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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남편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간 날이었다. 좀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밤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혼자서 고양이들과 한가하게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쉬고 있는데 또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시아버지 전화였다. 

고개를 갸웃하며 받았다. 약주 한잔하시고 며느리 목소리가 듣고 싶어져 전화하셨단다. 좀처럼 내게 전화하신 적이 없어서 무슨 일 있나 하고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다. 서로 웃으며 근황을 주고받다가 아버님께서 궁금해하실 듯해 남편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오늘 친구들 만나러 나가서 좀 늦는대요." 
"그래? 아직도 안 들어왔어?"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재미있나 봐요." 
"남자가 술 먹고 좀 늦게 들어와도 바가지 긁지 마라. 그럴수록 잘해줘야 해." 


시아버지는 뒤끝 없고 호쾌하신 분인데, 꼭 예기치 못한 순간에 놀랄 만큼 가부장적인 발언을 내뱉곤 하신다. 집에 늦게 들어온다고 바가지 긁을 생각도 없었지만, 그럴수록 잘해줘야 할 건 또 뭐란 말인가. 남편이 놀다가 늦게 들어와도 집에서 아내가 상냥하게 비위를 맞춰야 남편이 기도 살고 밖으로 나돌지도 않는 법이다, 그런 부연 설명이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아버님, 저희는 '서로' 귀가 시간에 별로 신경 안 써요." 

나의 술자리는 왜 허락받아야 하는가
 
 실제로 결혼한 내가 술자리에 남아 있으면 '오늘 술 먹는 거 허락 받았어?'라든가, '남편은 괜찮대?'라고 묻는 이들이 종종 있다.
 실제로 결혼한 내가 술자리에 남아 있으면 "오늘 술 먹는 거 허락 받았어?"라든가, "남편은 괜찮대?"라고 묻는 이들이 종종 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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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둘 다 술을 좋아하는 편인데, 결혼 초에는 각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갈 때 은근히 서로 눈치를 봤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화가 난 배우자가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우리에게 익숙한 결혼의 레퍼토리였던 것이다.

실제로 결혼한 내가 술자리에 남아 있으면 '오늘 술 먹는 거 허락 받았어?'라든가, '남편은 괜찮대?'라고 묻는 이들이 종종 있다. 우리는 양해와 동의가 필요할지언정 허락을 구해야 할 사이는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남편도 '결혼한 남자가 이 시간까지 술자리에 있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지 궁금했다. 

물론 한쪽이 좋아하는 걸 다른 한쪽이 이해하지 못하면 그 차이가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연애할 때부터 서로의 술자리나 귀가 시간 때문에 다툰 기억이 거의 없다. 왠지 결혼 후에는 달라져야 할 것 같아 신혼 초에는 혼자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곤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가 친구들과 노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면 나는 기분이 나쁜가?

심심하고 외로울 때는 있지만 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 물론 공동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울 만큼 횟수가 잦거나 서로를 의심할 만한 여지가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는 공동으로 육아할 아이도 없다(함께 돌봐야 할 반려묘는 있다). 남편은 전날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셨어도 아침에 잊지 않고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출근했다.

밤중에 내가 전화를 자주 걸지도 않지만, 그가 안 받거나 피하는 경우도 없었다. 물론 나 역시 술자리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 마시는 일이 종종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음을 부정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단지 '유부남, 유부녀'라는 이유만으로 결혼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서로의 자유를 침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한 사람이 하룻밤 정도 집을 비운다 해서 공동생활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결혼을 계기로 온전한 독립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이라는 타이틀은 어쩐지 나를 부자연스럽게 옭아매고 있었다. 

결혼한 여자의 '혼행'

결혼 전의 나는 혼자서 먹는 밥과 혼자서 가는 여행을 좋아했다. 남편을 만난 뒤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됐고 심지어 결혼까지 했지만, 더 이상 나 혼자서 아무것도 누릴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난해 겨울에는 굳이 혼자서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은 나만큼 여행을 좋아하진 않는 데다, 프리랜서인 나는 직장인인 그에 비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편이다. 비행기 티켓이 싼 평일에 짧은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나를 그는 흔쾌히 이해해줬다. 남편도 고양이도 없이 혼자서 며칠을 보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고, 외롭지만 즐거웠다.

그러나 내심 뭔가 잘못한 듯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나 역시 '결혼했는데 이래도 되나'라는 근본적인 의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도덕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오려 노력한 내게 혼자 여행, 즉 외박한다는 사실은 왠지 '규율 위반' 혹은 '일탈' 같았고, 인생에 빨간 경고등이 번쩍 켜진 것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공동의 생활비를 개인적인 일로 사용한다 해도 딱히 거리낌이 없었는데, 막상 내가 혼자만의 즐거움을 위해 그 돈을 쓴다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역시나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다. '남편은 괜찮대?' 배우자의 '따로 여행'을 허락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이 죄책감의 뿌리는 이미 결혼 전부터 자라나고 있었다. 아내가 남편만 홀로 둔 채 친구들과 여행 가는 걸 은연중에 금기라 여겼고, 그래서 친구들과 휴일을 보낼 때면 '결혼 전에 실컷 놀자'고 다짐하곤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결혼 후에는 할 수 없다'는 전제에 자연스럽게 동의하고 있었던 거다.

결혼하고 나면 어디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것도 아닌데, 또 낯선 이성과의 접점이 있던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미래의 남편에게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당연히 '결혼하면 못 하니까'라고 전제했을까.

결혼의 여러 제약 중에서도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바로 그거였다. 언제부터 내 안에 쌓여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내면적인 압박. 외부에서 밀고 들어오는 며느리에 대한 제약은 눈에 또렷이 보이기에 어떻게든 하나씩 걷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결혼한 여자'라는 수식어에 잠재된 은연중의 제약은 나도 모르게 나를 잠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가 좋은데... 그럼에도 결혼한 이유
 
 남편을 두고 가는 건? 아내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는 양심의 가책이 밀려든다. 그러다가 나는 또 고개를 저으며 가능성을 열어본다. 용기를 낸다면 못할 일도 아니리라.?그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고, 나 역시 그렇기에.
 남편을 두고 가는 건? 아내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는 양심의 가책이 밀려든다. 그러다가 나는 또 고개를 저으며 가능성을 열어본다. 용기를 낸다면 못할 일도 아니리라. 그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고, 나 역시 그렇기에.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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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결혼했으니 당연히'라는 수식어를 붙여 관성적으로 화를 내며 싸울 때가 있었다. 차분히 곱씹어 보면 그렇게 화가 나는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괜찮은 것과 괜찮지 않은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결혼의 규칙 또한 부부마다 달라야 했다. 나는 생각날 때마다 남편과 '괜찮은 것'과 '괜찮지 않은 것'을 하나씩 질문하며 우리만의 규칙을 정해 나갔다. '회식이나 술자리, 여행은 괜찮지만 연락이 끊기는 것은 싫다', '서로 미리 양해를 구하면 외박도 할 수 있지만, 걱정시킬 만한 요소는 만들지 말자' 등.

결혼에 대한 내 의견을 표출할 때마다 '결혼했으면 사회적인 관례를 따르고, 참고, 견뎌야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을 수없이 들었다.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각자의 자유를 포기할 줄도, 싫은 것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마땅히 해야 할 것,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따르지도 않을 거면서 우리 부부는 왜 결혼했을까? 

분명한 건, 우린 여전히 '함께'인 동시에 '각자'이고, 결혼이라는 안전한 수갑으로 서로를 속박하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더 행복해지려고, 더 안전한 자유를 누리려고 결혼했다.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세상이 일괄적으로 만들어낸 결혼이라는 틀에 우리를 가두고,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내어, 기성품 같은 '유부남, 유부녀의 삶'을 누리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N <스페인 하숙>을 보면 홀로 그 기나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용기가 부러워졌다. 언젠가는 나도 할 수 있을까? 일단 남편의 취향에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니 그와 같이 갈 확률은 희박하다. 남편을 두고 가는 건? 아내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는 양심의 가책이 밀려든다. 그러다가 나는 또 고개를 저으며 가능성을 열어본다. 용기를 낸다면 못할 일도 아니리라. 그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고, 나 역시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자유로운 혼자의 삶이 좋다. 그런데 그 자유를 그와 함께 누리는 지금이 더 좋다. 우리는 때로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때로는 각자의 삶을 교차시킨다. 가끔은 궁금한 길을 혼자 앞서 걸어가고, 가끔은 되돌아와 손을 내밀어 의지해도 좋다고 이미 서로 동의했다. 혼자인 동시에 함께이기 위해서 우리는 결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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