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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블루보틀 한국1호점.
 지난 3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블루보틀 한국1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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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계의 애플'이라 불리는 블루보틀 커피가 일본에 이어 한국에 상륙했다. 지난 3일 오전부터 온종일 '블루보틀'이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고, 소셜미디어에도 각종 후기가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언론에서도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며 화제가 됐다.

블루보틀의 한국 진출은 꽤 오래전부터 이슈가 되며 국내 커피 애호가와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는데 드디어 성수동에 1호점을 문을 연 것. 블루보틀의 비즈니스나 커피, 건축과 관련해서는 이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은 글을 썼다. 필자는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 후기를 적어보려 한다.

오전 8시가 다가오자 벌어진 일

성수동 1호점이 5월부터 영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언제쯤 가야 좋을까'를 고민했다. 몇 년 전 쉐이크쉑 버거가 처음 한국에 상륙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픈 후 몇 달 동안은 늘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할 게 뻔했다. 그럴 바에 그냥 마음 편하게 개점하는 날 아침에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개점 당일이면 '덕후'의 상징인 굿즈 구매도 여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블루보틀이 가게 문을 여는 시각은 오전 8시. 2호선 첫차를 타고 출발해 뚝섬역에 오전 6시쯤 내리면 여유 있겠지 생각했다가,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도착해 2시간 이상을 기다릴 걸 상상하니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오는 듯했다. 결국 오전 7시 반 도착을 목표로 집에서 30분 전에 출발했다.

뚝섬역에 내려서 1번 출구를 향해 뛰었다.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붉은 벽돌의 빌딩이 눈에 들어왔고, 이미 50명쯤 되는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나중에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지만 '1등 대기자'는 자정을 좀 넘긴 시각부터 줄을 섰다고 한다. 오전 8시가 다가오자 대기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더니 내 뒤로 300여 명 이상이 줄을 쭉 섰다. 
 
5월 3일 오전 8시, 블루보틀 한국1호점이 문을 여는 그 시각,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사진 왼쪽)과 블루보틀 CEO 브라이언 미한.
 5월 3일 오전 8시, 블루보틀 한국1호점이 문을 여는 그 시각,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사진 왼쪽)과 블루보틀 CEO 브라이언 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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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정각. 오픈 준비를 마친 직원들이 나란히 서서 손님들을 맞았다. 심플한 컬러의 귀여운 복주머니를 개업 선물로 나눠줬는데, 속에는 직원들이 직접 손수 만든 한과가 담겨 있었다. 150여 개 정도 준비했단다. 블루보틀 창업자인 제임스 프리먼과 CEO 브라이언 미한은 손님의 줄 사이를 누비면서 대화를 나누고 사진도 찍으며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의 소탈한 모습에 약간 놀랐고, '블루보틀스럽다'는 감탄이 절로 들었다.

입장을 위한 기다림은 계속됐다. 커피니까 식당보다 회전이 빨라서 금방 차례가 오겠지라는 판단은 오산이었다. 블루보틀은 에스프레소 메뉴도 있지만 핸드드립으로 출발해 유명세를 탄 브랜드다. 추출 시간을 정확히 지켜 커피 한 잔을 내리기 때문에 생각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일본 내 모든 매장을 돌았다"는 직원

입구 유리문에 오전 8시 40분쯤 다다랐고, 오전 9시 20분에 드디어 주문대 앞에 섰다. 2시간 정도의 기다림 끝에 커피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악하게도(?) 입구에 진열해 놓은 블루보틀 굿즈들을 나도 모르게 주섬주섬 고르고 있었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결제했다.

이제 커피를 고를 차례. 뭘 마실까 고민하다가 블랜드 원두로 내린 따뜻한 드립커피 한 잔, 모 유업회사의 목장 우유를 사용한다는 따뜻한 라떼 한잔을 주문했다. 유명 베이커리와 협업한 디저트 메뉴가 있길래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머핀도 하나 추가했다. 

주문을 다 받은 직원이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해서 '피터'라는 영어 이름을 적어줬다. 블루보틀은 눈앞의 손님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는 경영 철학에 따라 번호가 아닌 손님의 이름이나 닉네임을 부른다.

넓은 홀을 둘러봤는데 전부 만석이었다. 공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빨간 벽돌로 만든 테이블 쪽에 빈 곳이 생겨 자리를 잡고 다시 커피를 만드는 바로 향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바리스타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커피 내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가 '블루보틀은 처음이냐'고 물었다. "일본에서 6개 매장에 가봤다"고 대답하니 그 역시 '지난 한 달 동안 교육을 위해 일본 내 매장 전체를 돌았다'며 '자주 봤으면 좋겠다'고 친절하게 응대해줬다. 
 
블루보틀 한국1호점의 바리스타는 정성스레 커피를 내렸다.
 블루보틀 한국1호점의 바리스타는 정성스레 커피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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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커피 커피문화책임자 마이클 필립스가 직접 커피를 내리는 모습.
 블루보틀커피 커피문화책임자 마이클 필립스가 직접 커피를 내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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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드립커피를 받아 테이블에 가져다 놓고 한 잔 더 주문한 라테를 찾으러 바에 갔는데, 말로만 들었던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이자 창업자인 마이클 필립스(블루보틀 커피문화 총괄책임자)가 직접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손님을 대하는 그의 태도 역시 신사적이었다. 

드디어 주문한 메뉴가 모두 나왔다. 자리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사진 촬영을 한 뒤 '폭풍 흡입'했다. 드립커피의 경우에는 이미 블루보틀만의 표준화된 로스팅과 추출 방법이 있어서 일본에서 마신 커피와 크게 차이는 없었다. 라테는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해서 밖으로 나와 맛봐야 했는데, 바로 마신 게 아닌데도 유명 목장의 우유를 써서 그런지 만족스러웠다.

커피 맛은 주관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블루보틀 같이 고유의 레시피를 갖고 있는 브랜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맛과 풍미가 보장되는 편 같다. 가격도 국내 유명 카페 수준이었다. 블루보틀이 제공하는 스페셜티 커피의 품질을 고려하면 그렇게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블루보틀 한국1호점의 메뉴판이다. 이날 내가 주문한 커피는 블렌드(핸드드립, 5200원), 라테(6100원). 메뉴판 뒤 창문 너머로 아직까지 대기중인 인파가 보인다.
 블루보틀 한국1호점의 메뉴판이다. 이날 내가 주문한 커피는 블렌드(핸드드립, 5200원), 라테(6100원). 메뉴판 뒤 창문 너머로 아직까지 대기중인 인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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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머핀을 다 해치운 뒤 원두를 사려고 기다리는데 어느 손님이 커피를 쏟아 유리컵이 깨졌다. 그러자 제임스 프리먼이 직접 나와 빗자루를 들고 직원들과 함께 깨진 유리컵 조각을 치웠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장을 나오기 전에 블루보틀의 CEO 브라이언 미한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에게 "일본에서 6개의 블루보틀 매장을 가봤는데, 도쿄 1호점 키요스미와 이곳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그는 "앞으로 오픈할 다른 매장들도 기대해달라"며 "일본의 매장을 다시 한번 가보면 이전의 경험과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념으로 사진을 함께 찍고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 대기 줄을 봤더니 여전히 200여 명 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 오길 잘했다고 뿌듯해하며 뚝섬역으로 향했다.

블루보틀 1호점 단상 세 가지
 
붉은 벽돌과 블루보틀의 만남.
 붉은 벽돌과 블루보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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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여섯 곳의 블루보틀 매장을 가본 소비자 입장에서 블루보틀 한국 1호점에 대한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해 봤다. 

첫째, 붉은 벽돌의 블루보틀 외관은 성수동 일대에서 진행 중인 서울시의 프로젝트와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과거 공장지대였던 성수동에 아주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블루보틀다운 선택이랄까.

예전에 '블루보틀 한국 1호점은 강남에 생길 것'이라는 기사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현지에서 로스팅을 직접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브랜드에는 강남이라는 도시가 애매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땅값이 비싸지 않으면서도 이미 핫플레이스가 된 성수동이나 문래동 일대가 더 어울릴 것이라고 봤는데, 예상이 적중했다. 폐공장을 개조해 대규모 로스터리와 카페를 만든 일본 키요스미시라카와점처럼, 한국 1호점도 지상은 큰 로스터리, 지하는 카페로 조성했다. 
 
블루보틀 일본 키요시미시라카와점도 폐공장을 개조해 대규모 로스터리와 카페를 만들었는데 성수의 한국 1호점도 지상에는 큰 로스터리를, 지하에는 카페를 꾸며놨다.
 블루보틀 일본 키요시미시라카와점도 폐공장을 개조해 대규모 로스터리와 카페를 만들었는데 성수의 한국 1호점도 지상에는 큰 로스터리를, 지하에는 카페를 꾸며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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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은 타깃으로 삼는 고객층이 다르다.

스타벅스가 공간을 빌려주고 커피를 파는 장소라면, 블루보틀은 커피를 즐기는 경험을 극대화하면서 공간은 약간 부수적인 기능에 머문다고 해야 할까. 전국 어디를 가든 와이파이와 넉넉한 콘센트를 제공하는 국내 스타벅스와 다르게, 블루보틀 성수 1호점은 와이파이와 콘센트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블루보틀 산겐자야점처럼 최근 일본 도쿄에 열린 지점들은 소비자가 공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러나 그건 도쿄 시내에 블루보틀 매장이 10개 이상 들어서고 나서 생긴 변화다. 서울 블루보틀 역시 서울의 특성에 맞게 변화하려면 꽤나 시간이 흘러야 할 테고, 그렇다 하더라도 스타벅스와 경쟁구도가 되진 않으리라고 본다. 
 
테이크아웃컵에 담은 블루보틀 라테 그리고 개업기념선물이 담긴 블루보틀 복주머니.
 테이크아웃컵에 담은 블루보틀 라테 그리고 개업기념선물이 담긴 블루보틀 복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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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필자는 블루보틀에 열광하는 팬으로서 약간 '기념'의 목적으로 1호점을 방문했고, 앞으로 열릴 2호점과 그 이후의 확대될 점포들에 좀 더 기대를 걸고 있다. 올 6월 삼청동에 열리는 2호점은 아마도 교토의 블루보틀과 비슷한 느낌일 듯하다. 교토점이 일본 전통 가옥의 외관과 뼈대로 지어진 만큼 블루보틀 삼청동은 한옥 카페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서는 강남역이나 청담·논현, 상수·합정, 한남동 등으로 지점을 늘려가리라 전망해본다. 물론 서울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경주나 전주, 제주 쪽에 매장을 준비하는 수순을 밟을 듯하다. 여유롭게 블루보틀 커피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얼른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새벽부터 움직이고 몇 시간 동안 서 있느라 약간 고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블루보틀 커피를 누구보다 먼저 즐기고 맛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줄을 서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미국의 커피 문화를 바꾸고, 일본에 열풍을 불러온 블루보틀이 한국에선 어떤 변화와 결실을 이뤄낼지 무척 기대된다. 
 
5월 3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블루보틀 한국1호점. 줄에 줄은 선 인파.
 5월 3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블루보틀 한국1호점. 줄에 줄은 선 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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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재호 시민기자의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태그:#블루보틀, #성수동, #커피, #제임스프리먼, #마이클필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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