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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인 아파트를 일터로 삼고 있는 경비노동자. 60~70대 아버지 세대가 마지막 일자리로 찾아간 그곳은 우리 사회 어떤 민낯을 비춰주고 있을까.

안산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이하 안산비정규센터)에서 최근 의미 있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109개 아파트를 발로 뛰며 경비노동자 230명, 입주민 100명, 관리사무소 23곳을 찾아가 설문조사 또는 심층면접 등의 방식으로 경비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실태를 조사한 것. 이 조사로 드러난 몇 가지 문제를 돌아본다.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계약 기간이었다. 109개 아파트 중 3개월마다 사직서를 쓰고 다시 계약하는 초단기 계약방식을 채택한 곳이 41개(39.4%)에 달했다. 1년 이상 계약한다는 곳은 52개에 불과하고, 오히려 6개월마다 계약하는 11개 아파트까지 더하면 51%가 6개월 이하 근로계약으로 경비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P아파트에서 1년 6개월째 근무 중인 김진호(66, 가명)씨는 "최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원을 절반 감원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이미 혼자서 240세대 정도를 담당하고 있는데 반으로 줄여 480세대를 혼자 돌보라는 것은 우리를 관리비로만 보기 때문 아니겠나"라며 답답해했다.

A아파트 경비노동자인 유한기(71, 가명)씨는 "내가 조금만 실수해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다"며 몇몇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젊은 사람으로 대체된다는 소문이 돌아 분위기가 흉흉했다고 전한다.

주변 동료들 계약 기간도 통일성 없이 들쭉날쭉 이라 한다. 본인은 1년 계약이지만 어느 동료는 근무한 지 1년이 넘어 수습 기간도 아닌데 계속 3개월마다 계약하는 이도 있다고. 대다수가 이처럼 손쉽게 해고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리사무소나 용역업체 입맛대로 경비노동자 근로계약을 다루고 있다.

본연의 방범 업무보다 분리수거·청소에 더 많은 힘 쏟아

경비업법상 경비노동자는 '도난·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담당업무 비중에 대한 조사에서 본연의 '방범·안전점검(35.6%, 2위)'보다 '분리수거(36.6%, 1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3순위로는 청소(15.8%), 4번째로 택배 관리(10.2%)가 그 뒤를 이었다.

"지하주차장 청소는 물론 음식물쓰레기통 청소도 매일 해요. 출퇴근 시간 교통정리, 계절에 따라 눈 쓸기, 낙엽 쓸기, 나무 살균제 작업도 해야 하고... 초소에서 입주민 응대하거나 방범 취약지대 순찰할 시간이 없을 때가 많아요."(경비원 A씨)

"분리수거를 4개 동 혼자 관리해요. 너무하다 싶어도 어쩔 수 없죠. 청소하느라 장갑이 금방 너덜너덜한데 한 달에 한 켤레 밖에 안 줘서 각자 사서 써요."(경비원 B씨)


C아파트에서는 입주민들에게 관리규약 변경 서명을 받는 임무를 경비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아주 곤란하죠. 내용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 잘 모르고. 관리소에서 (서명) 받아오라니까 받는데 입주민들은 괜히 우리한테 화를 내기도 한다니깐요. 사람 없는 집은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야 하고."(경비원 C씨)

이처럼 관리소가 직접 할 일을 경비노동자에게 미루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응답자 중 75명(32.6%) 부당 대우 경험

"새벽에 술 먹고 소리 지르는 사람, 술김에 초소 유리창 깨고 간 사람도 있다."

B아파트 경비노동자 이야기다.

"회사에는 사장님이 한 명인데, 아파트는 입주민이 다 사장님이나 마찬가지야. 집요하게 경비와 청소미화원을 무시하고 갑질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C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전언이다.

"관리소장이 시키는 대로 쌓여 있는 물건을 치웠다가 입주민이 항의하자 책임을 나한테 떠넘겼어요. 그 분은 내게 보상하라 요구하고, 일부러 새벽마다 초소를 찾아와 문에 발길질하며 행패를 부렸어요."

D아파트 경비노동자 정만표(70, 가명)씨의 억울한 목소리다. 이처럼 부당한 대우를 당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입주자뿐 아니라 관리사무소와의 관계가 일방적 수직구조라 부당한 지시를 받고 욕설을 듣는 경우도 많다고.

비인격적 대우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중 75명(32.6%)이 부당대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2016년 조사결과 26%에 비해 상황은 더 열악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험자 분석 결과 월평균 3.8회 정도 부당처우를 경험한다. 아파트 세대수가 클수록, 경비노동자 연령이 높을수록 더 자주 비인격적 대접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쉬는 시간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휴게공간 열악

"경비휴게실이 있긴 한데 거기선 잘 수 없어요. 다들 휴식 시간이 달라서 왔다 갔다 하는 통에 시끄럽고 공기도 안 좋고 냄새도 나고... 각자 초소에서 자는 게 편해요."(경비원 이모씨)

"초소에 작은 냉장고 한 대 놔두면 어떠냐고 건의했더니, 누가 그런 제안을 주도했는지 계속 캐물어서 다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괜히 불안해서."(경비원 권모씨)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실제 임금을 높이기보다 휴게 시간을 증가시키는 형태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3년 전과 비교해 실제 휴게 시간이 54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쉬는 시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휴게공간도 열악한 곳이 대부분이다.

휴게 시간 사용실태 조사에서 '근무지를 벗어나 자유롭게 쉴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41명(17.8%)에 불과하고 180명(78.2%)는 근무지를 벗어날 수 없거나 비상시 긴급대응을 해야 하는 상태라고 답했다. 

안산비정규센터는 4년째 고령 취약계층인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조사하고 있다. 누적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10월 2일 '안산시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토론회'도 개최했다.

박재철 안산비정규센터장은 "지난 8월 말 안산시흥경비노동자 모임이 발족해 스스로 해결하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희망적"이라며, 사단법인 좋은이웃에서 '경비노동자 권리지킴이' 모임도 만들어져 힘을 보태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전한다. 또한 안산비정규센터는 남은 하반기에 아파트 상생 협약식에 집중할 예정이라며, "최대한 많은 아파트와 '경비노동자 고용안정 및 노동인권 준수를 위한 협약식'을 체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누군가에게 편안한 거주지인 아파트. 그 터전을 지키는 경비노동자들에게도 기본이 지켜지는 일자리가 되길 기대해본다.

태그:#안산 경비노동자, #경비노동자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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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 살고 있습니다. 시민기자 새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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