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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가지 색다른 산책로로 조성된 죽녹원 ⓒ 이성훈
  
'대숲 맑은 생태도시' 전남 담양의 시작과 끝은 '대나무'다. 담양에 가면 어디에서나 대나무를 만질 수 있고 대나무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과 공예품들이 넘쳐난다. 사시사철 푸름을 간직하고 뿌리부터 가지까지 버릴 것 하나도 없는 대나무의 고장 담양. 그 중심에 바로 '죽녹원'(竹綠苑)이 있다.

2005년 3월 개원한 죽녹원은 31만㎡ 규모의 대나무 숲으로 여덟 가지 주제의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를 따라 사부작사부작 걷다보면 빽빽한 대나무 숲 사이로 스며드는 시원한 바람 소리에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산책길 이름은 ▲ 운수대통 길 ▲ 사색의 길 ▲ 사랑이 변치 않는 길 ▲ 죽마고우 길 ▲ 추억의 샛길 ▲ 성인산 오름길 ▲ 철학자의 길 ▲ 선비의 길 등 다양하다. 산책로 경사도 완만한 편이다.

무엇보다 대나무로 만든 의자들이 산책길 곳곳에 있어 걷다 쉬다 하며 죽녹원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죽녹원 곳곳에는 대나무로 만든 의자와 소파가 있어 편히 쉴 수 있다. ⓒ 이성훈

죽녹원 산책길을 걷다 보면 '노무현 대통령 방문기념'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녹원을 찾았을 때 걸었던 길이다. 안내판에 적힌 날짜는 2007년 5월 17일.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이맘때다. 사진 속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수행원들과 걷고 있다.
   
노 전 대통령 바로 뒤로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안내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문 비서실장이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지금도 살아 계셨다면 두 분이 손을 맞잡고 언젠가는 이곳을 다시 한 번 방문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다가오는 5월 23일이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녀간 길 ⓒ 이성훈
  
노무현 대통령 방문 기념 사진. 노 대통령 바로 뒤에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보인다. ⓒ 이성훈
 
'노무현'. 참 가슴 아프고 먹먹하고 애절하면서도 그리운 이름이다. 고향에서 주민들과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했던 그가 떠난 지 벌써 10년이다. 지금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던 서거 소식. 이 사진을 보니 밀짚모자를 쓰고 살며시 미소 짓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노 전 대통령을 떠올려본다. 최근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자유한국당의 국회 봉쇄를 그가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고 국회를 향해 호통치지 않았을까. 

대금 소리, 그리고 추억

대숲 사이로 흐르는 바람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맑디맑은 대금 소리가 들린다. 한 어르신이 정자 아래서 대금을 연주하고 있다. 20여 년 전 대금을 배웠던 적이 있다.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하며 번 돈으로 쌍죽 대금을 하나 샀다. 밤낮으로 연습할 정도로 대금에 미쳐 살았던 적이 있다.
   
한여름에는 대금 동아리 회원들과 지리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초가집에서 일주일 동안 오직 대금만 연습했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도 가끔 대금을 집어 들지만 이제는 손가락도 굳고 음도 생각나지 않는다. 조금만 불어도 숨이 차고 팔이 아파 1분 이상 들고 있지 못한다.

이제는 장식용으로 변해버린 산조 대금. 대금을 연주하는 어르신을 보니 슬며시 옛 생각이 난다. 한번 대금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섣불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추억을 되살린 것으로 만족하며 연주가 끝난 후 자리를 옮겼다.

"아, 뱃살이여!"
   
죽녹원 내에 있는 뱃살 통과 시험 장소. 대나무 사이의 간격이 각각 달라 자신의 뱃살이 어느정도 인지 가늠할 수 있다. ⓒ 이성훈
 
좀 더 길을 걷다 보면 아주 재밌는 장소 하나가 나온다. 간격이 각기 다른 대나무 사이를 통과해보며 허리 둘레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곳이다. 구간이 가장 좁은 곳은 너비가 17.35cm. 일행 모두 배를 최대한 집어 넣고 첫 관문에 도전했다.

헉! 몸을 옆으로 돌려 대나무 사이로 들어가려 했는데 초입부터 막히고 말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면 지나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어림없었다. 두 번째 구간은 19.21cm, 이곳 역시 무리. 얼굴은 달아오르며 조금씩 부끄러움이 치솟는다. 세 번째는 20.32cm 구간. 무난히 통과할 것 같았지만 또다시 퇴짜를 맞고 말았다.

결국 22.77cm 구간에서 가까스로 통과했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다시 한 번 (지키지 않을) 다이어트와 운동을 하기로 결심해본다.
   
죽녹원 안에 있는 미술관 '이이남 아트센터'도 눈길을 끈다. 담양이 고향인 이이남 작가는 클래식 작품과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미디어 디지털로 재해석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이곳에서는 담양의 대나무를 소재로 다룬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디지털 그림은 피사체인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도 난다. 작품마다 애니메이션처럼 흐름과 움직임을 구현해내 색다르게 다가왔다.
   
이처럼 아름다고 고즈넉한 죽녹원이지만,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대나무가 사람들의 낙서로 몸살을 앓기도 한다. 산책길과 가까운 대나무들은 여지없이 낙서로 가득 찼다. 이름과 글씨는 가지각색이지만 주로 '사랑한다', '다녀간다'는 내용이다. 다들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것 같다. 오죽하면 죽녹원 곳곳에는 낙서금지 팻말과 함께 과태료 부과 경고문이 걸려 있다. 대나무에 상처를 내는 행위가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죽녹원 곳곳에 걸린 낙서금지 푯말 ⓒ 이성훈
 
언제나 걷고 싶은 '죽녹원-관방제림-메타세콰이어길'

죽녹원을 나와 영산강을 따라 올라가면 30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강변을 지키고 있는 '관방제림'이 있다. 그 길의 끝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 중의 하나인 '메타세콰이어길'이 있다. '죽녹원-관방제림-메타세콰이어길', 언제 와도 항상 정겹고 그립다.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고 싶은 길이다.

담양에는 담양호, 추월산, 대나무 박물관, 소쇄원, 식영정을 비롯해 유명한 정자들이 곳곳에 있다. 어딜 가나 대나무의 푸름을 간직하고 있는 담양. 그러고 보니 5년 전부터 1년에 한 번은 꼭 담양에 온 것 같다. 내년에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해 뱃살 재는 곳에서 더 좁은 구간을 통과하길 바라며.
태그:#담양 죽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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