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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에서 최근 잇따르는 '백색테러'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듯 홍콩 시민 수만 명이 경찰이 불허한 집회와 행진을 강행하면서 복면금지법 반대 등을 주장했다.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수만 명의 홍콩 시민들은 홍콩 최대의 관광지 중 하나인 침사추이와 몽콕, 오스틴 지역을 행진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는 지난 6월 초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후 20번째 주말 시위이다.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당초 침사추이에서 웨스트카오룽 고속철역까지 행진하며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반대 시위를 할 예정이었지만, 경찰은 폭력 시위가 우려된다며 이를 불허했다.

하지만 전날 피고 찬 민간인권전선 부대표는 야당 의원들과 함께 '시민 불복종'을 내세우며 집회 강행을 선언했다. 이에 화답하듯 이날 수만 명의 홍콩인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강행했다.

집회에 참석한 렁궉훙 의원은 "경찰의 집회 불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홍콩 기본법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홍콩 시민들이 법을 어기게 만다는 것은 바로 홍콩 정부"라고 주장했다.

이날 시민들의 분노를 키운 것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범민주 진영 인사들에 대한 '백색테러'였다.

지난 16일 밤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岑子杰) 대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 4명에게 쇠망치 공격을 당해 중상을 입은 데 이어, 전날에는 '레넌 벽' 앞에서 이날 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전단을 돌리던 시민이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

'레넌 벽'은 포스트잇 등으로 정치적 의견을 분출하는 장소로, 홍콩에서는 최근 전철역과 육교, 대학 캠퍼스 등 인파가 많이 오가는 곳마다 들어섰다.

이날 시민들은 '홍콩 경찰이 짐승처럼 사람을 죽인다'라고 쓰인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일부 시위대는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의 얼굴과 히틀러의 사진을 결합한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다.

이는 백색테러를 친중파 진영이 사주했으며, 홍콩 경찰과 정부가 이를 묵인하고 있다는 시위대의 믿음을 나타낸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차우(21) 씨는 "솔직히 말해 두렵지만, 집에 처박혀 있다면 이는 정부에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 복면금지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날 홍콩 시민들은 마스크나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였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해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은 쓴 시민들도 있었고, 일부 시위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을 그린 가면을 썼다.

경찰의 강경 진압과 백색테러 배후에 중국이 있다고 믿는 홍콩 시위대는 이날 극심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냈다.

침사추이, 조던, 야우마테이 일대의 중국계 은행과 점포, 식당 등은 시위대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

시위대는 곳곳에 있는 중국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파손하고, 은행 지점 내에 화염병을 던졌다.

중국 본토인 소유의 기업으로 알려진 '베스트마트 360' 점포 등도 타깃이 됐다. 시위대는 이들 점포의 기물을 파손하고,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할 것이다", "광복홍콩" 등의 구호를 적어넣었다.

일부 시위대는 시진핑 주석의 얼굴을 박아넣고 '빅 브러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라고 쓴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성조기와 영국 국기를 흔드는 시민들도 있었다.

시위대는 길가의 벽에 시진핑 주석과 캐리 람 행정장관 등의 사진을 붙여놓고 여기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X' 자를 그려 넣기도 했다.

당초 평화 행진으로 시작했던 이 날 시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과격해졌다.

시위대는 야우마테이, 몽콕 지하철역 등의 기물과 유리창을 박살 내고 '개 같은 지하철공사'(狗鐵)라는 낙서를 했다. 이후 역 입구 등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질렀다.

시위대는 도심 시위 때마다 홍콩지하철공사가 시위 현장 인근의 지하철역을 폐쇄한다는 점을 들어 지하철공사가 홍콩 정부의 앞잡이가 됐다고 비난한다.

이날도 침사추이, 몽콕, 오스틴, 야우마테이 역 등 시위 현장 인근의 지하철역이 폐쇄됐다.

지하철역 폐쇄로 침사추이에 머물던 관광객들은 중국 본토행 고속철을 타기 위해 웨스트카오룽 역까지 캐리어를 끌면서 1시간가량 걸어가야 했다.

시위가 격해지자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고 물대포 차를 투입해 시위 진압에 나섰다. 이에 시위대는 침사추이 경찰서 등에 화염병을 투척하고, 보도블록을 깨서 돌을 던지면서 맞섰다.

시위대는 야우마테이 지역에 있는 홍콩의 반부패 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로 몰려가 ICAC 현판을 끌어내리고 CCTV 등을 박살 내기도 했다.

염정공서는 전담팀을 구성해 7월 21일 밤 백색테러에서 경찰의 직무유기 혐의 등을 조사한다고 밝혔지만, 아직 별다른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지난 7월 21일 밤 홍콩 위안랑 전철역에는 흰옷을 입은 100여 명의 남성이 쇠막대기와 각목 등으로 시위대와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이로 인해 최소 45명이 다쳤지만, 늑장 출동한 경찰은 이를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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