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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때 일이다. 공직사회 저항이 잇따랐다. 과거 회귀식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반발이다.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과 감사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8년 10월 군법무관 7명은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23권을 불온서적으로 규정하고 소지를 금지한 것에 대해서다. 이들은 "헌법에서 정한 사전 검열금지 원칙에 반하는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또 감사원 실무자협의회는 "국민만 바라봐야 할 감사원이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성명서를 냈다. 전 정부와 반대되는 'ABR(Anything But Roh)', 즉 '정책 뒤집기'에 대한 집단 저항이다.

바뀐 것은 정권뿐인데 공직사회는 혼란스러웠다. 멀쩡한 정책이 폐기되고, 인사 칼바람이 불었다. 현대판 사화(士禍)였다. 내부 반발은 확산됐다. 기획재정부 A직원은 공무원노조 게시판에 "우리 작업량은 따로 없다. 당과 수령이 정하면 그것이 목표"라며 자조했다. 북한 천리마운동에 빗댄 항변이다. 양심선언도 잇따랐다. 농림수산식품부 J사무관은 "쇠고기 수입 협상은 졸속적이고 굴욕적이다"라며 재협상과 고시 연기를 주장했다.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연구원 K책임연구원은 "4대강 정비계획은 사실상 운하 건설이다"고 주장해 파장을 불렀다.

흔히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다고 한다. 복지부동과 무소신을 조롱하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영혼 없는 공직자는 넘쳐났다. 소신을 버리고 줄서기를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혼 없는 공직자들이 국가와 조직을 좀 먹는다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쓴 소리는 귀하다. 앞서 언급한 이들은 고위직이 아니다. 그럼에도 바른말을 아까지 않았다. 반면 청와대 참모, 중앙부처 각료들은 입을 닫았다. 그 결과는 문고리 3인방과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이다. 돌아보면, 비록 밥그릇은 빼앗겼을망정 그들로 인해 국가는 존속해왔다.

트럼프 정권에서 '미국의 위기'를 논하는 이들이 많다. 즉흥적인 정책 뒤집기, 자기 과시형 언행, 졸속 인사, 장사꾼 외교 때문이다. 뜻 있는 인사들은 트럼프 행정부를 불안한 눈길로 바라본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취임 이후 1만3000개 이상 거짓 또는 호도하는 주장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강대국 미국의 지위를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 배경에 소신 있는 공직자들이 있다. 그들은 양심에 기대어 트럼프 행정부를 고발하고 있다. 이들은 야당 정치인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전·현직 고위 공직자라는 점에서 놀랍다.

탄핵 조사가 시작된 이후 결정적인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모두 불리한 증거들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궁지에 몰렸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건 쉽지 않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이라도 그렇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는 그래서 경의를 표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선 공직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감사하다"고 했다. 그가 거론한 인사는 마리 요바노비치 전 주 우크라이나 대사와 윌리엄 테일러 대사 대행이다. 이들 외에도 많은 백악관 관료와 공직자들이 진실을 향해 멈추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간단하다.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을 쳐내기 위해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정부에 뒷조사를 부탁한 것이다. 또 군사 원조 중단을 내세워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는 의혹이다. 요바노비치 전 대사는 지시를 거부해 5월 경질됐다. 그는 하원에 출석해 트럼프가 자신을 축출하기 위해 국무부를 압박했다고 증언했다. 직업 외교관인 크리스토퍼 앤더슨은 트럼프 비선인 줄리아니가 핵심 인물이라고 폭로했다. 또 다른 외교관 캐서린 크로포트는 트럼프 측근이 요바노비치 대사를 자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백악관 관료들 뿐 아니다. 군에서도 치명적인 증언이 나왔다. 육군 중령 빈드먼은 "미국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에게 미국 시민 뒷조사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은 부적절했다"고 했다. 그는 문제가 된 전화 통화를 들은 당사자다. 이 같은 증언들이 이어지면서 탄핵 기류도 급변했다. 물론 탄핵을 예단하기는 이르다.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 문턱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정책 비판을 넘어 직을 건 내부 고발은 우리에게 생경하다. 그렇다고 마냥 부러워만 하기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

조국 사태를 복기해보자. 지난 8월 9일 장관 내정 이후 한국사회는 갈등이 일상화됐다. 지금도 진영으로 나뉘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조국이 물러나기까지 청와대, 관료사회는 침묵했다. 나아가 민주당과 일부 진보 논객은 궁색한 논리로 두둔하기 급급했다. 결과는 대통령과 정부에 치명적인 부담으로 돌아왔다. 다른 분야 지표도 좋은 건 아니다. 국민을 바보로 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오는 10일이면 문재인 정부는 반환점을 돈다. 남은 기간 국민통합과 경제에 역량을 쏟을 시기다. 이를 위해 공직사회 일신은 절대적이다. 치열한 내부 비판과 권위에 주눅 들지 않는 공직문화가 그것이다. 소신을 굽히지 않고 쓴 소리하는 공직자들이 많을수록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 느슨한 거문고 줄을 다시 죈다는 '해현경장·(解弦更張)'을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병식씨는 전북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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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분야는 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등이다.중남미, 중동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중남미를 수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벽돌 쌓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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