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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이 쓴 책 <가장 보통의 드라마 - 드라마 제작의 슬픈 보고서>에 대한 엄마의 이야기 연작입니다.[편집자말]
한솔은 <가장 보통의 드라마> 첫 문장에서 '이 책은 조롱당하기 쉬운 책'이라고 했다. 드라마 업계에 발가락도 담근 적 없기에 드라마 세상의 '꾼'들에게는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다고 했다. 드라마 현장에 쌓인 문제들을 바꾸고 싶어했던 형 한빛PD의 뜻을 존중했고 형이 해결하고 싶어 했던 문제들이었기에 그깟 조롱은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한솔이가 결코 평범한 시청자가 아님을 확신한다. 나는 한솔이를 가장 가까이서 본 엄마다. 7차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2000년대에는 ICT활용교육(정보통신기술)이 교과별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국어수업시간에 주로 책이나 인쇄물로 된 학습자료를 활용하던 나도 영상관련자료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수업변화를 고민해야 했다. 의무에 가까운 권장사항이기도 해서 당시 모든 교과는 ICT활용을 많이 했고 수행평가 역시 ICT를 적용했다.

한솔이는 그때 중학생이었는데 활동적이다보니 매사 조심성이 없었고 뭐든지 후다닥하는 편이었다. 전자제품도 일단 눌러 보고 분해해서 항상 조마조마했다. 그래서인가 ICT문화는 쉽게 받아들였다. ICT를 활용해 스토리를 만들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즐거워했다. 수업결과물도 뚝딱 만들어냈다. 그것도 창의적으로. 국어교사인 내가 봐도 대부분 아이들의 수행평가 수준보다 조금 높았고 앞섰다.

그렇게 자란 한솔이기에 나는 한솔이가 이 책을 깊은 생각과 고민없이 쓰지는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또 형의 뜻을 존중하는 그 마음이 이 책을 쓰는 내내 한솔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고 끝까지 버틸 수 있게 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졸지에 아들 잃은 부모가 되었다
 
 고 이한빛 PD의 생전 모습
 고 이한빛 PD의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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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군데군데에서 통곡했다. 가슴이 막혀 울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방송계나 회사쪽의 수위 높은 모욕을 견뎌내며 자료를 수집한 것을 새삼 확인했을 때이다. 능히 짐작이 되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구나. 나는 엄마니까 어떠한 능욕을 당해도 상관없는데 한솔이한테까지도 그러는구나.

한빛을 잃은 그해 가을부터 한빛의 죽음을 세상에 공론화(2017.4)하기까지 나는 대책위에 나가지 않았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건만, 나는 나갈 수가 없었다. 대책위에서는 한빛의 죽음을 '인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빛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세상은 아니 역사는 순리대로 흘러가니까 회사 역시 이 진실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광화문에서 회사측과 첫 만남이 있었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와 한빛 아빠는 졸지에 아들 잃은 부모가 되었다. 믿기지도 않는 현실을 끌어안고 전철을 타고 아들이 일하던 회사의 상사라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

언젠가 tvN 특집을 신문에서 읽었던 적이 있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즐겁게 보았고 국어수업에 많이 인용했기에 그 특집기사를 정독했었다. 그때 기사내용에 있었던 분도 회사 책임자라고 했다. 한빛이가 tvN에 입사했을 때 내가 먼저 그 분의 이름을 이야기 했더니 한빛은 엄마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계시다며 웃었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드라마의 총 책임자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대단함, 아니 따듯함이 있을까? 잘 감동하고 잘 울어 천상 국어교사라는 내 정서보다 더 특이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궁금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기가 막힌 자리에서 그들과 마주 앉았다. 자식이 죽었는데 회사 책임자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만나면 한빛이가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착각을 했을까? 도대체 무슨 희망을 안고 나갔을까? 무슨 정신으로 그 자리에 갔을까? 전철에서도, 도로를 걸으면서도 허공을 걷는 것 같았다.

나는 불쌍한 엄마가 되기를 자처했다. 아니 이미 자식을 잃은 불쌍한 엄마였다. 그래서 그들의 심각하고 슬픈 얼굴도 진심이라고 생각했고 의지하고 싶었다. 나는 머리를 조아리며 도와달라고 했다. 한빛 죽음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했다. 당신들은 높은 직위에 있으니 충분히 객관적으로 조사할 수 있지 않냐고 했다. 27년간 보아온 아들 한빛에 대한 믿음과 한빛이 남긴 마지막 말을 확신했기에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리고 한빛과 같은 희생이 더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요구했다.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부탁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매우 예의바르고(?) 공식적인 문서를 받았다. 한빛이 죽은 지도 모르고 한빛을 찾기 위해 처음 상암동에 가서 회사측에게서 들었던 모멸감을 다시 확인시키는 답이었다.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나는 바보같이 '아닐 거야. 역사는 항상 진실이 이겼잖아. 그네들이 잠깐 착각하고 있는 거야. 뭔가 상황을 잘못 알고 있는 거야' 하며 나를 달랬다.

학교에서도 학부모와 민원이 생길 때 학교 입장을 고집하거나 속이지 않는다. 사실(Fact)을 조사하고 원칙에 따라 잘잘못을 가린다. 그리고 학교측의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고 욕설과 비판을 고스란히 감수한다. 왜? 잘못했으니까. 그랬기에 모든 일은 순리대로 진행되리라 믿었다.

정신 차리니 거대한 골리앗이 내 앞에 서 있었다
 
 16일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고 이한빛 PD 유족들에게 CJ E&M이 약속한 재발방지 약속을 이행하라는 플래시몹이 진행됐다.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고 이한빛 PD 유족들에게 CJ E&M이 약속한 재발방지 약속을 이행하라는 플래시몹이 진행됐다. 2019.5.16
ⓒ 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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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왜 이 지경까지 와서도 그들을 배려할까? 왜 사람에게는 그래도 양심이 있지 않나를 구질구질하게 붙잡고 있는가? 아들을 잃은 끔찍한 비극 속에서도 나는 세상을 분명하게 읽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그 시간까지도 나에겐 모든 게 다 비현실적이고 꿈속의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니 그들은 거대한 골리앗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기가 죽었고 좌절했다. 전태일 어머님 이소선씨나 이한열 어머님 배은심씨가 갖고 있는 의지의 10,000분의 1이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겁나지 않을 텐데, 한빛에게 미안했다. 한빛에게 "한빛아, 엄마는 너를 지켜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또 비겁하게 주저앉으려고 하는구나. 너한테 받기만 했는데 또 너한테 부탁하고 있네. 한빛아 엄마한테 힘을 주렴" 하며 가슴을 쓸어안고 울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무너지더라도 다시 또 일어나겠다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유미 아버님이 가슴을 후비며 다가왔다. 반올림 기사를 보면서 그렇게 많이 공감하고 분노했지만 나는 여전히 집회 참석하는 것도 주저하는 겁쟁이였다. 아무리 억울한 죽음도 철저히 외면하다가 결국에는 돈으로 한 방에 해결하는 재벌에 대한 두려움, 공권력이 진정 평범한 시민의 편이 될까 하는 의구심, 죽음의 원인을 본인의 나약함과 책임으로 돌리려는 회사의 철저한 옹벽에 내가 과연 맞설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꿈에 그들이 여러 마리의 '괴물'로 우글거렸다. 진땀을 흘리며 혼비백산하다가 깼다. 그래. 괴물이었다. 내가 너무 '사람'으로만 이해하려고 했었다. 괴물로 단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자신이 생겼다.

그러나 나의 선택지는 다양할 수 없었다. 사실(Fact)로만 대항해야 했다. 나는 재벌도 언론도 방송도 다 믿을 수가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투쟁을 할 때 그 앞에서 피자 100판, 치킨, 핫도그 등을 먹었다는 기사를 보고 인간이 어디까지 짐승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치를 떨었던 기억 때문이다. 그렇게 역공을 당할 것 같아 무서웠다. 한빛을 두 번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사실(Fact)로만 싸운다는 것은 많은 한계가 있었다. '고인을 핑계로 우리 회사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협박 앞에 나는 검증하고 또 검증했다. 그동안 민주화 과정이나 재벌과의 싸움에서 피해자들이 어떻게 지난한 과정을 겪어왔는지를 알고 있기에 단어 하나에도 자체 검열을 했다. 평범한 시민이 꿈틀할 수 있는 영역은 좁고 작았다. 절망과 모욕 속에서 싸움을 이어나갔다.

한솔의 <가장 보통의 드라마>도 이런 지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말 그대로 슬픈 보고서이다. 그러나 한솔아. 엄마는 너의 용기에 힘을 얻는다. 한빛 형도 응원할 거야. 한솔아 수고했다. 고맙다.

덧붙이는 글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빛이 머문 시간>에도 탑재할 계획입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 - 드라마 제작의 슬픈 보고서

이한솔 (지은이), 필로소픽(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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