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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의 혐일주의자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일본의 침략향수
19.09.21 09:51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그리고 나는 한국의 혐일주의자이다
 
그리움은 아픈 기억마저도 향기롭게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추억은 아련하다. 세월이 신경계가 겪은 통증을 잊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픔의 고통은 잊고 좋은 것만 남는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노래를 일본사람은 좋아한다. 조용필과 우리 국민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제 강점기의 향기로운 추억 때문에 좋아하는 일본국민이 많으리라. 그들은 다시 돌아가서 우리를 노예로 부리고 싶은 것이다. 말로 대놓고 하지 않아도 일본은 은연중에 그런 심리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숱한 목숨을 죽음으로 내몰고 식량을 수탈하여 나무뿌리를 캐 먹게 만들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핍박하며, 자신들의 욕심을 채웠다. 그런 향수를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을 노예로 부리며 누렸던 쾌락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데, 이제는 추억이 되었을 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노래든 문학작품이든 청자나 독자가 좋아한다는 것은, 그 작품에 공감할 때 가능하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일본 사람이 좋아한다. 노래가 좋아서 공감을 하기도 하겠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식민지로 만들고 싶다는 자신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서 공감하는 것은 아닐까?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항구도시다. 항구는 들어가는 입구란 상징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부산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가사는 한국을 다시 침략하고 싶다는 심리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일본 국민이 왜 부산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노래에 공감할까? 역으로 생각한다면 '돌아와요 요코하마항'이란 노래가 있다면, 우리는 그 노래를 좋아할까? 물론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노래 자체만을 좋아할 것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황선우가 작사 및 작곡한 조용필의 노래로, 1972년에 발표하였다. 1972년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27년이 되는 해이다. 그 이전에는 한국노래가 이 노래처럼 일본 대중의 인기를 받은 적이 없었다. 아마 이 노래가 한국대중가요가 일본에서 힛트한 첫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부산항으로 돌아오라는 외침에 대한 돌아가고 싶다는 공감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오래 전부터 난 이런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우리나라를 자극하는 일본 극우의 행동에 순간순간 분노했다. 일부인 줄 알았다. 우리나라를 안 좋게 생각하는 일본인이 극우 몇 명에 지나지 않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의 태극기 부대처럼 아주 극소수의 인원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생각이 틀렸음을 이번 일본의 경제침략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직도 그들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가사처럼 우리나라로 돌아와 우리를 노예로 부리고 싶다는 침략야욕이 무의식의 핏줄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왜곡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 것이다. 내 주변에는 일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일본인과 말을 섞은 것은 단 한 번뿐이다. 그렇기에 일본인에 대해 피상적으로 생각해왔다. 지금 살고 있는 일본인을 미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를 핍박한 것은 그들의 조상일 뿐이며, 현재 살고 있는 그들이 직접적으로 우리나라를 압박한 것은 아니기에 지금 일본인을 미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일본인을 미워할 이유가 생겼다. 일본인은 침략야욕을 한 순간도 버리지 않았고, 그것은 피를 통해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 산케이 신문에서 여론 조사한 것을 보면 67.6%가 찬성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베의 지지율 또한 상승했다. 이제껏 내가 생각했던 일부 극우만이 혐한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런 혐한 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게 한 토양을 일본인이 제공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것이다. 그리고 혐한의 극단을 걷고 있는 사람을 일본인은 자신의 지도자로 내세웠다. 또한, 경제침략의 직접적인 조치인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해 일본인의 2/3가 찬성했다는 것은 일본인 대부분은 혐한 내지는 싫어한다는 것의 반증이라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이 떠오른다. 일본에는 '혐한'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우리나라를 싫어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왜 '혐일'이라는 말이 없는가 하는 것이다. 당해도 우리가 당했는데, 그들은 지금도 우리를 혐오하며 깔보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칠뿐만 아니라, 경제침략까지 자행하는 데 우리는 왜 '혐일'이라는 말이 없는가? 오히려 '혐일'이라는 말 대신에 '친일'이라는 말이 신문을 매일 장식하고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각성해야 한다.
앞에서 그리움은 향기롭다고 했다. 그것이 신경계가 느끼는 아픔을 느끼지 못해 좋은 것만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들은 돌아갈 부산항을 꿈꾸며 우리나라가 망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들은 안 좋은 신경계의 고통은 잊고 지배의 향기만을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인이 싫은 것이 아니라 아베가 싫다. 말이 되지 않는 모순이다.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수상이지 않는가? 그리고 그를 지지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이 말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나는 오늘부터 혐일주의자가 될 것이다. 벽에다 탁구공을 던지면 튕겨져나오는 힘은 던진 힘에 비례한다. 그들이 먼저 던졌다. 그리고 같은 힘으로 나는 반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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