤을 때, 그 내용 또한 마치 찾고 있던 퍼즐 혹은 열쇠처럼 내 마음에 딱 들어맞을 때의 반가움, 해방감, 오묘함이란! 그 보물 이야기를 전한다. 보물과 같은 책 이야기. 형식은 자유. 허구에 허구를 더할 수도, 누군가를 위한 편지가 될 수도. 내 보물을 보여주는 방법은 내 자유니까. - 기자 말
 
도서관에서 보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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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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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늙음의 요소가 자라고 있음을 실감한다. 아이에서 가슴이 풍만해지고 음모가 자라는 여자를 경험할 때처럼. 흰머리와 주름은 여전히 초대하지 않은 낯선 손님 같다. 그 손님은 내 집의 주인이 원래 자기였던냥 멋대로 짐을 풀고 점점 존재감을 키운다. 

당황스러웠지만 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이 '낯선 손님'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모두의 숙명임을. 다만 나 또한 예외가 아님을 '손님'을 만나고서야 깨달았다. 좋든 싫든 이 '손님'은 꽤 오랫동안 머물 것이며, 그가 떠나는 날은 나도 함께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일 것이다. 내가 이 '손님'과의 괜찮은 동거를 모색하는 까닭. 

드넓은 광야에 길을 잃고 홀로 있는 듯한 마음일 때, 누구라도 나타나줬으면, 그 누구에게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할지 묻고 싶은 마음일 때 나의 '보석창고'로. 도서관 컴퓨터에 앉아 검색어를 입력했다. '마흔', '나이', '노화'…… 많은 관련 책 목록에서 확연히 내 마음을 잡아당기는 제목 하나.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 몽테뉴 수상록 선집' 

책은 몽테뉴가 39살인 1571년부터 죽기 직전까지 약 20년간의 기록이며 그 평생 유일한 저서로 원제가 '에세Les Essais'란다. '에세'는 프랑스어로 '시험', '시도', '경험'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로 '에세이'라는 글쓰기 장르의 시초가 됐다고. 

그러니까 이 기록은 몽테뉴라는 한 사람이 자신에게 찾아온 늙음을 경험하면서 그 자신과 삶을 세심히 관찰하고 동시에 다각적으로 시험하면서 쓴 보고서다.
 
'아무리 방어 진지를 튼튼하게 구축해도 노화가 조금씩 나를 이겨가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낀다. 그저 힘닿는 데까지 버텨볼 뿐이다. 노화가 종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이제 갓 도착한 노화를 경험하는 단계. 고작 몇 가닥 흰머리와 살짝 짙어진 주름 외에 늙음은 나를 어떻게 어디까지 변화시킬지. 그 가운데 나의 육체적 특히 정신적 우위, 달리 말하면 '나다움'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하지만 특별한 묘책은 없는 듯하다. 나와 같은 한 인간으로 태어나 젊음, 늙음을 속속들이 경험하고 결국에 죽음 너머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몽테뉴처럼, 또한 수많은 존재들이 그러하듯 나도 그저 살아보는 수밖에.

그런데 말이다. 어차피 다시 내쫓을 수도 없고 모든 자연이 그렇듯이 늙음도 묵묵히 내 안에서 제 할 일을 한다면 나도 무기력하고 침울하게 늙음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삶이야말로 힘 닿는 데까지 한껏 말이다. 
 
'나는 서둘러 나이를 먹기보다는 노년이 짧은 것이 좋다. 쾌락을 얻을 기회가 있다면 아주 작은 기회까지도 놓치지 않고 움켜쥘 것이다. (...) 내가 가진 인생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인생을 더욱 심오하고 충만하게 만들어야' 

'노령기의 상태는 나 자신을 지나치게 꾸짖고 나무라며, 사리를 분별하게 만들고, 나에게 설교를 한다. 지나치게 쾌활했던 내가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지나친 근엄성에 빠져 있다. (...) 지혜에도 지나침이 있는 법이므로 어리석음 못지 않게 조절이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그렇지!' 싶었다. 사십대에 들어선 나는 지나치게 진지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남에게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따위 설교를 하진 않지만 내가 나 스스로에게 너무나 근엄해져 있기 때문이다. 늘 마음에 묵직한 돌 하나가 놓인 기분. 

이전보다 여행을 떠나는 데도 인색해졌다. 분명 과거에 돈이 더 많지도, 자유로운 시간은 되레 지금이 더 많은데도 가볍게 일상을 털고 일어나 아무곳이나 분명 뭐든 흥미롭고 신나는 것이 있을 거란 기대와 함께 떠나는 그런 여행.
 
'한 가지 삶의 방식에만 매여 거기에 속박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 뿐, 사는 것은 아니다.  (...) 자연은 우리를 자유롭고 속박되지 않는 존재로 이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특정한 지역에 가둬놓는다.'

죽음은 한 순간일 뿐이다. 늙음으로 인해 내 정신과 육체를 내 뜻대로 가누지 못하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때까지 내 삶은 온전히 내 것이며 그렇기에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이미 다 늙어 걸음도 떼기 힘든 노인처럼 사는 날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춤출 때는 춤추고 잠잘 때는 잠잔다. (...)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죽지 못한다. (...) 나는 과거를 한탄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수없이 심오한 아이러니를 품고 있지만 그 질문의 답을 찾기란 또한 참으로 어렵다. 그나마 해답 비슷한 걸 발견할 때는 그 질문들에 얽매여 있을 때가 아닌 한껏 삶을 즐기는 순간이었음을 기억한다. 

이제 알겠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은 늙음이 아닌 삶에 더욱 집중할 때임을. 살아있는 한 언제든 마찬가지임을. 삶이 유한하기에 이 휘황찬란한 삶을 더욱 증폭시켜 한껏 살아볼 것. 남이 아닌 나를, 저 멀리가 아닌 지금을 한껏 즐길 것.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 몽테뉴 수상록 선집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 몽테뉴 수상록 선집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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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 - 몽테뉴 수상록 선집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은이), 고봉만 (옮긴이), 책세상(2016)


태그:#늙음, #눈이부시게, #에세이, #몽테뉴 ,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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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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