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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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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3일 오후 5시 40분] 

고 김용균씨의 엄마 김미숙씨는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아들 용균이가 떠난 이후 더 이상 밝은색 옷을 입을 수 없게 됐다"라고 말한다. 2018년 12월 사고 이후 9개월, 엄마는 여전히 상중이다.
 
"자식을 잃으면 부모들은 사고 났을 때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다.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형제가 떠나면 차츰 무뎌지는데 자식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사고 이후 멈춰버린 시간에 머물러 있다."

 
김미숙씨의 아들 김용균씨는 지난해 12월 10일 밤 충남에 위치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를 점검하는 작업 도중 벨트와 롤러 사이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용균씨는 유품으로 면봉과 동전, 휴대전화 충전기, 지시사항을 적어둔 것으로 보이는 수첩, 물티슈 그리고 고장 난 손전등과 건전지를 남겼다.
 
사고 이후 정부는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만들어 지난 4개월 동안 김용균씨 사망 원인을 조사했다. 8월 19일 특조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고 김용균씨 사고의 핵심 원인은 발전 5사의 발전정비 사업 외주화와 민영화에 따른 원·하청의 책임 회피와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이 집중된 구조 때문"이라면서 "김용균씨는 작업지시를 다 지키다 죽은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결과를 들은 김미숙씨는 "아들이 이제 누명 벗게 됐다"라면서 울먹였다.
 
특조위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 뒤 '김용균재단'을 준비중인 김미숙씨를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공공운수노조 사무실에서 직접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아들의 죽음 이후 검은색 옷만 입는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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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보면 대부분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아들을 잃고 나서는 마음이 어둡다. 밝은색 옷은 더 이상 입고 싶지 않다. 거의 검은색만 입는 것 같다. 자식을 잃으면 부모들은 사고 났을 때 그 상태에서 머물러 있다. 부모나 형제가 떠나면, 시간이 흐르면 무뎌진다. 하지만 자식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 상태 그대로 머무르게 된다."
 
- 요즘 주요 투쟁현장에서 계속 뵙는 것 같다. 왜 현장에 계속 가나?
"요청이 오면 대부분 간다. 만나는 사람마다 '힘을 받는다'라고 말한다. 용균이도 비정규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인간 취급도 못 받고 죽었다. 비정규직 투쟁현장에 연대를 다니면 그 사람들도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정말 절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금이라도 '힘이 돼주자'라는 생각으로 다니고 있다."
 
- 그렇다고 연단에 올라 발언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알았나? 자세히 본 것 같다. 내가 가서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들 말해 준다. 나는 그냥 아줌마다. 아무것도 아닌데, 아들 보내고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가는 것이다."
 
- '연대 투쟁'이 원래 살던 구미에서 서울로 완전히 이사한 이유와도 관련 있나?
"그렇다. 용균이 죽음과 관련해 진상규명이 돼야 하니까. 그런 것들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사를 결심했다. 아무래도 멀리 (구미에) 있으면 거리가 있으니 잘 되는지 모른다. 그런 상태가 싫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고 일부러 서울로 왔다."
 
- 김용균씨 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들었다.
"심근경색 때문에 지난 8년 동안 일도 못 했다. 용균이 일 있고 나서도 '살고 싶지 않다'면서 약도 끊었었다. 정말로 몸이 안 좋았다. 그런데 그때 용균이 아빠한테 말했다. '몸 아프면 누가 뒷바라지 하냐? 죽을 때 죽더라도 용균이 진상규명 봐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애 아빠한테 '나도 내 할 일을 해야 하니 몸 잘 챙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직 일이 안 끝났다. 용균이 아빠가 이 일 끝나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산다고 했는데, 결국 서울에 같이 왔다."
 
"산별을 삼별로 알던 내가 변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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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죽음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내 삶의 가장 큰 영역인 자식이 죽었다. 자식이 서부발전에 의해 누명을 쓰고 있는데 이것만큼은 부모로서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로서 자식을 생각한다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 인터뷰가 이제는 두렵지 않나?
"노동이나 인권 같은 말도 몰랐다. 이전 세계에서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어 하나도 어렵고 공부할 것도 많았다. 특히 용균이가 죽고 처음 가진 회의에서 '산별(산업별)'을 말하는데 나는 '삼별(별 세 개)'인 줄 알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지금도 할 게 많음에도 현안에 대해선 공부한다. 특히 삼성 투쟁 현장 같은 곳에 가서 발언 기회를 얻으면 급히 삼성 관련 책을 읽고 간다. 인터넷이라도 뒤져서 기사를 살핀다. 알아야 말을 할 수 있다."
 
- 8월 19일 특조위가 '용균씨가 작업지침을 따르다 사망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용균이가 '작업지침을 너무 잘 따르다 죽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용균이한테 매번 '회사에서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애한테 도움 되리라 생각하고 말한 건데, 결국은 내가 말한 것 때문에 용균이가 더 열심히 하다 사고를 당했다."
 
- 결과 발표 후 '누명을 벗었다'라고 말했다.
"서부발전은 우리와 합의할 때, 여론 때문에 억지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은 발표했지만 '용균이가 자발적으로 운전 중인 점검구에 들어갔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자기네들 잘못은 없다는 뜻인데, 이제는 특조위가 '용균이가 업무이행을 잘 하다가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물증이 나온 거다. 용균이의 억울한 죽음이 풀렸다. 이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누명을 벗었다'라고 말한 이유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나는 미친다"
 
- 특조위 권고안까지 발표됐다.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행 여부다.
"일단은 지켜볼 생각이다. 회사가 특조위 권고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것에 따라 나도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생각하고 행동할 계획이다. 만약 동력이 떨어지면 기자회견도 하고 다시 부추길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할 거다.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겠다. 김지형 특조위 위원장(전 대법관)에게 문자도 보냈다. '끝까지 잘해달라'고."
 
- 최근 양대 노조 발전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힘을 모았다.
"자신들 일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이번 기회 아니면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당연히 같이 힘을 합치면 더 나아질 걸 안다. 양대 노총이 힘을 합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본다. 지금 나 혼자 뭘 할 수 있는 건 없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싸우면 싸울수록 막강해진다. 특조위 권고안대로의 실천 여부는 현장 노동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 여부에 달렸다."
 
- 현장을 바꾸는 것이 목표로 들린다.
"나는 일상에 돌아가면 미친다. 용균이 죽음이 처참하고 끔찍해서 그걸 생각하면 너무 힘들고 아프다. 분이 차서 살 수가 없다. 당연히 용균이 동료들이 다치지 않고 죽지 않게끔 만들고 싶다. 하지만 이미 용균이처럼 죽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다. 한해 2400여 명이 죽더라. 너무 끔찍했다. 비정규직으로 삶을 사는 그분들을 보면서 감정이입이 자꾸 된다. 용균이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위험에 내몰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려는 이유다."
 
"10월 26일, 김용균재단이 탄생한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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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균재단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단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사안들을 다 이행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김용균 재단은 산재피해자 유가족 모임인 '다시는'과 함께 연대하면서 좀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 제주도 이민호군은 5만 원짜리 센서만 있었어도 살 수 있었다.

죽고 나서 회사가 받은 벌금도 400만 원에 불과했다. 사람 목숨을 400만 원 취급받은 거다.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으면 또 재발한다. 목숨값이 부품값보다 못한 현실을 막기 위해 김용균재단이 생기는 거다."
 
- 김용균재단 창립일이 왜 10월 26일인가? 김용균씨 생일인가?
"아니다. 용균이 생일은 12월 6일이다. 사고 나기 며칠 전이 생일이었다. 재단 창립일을 10월 26일로 잡은 이유는 우선 용균이 1주기 되기전에 재단을 출범하자는 얘기가 있었다. 또 11월에는 여러 투쟁 일정이 예정돼 있어서 피했다.  물론 다들 10월 26일 하면 박정희가 죽은 날로 많이 생각한다. 내가 구미에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박정희를 되게 큰 인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 잃고, 이 안에 들어오면서 박정희 독재 체제도 알게 됐다. 우리나라 노동현실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파악했다."
 
- 끝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할 말이 있다고 들었다.
"대통령께서 '우리나라를 바꾼다'라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말로만 하고 있다. 특히 '공공분야 비정규직을 없애겠다', '2020년까지 산재사망 비율을 60%로 내리겠다'라고 말했는데, 말로만 하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 강제해야 한다. '중대재해 기업살인법'을 제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 나라가 어렵다고 말하는데, 나라가 어렵다고 하는 건 지금까지 기득권이 악법을 만들어 매번 이런 식으로 앓는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중대재해 기업살인법'이 있어야 우리나라 국민들이 존중받고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 나는 죽으면 우리 아들한테 떳떳해지고 싶다."
 
김미숙씨는 오는 10월 김용균재단 출범을 위해 전국을 돌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김용균재단준비위원회는 마음을 나눌 시민들의 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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